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아파트에서 내려다 본 옥바라지 골목의 모습.

[월요신문 김미화 기자] ‘옥바라지 골목’으로 불리는 서울시 종로구 무악동 46번지. 이 일대는 일제 강점기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투사 가족들이 옥바라지를 한데서 유래된 곳이다.

최근 이곳은 재개발과 관련, 이주를 거부하는 주민들과 개발을 서두르는 조합원들간 대립으로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철거업체가 반대 주민들을 강제로 퇴거시키면서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했다. 이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나서 “서울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 공사를 중단하겠다. 내가 손해배상을 당해도 좋다”고 약속한 후 잠정 중단된 상태다. 그 후 옥바라지 골목은 어떤 상태일까.

올해 가장 더운 날씨를 기록한 5월 19일 낮. 옥바라지 골목 앞 인도 한쪽에는 ‘옥바라지 골목 보존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옥바라지 골목 주민들부터 역사학자, 시민단체,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등 열 명 남짓 되는 사람들은 무더위에 아랑곳없이 농성 중이었다.

그 중 예전에 가족이 옥바라지 골목에 살아 농성에 참여하게 됐다는 박종구(58)씨는 “천막을 치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간다”고 입을 뗐다.

그는 “과거 이곳은 애국지사 가족들이 머물면서 옥바라지를 했던 의미 있는 장소다. 과거 이 골목에는 보존가치가 높은 오래된 한옥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무참하게 철거된 상태다. 이제라도 옥바라지 골목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 그래야 우리 후손들이 일제 침략 행위를 잊지 않고 민족 정기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여관 '구본장'의 업주인 이길자씨가 천막 농성을 통해 울분을 토하고 있다.

농성이 이뤄지고 있는 천막 안에는 ‘구본장’여관 주인인 이영범, 이길자 부부도 있었다. 부부의 얼굴은 몹시 피곤해보였다.

구본장 주인 이길자(64)씨는 “이틀 전 구본장 건물에 철거반이 난입했다. 강제 철거에 옷 하나도 못 챙겨 입고 쫓겨 나왔다. 너무 비인간적인 처사에 항의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는 회유를 받은 사실도 털어놓았다. 이씨는 “종로구청에서 우리보고 돈을 더 줄테니 협상하자고 했다. 나는 돈 많이 주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건물 그대로 지키면서 살게 해달라고 말했다. 얼른 빨리 내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호소했다.

옥바라지 골목 존폐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

당초 이 구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주민들을 중심으로 재개발이 추진됐다. 2006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2010년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사업시행인가는 3년 만인 2013년에 이뤄졌고 지난해 7월 관리처분인가를 받았다. 올 1월부터 철거가 시작됐으며, 재개발 추진에 따른 이주도 이어져 지금은 기존 345가구 중 2가구만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실제 기자가 육안으로 보기에도 옥바라지 골목은 원형의 대부분이 사라진 상태였다. 3400여m² 공간 속 건물들은 대부분 철거돼 ‘골목’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분위기도 을씨년스러웠다. 철거업체인 효창건설이, 외부인 접근 금지를 이유로 골목 주변에 3m 높이의 펜스를 쳐놓았기 때문이다.

또 통일로 쪽으로 나 있는 상가건물을 제외하고, 오래된 한옥들은 모두 허물어져 있었다. 한때 종로구청측이 동네 골목길 관광코스로 홍보했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들이 전부 사라진 것이다.

구본장을 제외, 옥바라지골목에 남은 유일한 집인 최은아씨의 집.

현재 옥바라지 골목 안에는 구본장여관과 낡은 2층 가옥 한 채가 유일하다. 그런데 말이 집이지 흉가를 방불케 했다. 그 집 안에 주민 최은아(50)씨가 살고 있다. 최씨를 만나려고 집 가까이 갔다. 집 입구에는 펜스가 쳐져 있었다. 펜스 사이로 들어서자 건장한 체격의 철거용역업체 직원들이 막아섰다. 한 직원이 기자에게 눈을 부릅뜨며 “X같은 것들”이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기자는 때리면 맞을 각오를 하고 안으로 쳐들어갔다. 욕설이 등 뒤에서 따라왔지만 다행히 주먹은 날아들지 않았다.

최은아씨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지 마른 침을 계속 삼켰다. 자초지종을 묻자 최씨는 “명도소송 결과가 안 나왔다. 패소하면 어쩔 수 없이 쫓겨나겠지. 그래도 끝까지 용기를 내 이 골목을 지키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이어 “2013년 말부터 지금까지 대책위원회를 세우고, 옥바라지 골목 보존을 위해 애쓰고 있다. 옥바라지 골목 주민으로는 내가 유일하다. 나마저 무너지면 이 골목은 완전히 사라진다”고 말했다.

옥바라지 골목은 재개발과 보존 가치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 상태다. 역사성이 있는 만큼 보존에 대한 의견 수렴은 없었을까. 이에 대해 최은아씨는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마을 주민들이 순수하게 믿었던 게 탈”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OS요원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옥바라지 골목 안에 있는 집을 삼삼오오 방문해 그럴 듯한 말을 했다. 조합 간부가 주민 손을 붙잡으며 ‘왜 이렇게 고생하면서 사느냐. 우리 모두 깨끗한 아파트에서 살자’는 등 달콤한 말을 했다. 옥바라지 골목 주민들은 어르신이 대부분이라 조금만 말동무해주고, 다정하게 대해줘도 넘어간다. 시작은 그렇게 된 거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또 “새 아파트로 입주하려면 개인분담금을 내야하는데 그 금액에 대해서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헌집 주면 새집 줄게, 그런 식으로 말하고 다녔다. 마을 어르신들이 모두 순수해서 그 말에 넘어간 거다”라고 말했다.

옥바라지골목을 둘러싼 펜스에 적힌 글들.

농성자 중에는 뜻밖에도 일본인이 있었다. 역사문제연구소에서 한국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는 연구원 후지이 다케시다. 다케시에게 여기 왜 있는지 이유를 물었다.

다케시는 “서대문형무소가 가치있게 여겨지는 것은 거기에 독립운동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탄압받았을 뿐 아니라 저항했다. 그리고 감옥 밖에서는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독립운동가 가족의 애환이 서린 옥바라지 골목을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케시는 또 농성에 참여하게 된 배경에 대해 “역사학도로서 책임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옥바라지 골목 문제가 좀더 공론화됐더라면 철거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며 안타까워했다.

청년 한 사람도 만났다. 자신을 해방촌 ‘빈집’에 사는 주민이라고 소개한 마씨(25세)는 “연대활동의 일환으로 이곳에서 머무르고 있다. 처음에는 친구를 따라왔는데 계속 머무르다 보니까 구본장여관이 내 집 같은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옥바라지 골목의 갈등이 내 일처럼 느껴진다. 내가 살고 있는 해방촌도 도시재생명목으로 소박하게 살던 공간을 관광특구로 바꾸려 하고 있다. 그래서 옥바라지골목 주민들의 마음을 더 이해한다. 농성을 같이 하면서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거가 이뤄진 옥바라지 골목 모습. 전면에 보이는 회색 건물은 강제철거가 이뤄졌다가 중단 된 여관 '구본장'.

반면 재개발사업조합측은 이곳이 옥바라지 골목임을 증거하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며 개발을 서둘러야한다는 입장이다.

조합 측 관계자는 “옥바라지 골목 보존대책위원회 측이 그 구역을 옥바라지 골목이라고 자꾸 이슈화가 시키고 있는데 사실 그곳은 옥바라지 골목이 아니다. 진짜 옥바라지 골목은 독립문 공원이 위치한 곳인데 이미 철거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지금 남아있는 구본장 주인과 최은아씨가 철거를 반대하는 이유는 더 많은 보상금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다. 두 가구 모두 감정 평가로 나온 보상금액은 수령해 간 상태다. 그렇지만 현재 두 가구는 이 금액이 부족하다며 각각 시세가 반영된 현실적인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조합원이 더 안타까운 상황에 놓였다고 주장했다. 조합 측은 “서울시 재개발구역 250개 중 저희 구역이 제일 조그만 구역이다. 대부분의 가구가 2-3억원 수준의 보상금을 받고 나갔고, 두 가구에 대해서만 추가보상금을 주는 건 어렵다. 조합원들이 약자다. 조합원들 84명 대부분이 폐휴지를 줍거나 청소 일을 해 모은 돈으로 아파트를 들어가려고 하는 분들이다”라고 말했다.

옥바라지골목 보존대책위원회는 옥바라지 골목 바로 옆 인도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조합 측의 이런 주장에 농성자들은 혀를 찼다.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다케시는 “일제 강점기의 한국 역사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이곳은 독립운동가를 옥바라지한 골목이 맞다. 조합쪽에서 반대 주민이 돈이 목적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주민들의 본심이 돈 문제였다면 나는 벌써 이곳을 떠났을 것이다. 돈만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그들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취재를 마치고 일어설 무렵 천막 바깥으로 초등학생 다섯 명이 지나갔다. 초등학생들은 천막에 쓰인 구호를 보더니 “옥바라지 골목을 꼭 지켜주세요”라고 응원했다. 그러자 농성자들이 천막에서 뛰쳐나와 음료수를 아이들에게 나누어줬다. 그러면서 말했다.

“고맙다. 꼭 승리할게.”

옥바라지골목 보존을 원하는 피켓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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