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지난 26일, 미국 동북부 5개 주의 대선 경선 투표가 끝났다. 동시에 미국 공화당,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거의 확정된 형국이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지난 26일까지 총 2141명의 대의원을 확보했다. 힐러리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지명되기 위해서는 2382명의 대의원 수를 차지해야한다. 고지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남은 민주당 대의원은 1300여명이다.

공화당 도날드 트럼프 후보는 5개주를 싹쓸이하며 대의원 950명을 확보해 과반인 1237명에 근접했다. 남은 대의원은 622명. 공화당 경선 방식은 승자독식제로 과반수 득표를 하면 그 주에 걸린 대의원을 모두 가져간다. 현재 트럼프는 남은 경선지역에서도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과반 대의원 확보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사실상 트럼프와 힐러리의 본선 대결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문제는 한반도다. 힐러리냐 트럼프냐. 차기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변화가 불가피하다. 두 후보의 성향과 한반도 정책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힐러리 ‘한미동맹 강화’ VS 트럼프 ‘주한미군 철수’

트럼프는 이번 경선 기간 내내 한국에 대해 강성발언을 쏟아냈다. 그가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이다. 트럼프는 “현재 미국은 20조 달러가 넘는 재정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미국이 동맹국의 방위를 공짜로 책임져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지켜주는 나라들은 반드시 방위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적정 방위비를 분담하지 않으면 그들 스스로 방어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한미군 철수까지 거론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주한미군 철수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 주일미군과 더불어 주한미군은 미국의 동북아전략에서 핵심적인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은 1차적으로 한반도 전쟁 억지를 위해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갖고 있다. 주한미군의 철수는 미국의 입장에서 전략적 요충지를 스스로 제거하는 행동과 다름없다. 때문에 트럼프 발언은 지금보다 많은 방위분담금을 전가시키기 위한 극단적인 표현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렇다면 한국의 방위분담금은 적은 것일까.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 내정자는 청문회에서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하고 있다. 가장 첫 번째로 한국은 지난해 인적비용의 50% 가량인 8억 800만 달러를 부담했다. 이것은 매년 물가 상승으로 오르게 돼 있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주한미군 재배치를 위해 미국 국방부가 발주한 108억 달러 규모의 최대 건설공사 비용 중 92%를 한국 정부가 부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둔비용을 감안할 때 미국에 주둔하는 것이 한국에 주둔하는 것보다 비용이 많이 드느냐’는 질문에 브룩스 내정자는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에 대해 강성 발언을 쏟아내는 트럼프와는 달리 힐러리는 시종일관 ‘한미동맹 강화’를 외치고 있다. 힐러리에게 한국은 친숙한 나라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 초대 국무장관 임명 뒤 첫 해외방문 국가가 한국이었으며, 4년 재임기간 동안 5차례나 방한했다.

힐러리는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미간 긴밀한 공조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힐러리는 한반도에 중대한 사건이 있을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일례로 지난해 8월 북한의 포격 도발에 대해 그는 “이번 사건은 미국이 동맹국 방어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가져야할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북한 4차 핵실험 직후에는 성명을 내고 “우리의 동맹인 한국과 일본을 방어하기 위해 북한을 상대로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한미동맹에 대한 미국의 인식은 힐러리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다.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 미국 대사는 “트럼프는 한·미 동맹이 뭔지 이해 못하고 있다. 그의 주장 자체가 미국의 이익에 배치된다. 워싱턴에선 그 누구도 트럼프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의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에드윈 퓰너 아시아연구센터 회장은 “한·미 동맹은 한 번의 선거 결과로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바위와 같다. 백악관에 누가 들어가든, 청와대에 누가 있든 한·미 동맹은 쉽게 바뀌지 않는 뿌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힐러리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되면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북한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완전히 핵무기를 제거하는 경우 관계정상화와 경제·인도적 지원을 제공할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고립이 계속될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선 비핵화 후 협상’ 정책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월 토론회에서도 “역내 지역 국가들과 함께 북한을 고립시키고 차단하는 모든 조치를 강구해나갈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예상 가능한 정책 행보다.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도 존재한다. 현재 힐러리 캠프에는 대북협상에 긍정적인 참모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기 때문. 대표적 인사로 성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페리 프로세스’ 입안에 관여한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차관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참모들을 대북특사로 활용해 북미관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도 예측 가능하다.

힐러리에 비하면 트럼프는 북한과 아예 대화할 생각이 없다. 트럼프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도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통령이 되면 김정은을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극단적으로 말했다. 어떻게 사라지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중국에게 김정은을 어떤 형태로든 신속하게 제거하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암살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아니지만 김정은은 암살보다 더 나쁜 운명을 맞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밖에도 트럼프는 김정은을 ‘나쁜 녀석’(Bad dude), ‘미치광이’(maniac) 등으로 표현하며 무차별적인 비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트럼프는 또 북한 문제를 중국 탓으로 돌렸다. 그는 “중국은 북한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대통령이 되면 중국에게 김정은을 제거하도록 경제적 수단으로 압박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트럼프의 대북 전략은 동북아 주변 국가들과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통한 압박이다. 그는 “우리는 힘이 있다. 중국과 훌륭한 관계를 맺을 것이고, 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도 좋은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영향력을 가진 주변 국가를 이용한 ‘이이제이’ 전략을 뜻한다.

한미 FTA 첫 타깃 될 가능성 높아

경제적 측면에서도 두 후보의 성향은 극과 극이다. 힐러리는 자유무역을, 트럼프는 보호무역을 주장한다. 따라서 한국 입장에선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경제에 미칠 변수가 크게 달라진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그 첫 번째 타깃이 될 공산이 높다. 한미 FTA 발효 후 교역규모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FTA 발효 전인 2011년 한미 교역액은 1007억 달러였다. FTA 발효 3년차인 2014년 교역규모는 1156억 달러로 늘었다.

문제는 두 후보 모두 한미 FTA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점이다. 힐러리는 작년 10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한국과의 무역협정을 물려받았지만, 돌이켜보면 시장 접근이나 수출 증대 등에 관해 우리가 얻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얻지 못했다”며 한미 FTA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음을 드러냈다.


트럼프는 한미 FTA를 포함한 모든 무역협정을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트럼프는 “모든 무역협정은 미국의 제조업 지대를 공동화하고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며 일전불사 뜻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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