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대법정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유은영 기자] ‘내가 산 땅 지하에 오염된 토양과 폐기물이 매립돼있다면 누구에게 손해배상을 받아야 할까?

‘남의 땅에 이름만 올려둔 사람(명의수탁자)이 땅에 근저당권설정 등을 했다면, 횡령이 될까?’

대법원은 19일 부동산 거래와 관련된 두 가지 주요한 판결을 내놓았다. 첫 번째 사건은 신도림 테크노마트 부지와 관련한 손해배상(민사 사건)이고, 두 번째 사건은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수탁자의 횡령죄 성립여부(형사 사건)이다.

부동산 거래는 위치에 따른 개발 가능성, 이로 인한 시세차익 발생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따라서 보통의 동산 거래에 비해 고가의 매매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투자비용과 가치에 따른 분쟁이 잦다. 또 부동산 거래는 일반 물건의 거래와 달리 ‘등기’ 제도가 있기 때문에 등기명의에 따른 소유주 확정의 문제도 자주 발생한다.

토양 오염 유발 손해배상소송

신도림 테크노마트 부지 손해배상 사건(대법원 2016.5.19. 2009다66549)은 지하 토지 개발 과정에서 발견된 폐기물이 문제가 됐다. 통상 거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거래의 직접 상대방에게 ‘계약상의 책임’을 진다. 그런데 본 사건에서 세아베스틸(토지의 원소유자)은 프라임개발 주식회사(원고)와 직접 매매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사실관계를 요약하면, 본래 이 땅은 세아베스틸(피고)이 1973년경부터 20년 동안 주물제조공장을 운영하던 곳이었고, 그 과정에서 토양오염이 발생한다. 1993년경 세아베스틸은 위 공장부지를 기산과 피고 기아자동차(사건 부지를 자동차 출하장으로 사용함)에게 지분 1/2씩 매도한다. 이 과정에서 주물공장을 철거하며 지하에 폐기물을 불법으로 매립했다. 기산이 취득한 위 1/2 지분은 엘지투자증권 앞으로 다시 이전된다. 프라임개발 주식회사(원고)는 신도림 테크노마트를 신축·분양할 계획을 가지고 기아자동차(피고)와 엘지투자증권으로부터 토지를 매입한다. 또 2002년 7월 엘지투자증권과 기아자동차로부터 취득한 토지에 대한 등기를 마친다. 그런데 개발 과정에서 지하에 니켈, 구리 등으로 오염된 토양과 콘크리트, 폐슬레이트, 비닐 등의 폐기물이 매립된 사실이 드러났다. 프라임개발은 해당 부지의 토지 오염 및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 100억원의 비용이 들었다. 그리고 피고들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물었다.

1심은 폐기물을 묻은 세아베스틸의 불법행위 책임은 인정되지 않는다며 기아차에만 채무불이행 책임을 인정했다. 세아베스틸은 땅을 사고판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법적 책임이 없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19일 프라임개발이 철강업체 세아베스틸과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토지 오염물질과 폐기물 제거에 들어간 비용 97억여원을 배상하라"며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09다66549)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전부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토지 소유자가 오염을 유발하거나 폐기물을 불법 매립했음에도 정화·처리하지 않고 토지를 유통시켰다면 거래 상대방은 물론 토지 전전 소유자에 대해서도 불법행위가 성립한다. 토양오염을 유발한 자는 그 토양오염 상태가 계속돼 발생하는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심에서 프라임개발이 패소한 시·국유지 부분에 대해서도 “타인 소유인 이 사건 시·국유지에 오염토양을 유발하고 폐기물을 불법 매립한 행위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정화·처리비용을 제외한 원심에 판단 누락의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도 있었다. 폐기물이 매립된 토지의 매수인이 그 정화 처리 비용을 지출한 것은 ‘거래 상대방’과 사이에서 논의될 수 있을 뿐이라는 의견이었다. 따라서 이전의 매도인이나 오염유발자에게 책임을 지우려 하는 것은 자기책임의 원칙에 어긋나며, 직접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또 다수의견이 근거로 든 토양환경보건법이나 폐기물관리법 등은 공법상의 의무일 뿐 매립자에게 불법행위 책임을 묻는 직접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

두 번째 사건은 손해배상이 아닌 ‘횡령죄’와 관련된 대법원 판결이다.

A는 서산시에 있는 답(논) 9292㎡ 중 15/49 지분을 C로부터 매수하기로 한다. A는 B의 명의를 빌려 등기를 B이름으로 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등기가 C로부터 B에게 바로 이전됐다. 이른바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이 이뤄진 것. B는 등기가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는 것을 이용하여 논의 지분에 대해 근저당권설정등기를 하고, oo농업협동조합 명의의 기존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을 증액하는 근저당권변경등기도 마쳤다. 이로 인해 B는 횡령죄로 기소됐다.

1심에서 B씨는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상고심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일 공동소유 토지에 저당권 등기를 설정해준 혐의(횡령)로 기소된 B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명의신탁은 불법이며, 신탁자와 수탁자 사이에 사실상 위탁관계가 있다고 해도 보호할 가치가 없다. 따라서 수탁자는 횡령죄의 주체인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로 볼 수 없어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중간생략 명의신탁은 무효이고 소유권은 매도인이 여전히 보유한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기존의 대법원 입장과 크게 다른 것이다. 그동안 대법원은 `중간생략 등기형 명의신탁`의 경우 횡령죄를 인정해왔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