▲ 백만장자 '부자 증세' 요구를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지. <사진출처=워싱턴포스트 캡쳐>

뉴욕 주 백만장자들 “세금 올려 달라” 요구 왜?

[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우리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가라. 그 돈으로 위기에 빠진 뉴욕을 구해라”

미국 뉴욕 주의 백만장자 51명이 21일(현지시간)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와 의회에 이 같은 내용의 공개서한을 보냈다. 부자 감세가 아닌 ‘부자 증세’를 자청한 것이다.

백만장자들은 공개서한에서 “뉴욕 주의 일원으로서 그동안 기여했지만 많은 경제적 혜택도 받아 왔다. 때문에 우리는 공정한 몫을 공유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으며 충분히 그럴 능력이 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들은 “현재 적용중인 한시적인 부자 증세를 대체할 영구적인 부유세를 요구한다. 여기서 얻은 세금으로 빈곤 퇴치와 낙후된 도시 인프라 개선에 쓰이길 기대한다”며 부자 증세를 요구했다.

이 서한에 참여한 인사들은 미국 최고 부자 가문으로 손꼽히는 록펠러가의 후손인 스티븐 C 록펠러를 비롯, 월트 디즈니의 손녀딸 아비게일 디즈니, 대형 정보통신업체 AT&T 전 최고경영자(CEO)이자 인터미디어 파트너스 대주주인 레오 힌더리 등 뉴욕 주에서 소득 상위 1%에 드는 사람들이다. 현재 뉴욕 주 상위 1% 평균 연 소득은 66만5천 달러(약 7억7176만원)다.

뉴욕 주 정부는 현재 연간 소득 106만2000달러(12억3723만원)이 넘는 백만장자들에게 8.82%의 세율을 일률 적용하고 있다. 공개서한에 서명한 백만장자들은 과세표준 구간을 나눠서 부과해달라고 요청했다.

‘조세 공정을 위한 1% 계획’(1% plan for tax fairness)으로 명명한 제안에 따르면 과세표준 5개 구간은 ▲66만5천 달러~100만 달러 ▲100만 달러~200만 달러▲200만 달러~1000만 달러▲1000만 달러~1억 달러▲1억 달러 이상 등이다. 5개 구간에 따라 각각 7.65%, 8.82%, 9.35%, 9.65%, 9.99%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이다.

부자 증세 외에도 백만장자들은 현재 일시적으로 낮게 부과되고 있는 노동자 계층의 세율도 영구적으로 유지하도록 촉구했다. 현재 노동자 계층은 4%~6.85%의 세금이 부과되고 있다.

뉴욕 주의 부유세(millionaires tax)와 노동자 감세는 2017년 폐지될 예정이다.

백만장자들은 “예정대로 부유세가 폐지된다면 중산층의 세금 부담은 1억 달러 증가하고 백만장자들은 3억7천만 달러의 감세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백만장자들의 제안이 받아들여진다면 뉴욕 주의 세수는 22억 달러(약 2조5517억 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의 백만장자들이 이런 주장을 들고 나온 이유는 뉴욕 주가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뉴욕 주의 아동 빈곤률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8만 명이 넘는 노숙자들도 뉴욕 주의 골칫거리다.

이러한 이유로 백만장자들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뉴욕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지금이 투자할 시기다. 우리 뉴욕 주는 강력한 공공 교육을 포함, 가난을 벗어날 기회와 상위 계층으로 올라갈 경제적 사다리를 시민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더해 “노후화된 다리, 터널, 수도관, 공공 빌딩, 도로 등에 투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이어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인적, 물적 인프라 투자로 인한 일자리 창출이다. 새로 생긴 일자리는 뉴욕시민이 채울 것이며 이것은 현재 뉴욕 주의 소득 양극화 현상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제안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워싱턴포스트(WP)는 그 이유로 뉴욕 주 하원은 민주당이, 상원은 공화당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을 꼽았다.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주 하원에서는 고소득자들에게 더 높은 세율을 부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일례로 칼 히스티 민주당 의원은 백만장자들의 제안과 유사한 법안을 추진 중이다. 반면 뉴욕 주 상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의 반응은 싸늘하다. 상원의 공화당 대표인 존 플라나건은 “소득세든, 자산세든, 법인세나 사용료, 통행료 등 그 무엇이든 우리는 힘들게 일하는 뉴욕 주민들의 주머니를 털려는 시도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세금 인상을 반대했다.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도 부자 증세를 기치로 내걸었다. 힐러리 ‘부자 증세안’의 요지는 버핏세(연소득 100만 달러 이상자에 최소 30% 세율 부과)에 추가적으로 연소득 500만 달러 이상 고소득자에게 4% 추가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세액공제 규모를 36%에서 28%로 줄이고 자본이득세를 현재의 2년이 아닌 6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낮추겠다는 계획도 있다. 헤지펀드나 사모펀드의 펀드매니저들에게 편법 성과급으로 주어지는 이른바 '보유이자'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부동산세 최고세율을 현재의 40%에서 45%로 올리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현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천명에도 불구, 고소득 전문직종들의 탈세는 끊이지 않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고소득 자영업자 중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종 1241명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해 5485억 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하지만 전체 소득 가운데 신고하지 않고 숨긴 소득을 적발한 수치를 뜻하는 소득 적출률은 5년간 평균 31%에 그쳤다. 이런 점에 비춰 한국의 고소득층도 뉴욕 주 부자들의 ‘증세 요구’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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