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례에 의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적용 어려워

법조계 일각 “검찰이 속단, 고의성 여부에 대해 더 수사해야”

[월요신문 유은영 기자]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과 관련,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은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업체 관계자들에 대해 살인 혐의 적용여부도 검토했으나 어려운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살인죄 적용에 있어 고의성을 판단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 따라서 검찰은 ‘업무상 과실치사상’쪽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피해자와 시민단체들은 허탈한 반응을 보였다. 가습기 살균제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후 피해자들은 “옥시 전 대표를 살인죄로 처벌하라”고 주장해왔다.

우리 형법 제250조에 규정된 살인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업무상 과실·중과실 치사상의 경우 동법 제268조에 의거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고의 살인죄가 적용될 경우와 과실치사죄가 적용될 경우의 법정형의 차이가 큰 편이다.

형법상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요건으로서 인과관계와 주관적 요건으로서의 고의성이 필요하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을 수사하면서 검찰이 일차적으로 공을 들인 부분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사망간의 인과 관계다. 이에 대해 검찰은 옥시 등 업체가 만든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피해자들의 사망, 상해 등에 대해서는 과학적 검증이 가능하고, 입증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검찰은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 ‘롯데마트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 ‘홈플러스 가습기 청정제’, ‘세퓨 가습기 살균제’ 등 4개 제품에 폐손상 유발물질이 포함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검찰이 파악한 피해자 수는 사망자 94명 등 총 221명이다.

문제는 고의성 여부다. 옥시 등 업체 관계자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제품 사용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인과관계 증명과 함께 ‘사람을 죽일 목적으로 제품을 만들고 판매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는게 검찰의 입장이다.

살인죄에서 고의는 ‘죽이겠다’라는 확정적 고의가 아니더라도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미필적 고의로도 인정이 된다. 검찰은 옥시 등 업체 관계자들에게 이러한 고의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통상적으로 기업은 이윤 추구를 위해 제품을 만드는 것이지 소비자에 대한 살인을 위해 ‘죽일 목적’으로 물건을 제조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즉 사망에 대한 ‘의도성’은 없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제기됐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살인죄 적용이 어렵다는 검찰의 주장은 속단한 측면이 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적용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놓고 더 수사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유해성을 알면서도 고의로 제품을 만들었을 경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적용이 가능하다. 검찰이 이 부분을 입증하기 어려워 한 발 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처벌받은 사례는 흔치 않다. 실제로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검찰이 해당 범죄사실을 입증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판례에 따르면 미필적 고의란, 범죄사실의 발생 가능성을 불확실한 것으로 표상하면서 이를 용인하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하려면 범죄사실의 발생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있음은 물론 나아가 범죄사실이 발생할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어야 한다. (대법원 2004.5.14. 선고 2004도74 판결)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처벌하려면 검찰이 피의자의 ‘용인’ 의사를 입증해야 하는데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경우 이 부분이 어렵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이와 유사하게 ‘미필적 고의’와 ‘과실’이 문제가 된 경우가 있다. 이른바 삼풍백화점 사건이다. 이준 전 삼풍건설산업 회장은 백화점의 불법증축 등에 의해 소방당국으로부터 안전지적을 많이 받았으나 영업을 지속해오다 50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시 그를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으나 미필적 고의를 입증할 수 없었기에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처벌됐다.

과실치사는 고의범에 비해 판단기준이 다소 완화된다. 주의의무 위반과 관련한 입증이 핵심이다. 이에 따라 사망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사망의 가능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간과한 것인지여부가 향후 열릴 재판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6일 '옥시레킷벤키저' 신현우 전 대표이사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신 전 대표는 조사에 앞서 "가습기살균제 유해성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조사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검찰수사에 성의껏 임하겠다"고만 대답했다.

지금까지 나온 수사 상황을 살펴보면 옥시의 경우, 불리한 결과가 나온 실험보고서를 빼거나 유리한 결과가 나오게끔 실험 조건을 조작한 정황이 있다. 또 가습기 살균제 이용자들이 호흡곤란 등 부작용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자 홈페이지에서 삭제한 사실도 밝혀졌다. 또 사망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의 유해성 경고자료도 대거 폐기했음이 드러났다. 검찰이 국민의 이목이 쏠린 이 사건을 어떻게 결론 내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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