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1월 백악관에서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 그 옆엔 현재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가 지켜보고 있다. <사진출처=www.cnn.com>

[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일명 ‘365일 청문회법’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향후 상임위별 청문회가 무엇을 주제로, 어떤 방식으로 개최될지 벌써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청문회제도가 발달한 미국 의회의 경우, 하루에 10회 이상 청문회를 개최하는 등 횟수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청문회 종류는 입법, 감독, 조사, 인준 청문회 등 크게 4가지 형태로 나뉜다. 청문회의 목적과 범위가 정확하게 설정돼 있기 때문에 정쟁으로 악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입법청문회(Legislative Hearings)는 정책 입안과정에서 여러 관련 인물로부터 진술, 증언을 듣는 청문회다. 우리의 공청회와 유사하다.

감독 청문회(Oversight Hearings)는 행정부에 대한 통제나 감시목적이 크다. 따라서 정부로부터 현안 청취에 적극적이다. 조사청문회(Investigative Hearings)는 정부의 불법성 여부를 조사하며 준사법적 기능을 수행한다. 우리나라의 인사청문회와 성격이 비슷한 인준청문회(Confirmation Hearings)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각료, 대사, 대법관 등의 자격과 과거 행적을 조사하는 청문회로 상원에서 이뤄진다.

미 의회 청문회제도의 특징은 소관위원회의 권한이 크다는 점이다. 청문회 개최 여부가 위원회에서 결정되고 청문 기간도 위원회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된다.

미국의 청문회는 내실 있기로 유명하다. 증인과의 사전면담을 통해 증인 적합성 여부와 결격사유 유무를 확인하고 증인출석시기, 증언 순서에 대해서도 면밀히 사전 검토한다.

상원정보위원회의 조사청문회 경우, 수백만 달러의 예산에 50~70여명의 인원을 지원받는다. 그 중 상당수는 변호사이며 FBI 등 관련기관으로부터 조사관을 파견 받기도 한다.

증인과 관련된 제도도 잘 정비돼 있다. 사전에 증인에게 서면으로 증언내용을 미리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자료와 증거 등을 구체적으로 증인출석요구서에 명기한다. 청문회에 나오는 증인 중 수정헌법 제5조에 명시된 진술 거부의 특권(privilege against self-incrimination)에 따라 증언을 기피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위원회는 재적의원 2/3이상이 다수결로 증언을 강제할 수 있는데 증인보호를 위해 증인에게 일정한 형사적 면책을 인정하는 제도도 있다.

최근에 개최된 청문회 가운데 유명한 청문회는 ‘폭스바겐 청문회’다. 배기가스 배출량 조작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폭스바겐 그룹의 마이클 혼 미국 대표는 하원 에너지상무위원회 산하 감독조사소위에 참석해 "독일의 회사와 동료를 대신해, 그리고 또 개인적으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진심 어린 사죄를 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혼 대표는 “회사 차원의 결정은 아니었다”고 밝혔지만 청문회 내용이 법원 판결에도 일정 영향을 끼쳤다는 게 현지 언론의 평가다.

미 의회는 2010년 850만대 리콜 사태를 일으킨 일본 도요타 자동차 아키오 사장을 청문회로 불러 8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추궁한 적도 있다.

가장 유명한 청문회는 ‘워터게이트 청문회’다. 80일 동안 진행된 이 청문회는 당시 미국 3대 주요 방송사가 순번제로 전국에 생중계했으며, 총 중계시간은 319시간에 달했다. 미국인의 약 85%가 시청한 워터게이트 청문회는 사건의 실체를 낱낱이 밝혔음은 물론 40여명의 행정부 고위 관료를 기소하는데 일조했다.

이밖에 분식회계로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힌 에너지 기업 엔론, 통신기업 월드콤도 청문회로 소환돼 위원들의 질타를 받았고 두 회사는 파산했다.

대통령의 사생활로 청문회가 열린 적도 있다. 이른바 ‘지퍼게이트’로 불렸던 이 사건은 1998년 당시 클린턴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인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 청문회가 열렸고 빌 클린턴 대통령은 공식 사과했다.

한국 청문회 제도는 1988년 13대 국회에서 처음 도입됐다. ‘5공 비리 청문회’로 당시 스타로 떠오른 국회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1997년 ‘한보 청문회’는 부실하다는 평가를 낳았다. 당시 청문회에 출석한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등 증인들은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등의 발뺌으로 일관했다. 이후 주요 국정 현안에 대해 수차례 청문회가 열렸으나 증인들의 무성의한 답변과 청문위원들의 정치성 짙은 질문, 준비 미흡 등으로 실패한 사례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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