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난민문제 등 주요 이슈 놓고 격론 벌어져

▲ 차기 유엔 사무총장 후보들의 자질을 검토하기 위한 공개 청문회가 열리고 있는 유엔 총회장. <사진 출처=유엔 홈페이지>

[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유엔이 차기 사무총장 선출을 두고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선출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후보자 공개 유세 및 토론회를 유엔 창설 70년 만에 처음 도입한 것. 첫 번째 공개 유세가 지난 12~14일, 사흘에 걸쳐 미국 뉴욕에서 실시됐다. 차기 사무총장에 출사표를 낸 9명의 후보는 하루에 3명씩, 후보당 2시간 동안 출마 동기, 유엔 발전을 위한 비전 등을 밝혔고 193개 회원국 대표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다. 두 번째 공개유세는 런던에서 실시될 예정이며 7월부터 안보리가 본격적으로 후보 선정 절차에 돌입한다.

유엔의 새로운 시도는 사무총장 선출이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중 하나의 국가라도 반대표를 던지면 사무총장에 선출될 수 없다.

이번에도 큰 틀에서 변화는 없다. 여전히 후보 선정은 15개 안보리 이사국에서 비공개 회의로 진행하고 9개국 이상의 지지를 받은 후보가 투표 없이 박수로 유엔 총회에서 승인받는다.

이러한 과정 때문에 유엔 사무총장이 상임이사국들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비판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유엔은 이런 비판을 의식해 유세, 토론회와 같은 경선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번 공개 유세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쪽은 특정 후보가 대세를 이끌거나, 다수의 회원국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여론이 형성되면 안보리가 무시하지 못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개 유세를 두고 모겐스 리케토프트 유엔 총회 의장의 “판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매튜 라이크로프트 영국 유엔 대사도 “이번 시도는 안보리 의사 결정 과정의 질을 높여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공개 유세에도 유력한 후보가 부상하지 않으면 과거와 같이 막후에서 강대국들의 영향력에 의해 사무총장이 선출될 공산이 크고, 유엔의 이번 시도는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아이티 콜레라 창궐 사건

이번 차기 유엔 사무총장에는 총 9명이 출마했다. 후보는 이리나 보코바(63세, 현 유네스코 사무총장, 불가리아), 헬렌 클라크(66세, 뉴질랜드 전 총리), 나탈리아 게르만(47세, 몰도바 부총리), 안토니오 구테헤스(66세, 포르투갈, 유엔 난민기구 전 최고대표), 부크 예레미치(40세, 세르비아, 유엔 총회 전 의장), 스르잔 케림(67세, 마케도니아 전 외무장관), 이고르 루크(39세, 몬테네그로 부총리), 베스나 푸스치(63세, 크로아티아 전 총리), 다닐로 튀르크(64세, 슬로베니아 전 대통령) 등 총 9명이다.

차기 유엔 사무총장이 마주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기후 변화 대응, 평화유지군 성범죄, 아이티 콜레라, 시리아에서 촉발된 난민 문제 등이다. 지난 주 실시된 사무총장 후보 공개 토론장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후보들의 입장이 확인됐다.

‘아이티 콜레라 창궐’에 대해선 후보 간 미묘한 견해 차이가 있었다. 이 사건은 네팔 국적의 유엔평화유지군이 아이티에 파견된 후 콜레라가 발병했다는 의혹이다. 유엔평화유지군이 주둔한 2010년 이후 아이티에서 콜레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9200명이 넘었고, 65만 명이 콜레라를 앓았다. 아이티에서 콜레라가 발병한 것은 100년 만이라는 점에서 유엔평화유지군에 의한 연관성이 높게 제기됐다. 유엔은 그러나 지금까지 어떤 보상도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크로아티아 전 외무장관 베스나 푸시츠는 “아이티 콜레라 희생자가 보상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푸시츠 전 장관은 “그래야 한다”고 원론적으로 얘기했다. 추가 질문이 이어지자 푸시츠 전 장관은 “전문가 집단에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한 발 물러섰다.

이 답변을 놓고 뉴욕타임스(NYT)는 “이미 수년 동안 연구돼 책임 소재가 분명한 사인이다.”고 비판했다. 유엔 평화유지군에 의해 콜레라가 창궐했으므로 유엔이 책임져야 하는 사안인데 사무총장 후보로 나선 인물이 어물쩍하게 답변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현재 이 사건은 아이티 주민이 유엔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한 상태다.

뉴질랜드 전 총리 헬렌 클라크는 이 사건에 대해 과거엔 법적 쟁점 사안이라고 주장했으나 토론장에서는 입장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슬로베니아 전 대통령 다닐로 튀르크는 “유엔이 정당한 과정을 통해 효과적인 치료를 피해자들에게 제공하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리아 난민 문제

난민 문제는 후보자들 간에도 민감한 이슈였다. 푸시츠 전 장관은 최근 EU와 터키가 합의한 ‘난민 송환 협약’을 높이 평가했다. 아울러 유엔 난민협약(1951 Refugee Convention)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튀르크 전 대통령은 유엔 난민 협약을 수정할 필요는 없다면서 “난민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더 나은 제도적, 정책적 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클라크 전 총리는 또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클라크 전 총리는 그전에는 난민송환협약에 대해 ‘실용적 접근법’이라고 긍정 평가했으나 이날 유엔 회원국 대사들의 질문을 받고 언급을 피한 것.

나머지 후보들인 포르투갈 전 총리 안토니오 구테레스와 현 유네스코 사무총장인 이리나 보코바도 난민송환협약 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않았다.

회원국 대표들은 ‘유엔 개혁’과 관해서도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허를 찔린 후보도 있었다. 라이크로프트 유엔 영국 대사는 “효율성 향상을 위해 유엔의 어떤 조직을 폐쇄할 것인가”라고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질문했지만 그녀는 답변하지 못했다.

클라크 전 총리는 “사무총장이 되면 사무국 고위직을 어떤 식으로 임명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맡겨만 주면 잘 해낼 수 있다”라고 두루뭉술하게 답변했다. 유엔 사무총장 사무국은 힘 있는 상임이사국이 독점하고 있어 개선 방안을 물은 것인데 동문서답식으로 답변한 것.

유엔 내부에서는 이번에는 상임이사국의 압력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사무총장이 선출되기 바라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강력한 사무총장’에 대한 토론이 활발히 이뤄졌지만 합의된 사항은 없었다.

구테헤스를 비롯한 다수의 후보들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안보 이슈가 발생했을 때 유엔 헌장에 의거, 사무총장의 권한을 확대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늘 안보리에게 유엔의 중심을 뺐긴 분위기였기 때문에 후보들의 이런 주장은 주목을 끌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반기문 현 사무총장은 관련 안보 이슈가 터졌을 때 한 번도 직접 나서지 않았음을 꼬집었다. 뉴욕타임스는 “요즘 외교관들 사이에서 ‘10년 전에도 이번처럼 사무총장 후보 공개 유세가 있었다면 반기문 후보가 사무총장이 됐을지 의문’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사무총장의 임기에 대해서도 질문이 나왔다. 세계시민단체 ‘70억명을 위한 1명’(1 for 7 billion)은 사무총장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연임 가능한 현 5년 임기 규정을 고쳐 ‘7년 단임안’을 주장하고 있다.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아르 5대 유엔 사무총장도 “사무총장이 (강대국에) 휘둘리지 않고 압박을 가하기 위해서는 7년 단임제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좋다”고 입장을 밝혔다.

‘7년 단임안’에 대다수 후보들은 애매한 태도를 보였으나 클라크 전 총리는 수긍 의사를 밝혔다. 클라크 전 총리는 “내가 (7년 단임제로 인해) 연임을 할 수 없는 케이스를 보여 줄 수 있다”며 의욕을 보였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유엔사무총장 공개 유세를 ‘양성평등’, ‘유엔 개혁’, ‘강력한 사무총장’으로 정의했다. 실제로 대다수 남성 후보자들은 유엔 고위 관리직에서 양성 평등을 약속했다. 구테헤스 전 총리는 유엔 전 조직에서 50대 50의 성비 균형을 실현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세르비아 전 외무장관이자 유엔 총회 전 의장인 부크 예레미치는 자신의 부 사무총장으로 여성을 임명할 것이라고 했다.

차기 사무총장 여성 가능성 높아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는 동유럽 출신이 선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서방 외교가는 보고 있다. 그간 유엔 사무총장 선출에 ‘지역 안배’ 관행이 작용했기 때문. 유엔 창설 이후 단 한 번도 사무총장을 배출하지 못한 동유럽은 이번에 6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이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근래의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 대통령’이라는 위상과 함께 그에 걸맞은 상징성도 부각됐다. 아프리카 가나 출신으로 최초의 ‘흑인’ 사무총장을 지낸 코피 아난, 아시아 최초의 반기문 사무총장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유엔 70년을 이끌어온 8명의 사무총장은 모두 남성이었다. 때문에 이번에는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이 배출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 것.

현재 동유럽 출신 여성 후보는 총 3명이다. 현 유네스코 사무총장인 불가리아 출신 이리나 보코바, 크로아티아 전 외무장관 베스나 푸시츠, 몰도바 전 외무장관 나탈리아 게르만 등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잠재적 후보군에 속한다. 지난해 발생한 난민 대응 과정에서 메르켈 총리가 보여준 리더십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언론특보 출신 마크 세던은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메르켈 총리를 “동서양의 가교 역할이 가능한 글로벌 지도자다. 유엔 내부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유엔 개혁에 더 적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제 외교가는 그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메르켈 총리의 집권 3기 임기가 내년 가을까지이고 난민 수용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엔 사무총장 출마는 비현실적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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