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그 라이트 <사진=www.bbc.com 인터뷰 캡쳐>

[월요신문 유은영 기자] 최근 자신이 비트코인 개발자라고 주장한 사람이 등장했다. 호주인 ‘크레이그 라이트(Craig Wright)’다. 그는 BBC, 더 이코노미스트, GQ를 통해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임을 밝혔다. 최초의 비트코인 설계와 증명은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에 의해 고안되었다고 알려졌으나 2011년 돌연 업계에서 발을 떼고 사라졌다.

그가 정체를 밝히지 않고 떠나간 덕분에, 이후 수많은 학자들이 사토시로 지목됐다. 2011년에는 더 뉴요커가 핀란드 경제학자 빌리 레돈비타(Vili Lehdonvirta), 마이클 클리어(Michael Clear)를 사토시로 추정했다. 패스트 컴퍼니는 닐킹(Neal King), 블라디미르 옥스만(Vladimir Oksman), 찰스 브리(Charles Bry)가 사토시일 것이라 했지만 셋 다 이를 부정했다. 2013년에는 닉 자보(Nick Szabo)를, 2014년에는 일본계 미국인 사토시 나카모토가 개발자로 지목됐다. 그러던 2015년 12월, 크레이그 라이트가 주목받았고, 급기야 2016년 5월 2일 그가 자신을 개발자라고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이다.

라이트는 그동안 자신을 숨긴 이유에 대해 프랑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에 비유했다. 사르트르는 “노벨상 수상자 사르트르로 각인되기 싫다”며 노벨상을 거부한 바 있다. 라이트는 자신의 이미지가 하나에 고정되기를 원치 않았다고 밝혔다.

비트코인은 개발자의 정체가 모호한 가운데 지금까지 활발히 거래가 이뤄져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비트코인의 개발자가 누구인지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비트코인의 거래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정된 수의 비트코인과 수요공급에 따른 가치 변화가 발생하기 때문.

BBC에 따르면 비트코인 개발자는 100만개 이상의 비트코인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시가로 환산하면 약 4억 5천만 달러 상당이다. 이 정도 규모의 비트코인이 시장에 풀리면 비트코인의 가치 변동이 불가피하다.

비트코인은 분장원장 기술을 사용한다. 분장원장 기술은 참가자들이 P2P 방식으로 거래원장을 나눠 기록하고 관리하는 기술이다. 은행, 청산소, 거래정보 저장소 등 제3의 기관을 필요로 하는 중앙집중형 시스템에 비해 효율성과 보안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거래원장 갱신을 위해서는 모든 참가자에게 거래정보를 보내 기존의 블록에 새로운 블록을 연결시켜야 한다. 이른바 ‘블록체인’이다. 이를 위해서는 ‘작업증명’도 요구된다. 작업증명이란 거래 검증 및 승인 작업을 위해 반복적인 연산에 성공하는 과정을 말한다. 여기에는 전문적인 장비와 전력 등 많은 자원이 소모된다. 비트코인은 신규블록 형성을 위한 거래검증 작업(마이닝)에 대한 대가다. 분산원장 기술 사용을 위한 일종의 ‘인센티브’인 셈이다.

비트코인 프로토콜은 비트코인을 고정된 속도로 생성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는 비트코인 마이닝을 경쟁적인 사업으로 만든다. 더 많은 마이닝 업자가 네트워크에 참여할수록 마이닝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비트코인이 생성되는 속도는 예상 가능하게 감소된다. bitcoin.org에 따르면 매년 새로이 생성되는 비트코인의 수는 자동적으로 전년도의 반이 된다. 이는 비트코인의 한정된 총 개수인 2천 1백만개의 비트코인이 만들어질 때까지 매년 반복되어 비트코인의 수요공급을 제한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유통되는 비트코인의 수는 약 1550만개로 추산되며 각 비트코인의 가치는 449달러 정도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정해진다.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도 증가하고 수요가 줄면 가격도 떨어진다. 다른 모든 화폐와 같이 비트코인을 지불수단으로 인정하는 사람들로부터 직접적으로 가치가 창출되는 것이다.

BBC에 따르면, 2011년 크레이그 라이트가 업계를 떠날 당시 비트코인 1개 가치는 약 29달러였다. 그러나 온라인 숍, 은행, 결제시스템 등이 점차 비트코인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그 가치는 꾸준히 상승해왔다. 더 많은 코인이 마이닝되고, 많은 상점들이 비트코인을 상용화하면 가치는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나는 돈을 원하지 않는다. 명성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경의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냥 고독하게 남아있고 싶다.”

크레이그 라이트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그는 비트코인 보유량에 대해선 일절 함구했다.

크레이그 라이트가 비트코인의 창시자가 아니라는 의혹의 눈길도 있다.

개빈 안드레센 비트코인 재단 이사는 라이트의 시연을 본 후 "라이트가 이용한 방식으로는 비트코인의 창시자임을 100% 증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라이트가 공개한 암호화 키를 입증하는 방법이 절차와 요구 정보 부분에서 이상하다는 것. 다른 전문가들 역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방식이 요란스럽고 비트코인 창시자 같지 않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개발자는 7년만에 베일을 벗었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반면 세인의 관심은 비트코인 기술 개발자의 ‘정체’보다 비트코인의 화폐가치에 방점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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