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서울 은평구 지역구 사무실에서 만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당선인.

[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한순간에 직장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고, 자식을 잃은 사람들이 있었다. 평범하게 살아온 그들이 싸울 방법조차 모르고 있을 때 어김없이 현장으로 달려간 사람이 있다. 20대 총선에서 서울 은평갑에 출마해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변호사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이슈의 현장에 늘 함께 했다. 용산 참사, 쌍용차 정리해고,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밀양 송전탑, 세월호 등 현안도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세월호는 언론이나 여러 단체에서 그를 ‘세월호 변호사’라고 부를 만큼 각별하다.

국회 등원을 6일 앞둔 지난 24일 박주민 당선인을 만났다. 첫 질문으로 논란이 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기간부터 물었다.

- 세월호 특조위 조사기간을 놓고 정부 여당과 야당의 해석이 다르다. 조사는 언제까지 가능한가.
▲ 해수부 해석대로 하면 6월 30일부로 조사기간이 만료된다. 여당은 법이 발효된 2015년 1월부터 조사가 시작됐다고 본 반면 야당은 특조위 구성이 완료된 2015년 7월부터로 6개월의 차이가 난다.

-결과적으로 조사기간이 반년 줄어든 셈인데 여야가 해석을 달리 한 이유가 뭔가. 법조문에는 어떻게 돼 있나.
▲법문상으로는 위원회 구성을 마친 날로부터 계산한다고 돼 있다. 법 시행일인 1월 1일에는임명장을 받은 위원이 한 명도 없다. 그런데도 여당은 위원회 구성을 마친 시점으로 1월 1일을 상정했다. 명백히 법 해석을 잘못한 것이다.

-세월호특별법 개정안은 어떻게 되나.
▲19대 국회가 끝나면 자동 폐기된다.

-세월호 특조위에서 요청한 특검도 무산되나
▲특검 요구안도 자동 폐기된다.

- 정부 측 입장이 바뀌면 조사기간 연장이 가능한가.
▲정부가 법 해석을 바꿔주면 공백 없이 조사를 계속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부는 특조위 백서 관련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 파견 공무원 전원을 7월 1일자로 원대 복귀시키겠다고 했다. 이대로 가면 7월부터 세월호 특조위에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활동에 제약이 걸릴 게 걱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특별법 개정 문제는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문제이고,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라고 언급했다. 특조위 활동에 예산이 많이 들어가나.
▲당연히 예산이 들어간다. 그러나 그 금액이 아주 많은 편은 아니다. 특조위 활동에 드는 비용은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고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비용이다. 그걸 세금과 연관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청와대에선 세월호 ㅅ자도 못 꺼내는 분위기라고 들었다. 왜 그렇게 싫어하시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국회가 개원되면 세월호와 관련해 어떤 일을 할 생각인가.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6월 중에 통과시키려고 한다. 우상호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원대대표가 원구성을 빨리 끝내 6월에 통과시킬 법 중 세월호 특별법을 포함하는 논의를 하고 있는데 가능할지 걱정이다. 새누리당이 지금 지리멸렬한 상태라 논의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단 개정안을 발의한 후 특조위 활동과 맞물려 특검 등 다양한 대책을 준비 중에 있다.

세월호 얘기는 이쯤에서 끝내고 정치인 박주민에 대해 질문 방향을 바꿨다. 이에 박 당선인은 더불어민주당 입당부터 선거를 거쳐 당선되기까지 정치 초년병이 겪은 여러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그 중에서도 공천과 관련해 그 과정을 밝힌 것은 이번 인터뷰가 처음이다.

-더불어민주당 입당 배경이 궁금하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입당은 1월 말에 했지만 영입제의는 12월 초에 받았다. 문재인 전 대표 측근 인사 한분이 "인권변호사로서 많은 일을 했는데 정치를 해도 잘 할 것 같다. 당이 어려우니 좀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 전에 다른 당에서도 영입 제의를 받았는데 그 당시에는 정치할 생각이 없어 거절했다. 그런데 이번엔 시점이 달랐다. 평소 정치가 제대로 돼야 국민의 삶이 나아질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새누리당이 그 역할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더욱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이 압승할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절망적이었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깝다는 말을 떠올렸다. 야당에 희망을 걸고 이 작은 한 몸 던져보자고 결심했다.

-그때가 언제인가. 결심 후 곧바로 입당한 것인가.
▲곧바로 입당한 것은 아니다. 문 대표 측근 인사들은 "문 대표가 사퇴하기 전에 입당해야한다"며 서둘러 결정했으면 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주변에서 아는 분들이 "지금 야당 상황이 안 좋은데 왜 불구덩이로 뛰어드느냐"고 말렸다. 공교롭게도 입당 제의를 받을 무렵 몇몇 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안하기도 했고 방송국에서 진행자로 섭외 요청이 왔다. 학생들 가르치고 방송 출연해서 인지도 쌓으면 4년 후에 꽃가마타고 국회에 들어갈 텐데 왜 사서 고생하려느냐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내게 닥친 이 현실을 피하면 비겁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상태에서 세월호 유가족 분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유족 분 중 한분이라도 반대하면 입당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세월호 유가족 분들은 입당에 찬성했다. 입당은 그렇게 해서 결정된 거다.

- 공천 발표 마지막 날, 전략공천이 확정됐다. 그만큼 공천이 쉽지 않았다는 반증인데 당시 상황이 어떠했나.
▲ 비대위에서 중도외연 확장으로 총선 전략을 짰는데 나를 두고 ‘너무 강성이다’라는 의견이 오갔다고 들었다. 공관위에서는 공천을 올렸는데 비대위에서 당 색깔과 맞지 않는다고 반려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공천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던 것 같다.

- 공천이 확정된 뒤 심정은?
▲ 막막했다. 은평갑은 연고가 없는데다 선거일까지 24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선거를 치르라고 하니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다행히 이미경 의원 본인은 물론 지역 당원 분들이 적극 돕겠다고 나서 겨우 조직을 정비해 선거에 뛰어들었다.

-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나.
▲ 선거운동 초반에는 ‘얘가 누구지’라는 반응이 많았다. 명함을 받은 한 어르신은 “경선은 언제 치르냐”라고 물어봤다. 나를 이미경 의원과 경선을 치르려고 나온 예비후보인줄 아신 거다. 이후 팟캐스트나 언론을 통해 내가 어떤 인물인지 보도를 통해 접하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선거일 5일쯤 지나니까 초등학생들도 알아보고 사진찍자는 사람들, 응원한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 때 해볼만하다는 느낌이 왔다. 캠프 선거사무장님이 이렇게 인지도가 수직상승한 건 기적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 며칠 후면 의정 활동을 시작하는데 어떤 정치를 할 계획인가.
▲입당하면서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가 하겠다고 다짐했다. 국회의원 신분에 집착하기보다 힘들어하시는 분들을 직접 찾아뵙고 어려움을 덜어주는 정치를 하고 싶다. 또 국민들이 쉽게 정치에 참여하고 감시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한마디로 정치의 문턱을 낮추고 싶다.

- 국회는 상임위 활동이 중요한데 염두에 둔 곳이 있나.
▲ 그간 해왔던 일의 연속성을 위해 안전행정위원회로 갈 생각이다. 세월호 관련 부처인 국민 안전처와 경찰청이 안행위 소관인 이유도 있다. 개인적으로 민주주의에 관심이 많다. 안행위에서 선거제도나 정당제도를 손질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한 단계 발전하는데 기여하고 싶다.

- 인권변호사가 된 사연이 궁금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 고등학교 때는 공부만 했다가 대학에 들어오니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농활을 비롯해 공장, 철거촌 등 다양한 곳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 때 느낀 점이 있었다.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때 가장 즐거워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불쑥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변호사라면 실질적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공익적인 일을 보장해주는 로펌에 들어가 6년 정도 다니다 친구들과 로펌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다.

- ‘세월호 변호사’ 외에 ‘거리의 변호사’라는 별명도 있는데.
▲ 로펌을 차리고 나서 일이 많아졌다. 여기저기 불려가고 현장에 가방매고 서 있거나 뛰어다니거나 했다. 그 때 사람들이 나를 거리에서만 본다고 하면서 별명이 그렇게 돼버렸다. 아무리 동분서주해도 매번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돌이켜보면 밀양 송전탑 피해 주민, 제주 강정마을 주민, 쌍용차 해고 노동자,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던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주무관, 서울역 고가에서 분신하신 이남종씨 등에게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한 것 같다. 왜 밀양 할머니들이 옷을 벗고, 목에 쇠사슬을 감아야 하며, 제주에서 가장 살기 좋았던 강정마을 주민의 절반이 전과자가 돼야 하는지. 그런 현실이 황당했고 정치가 제대로 기능을 한다면 애초에 이런 분들이 안 생기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 정운호 게이트, 홍만표 리스트로 법조계가 시끄럽다. 법조인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나.
▲ 우리나라 법조계는 매우 후진적이다. 사회의 여러 현안과 갈등을 해결하는 주요한 시스템이 사법인데 이 사법시스템이 돈 있는 자, 힘 있는 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게끔 기울어져 있다. 이런 실태는 지금 당장 내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내 문제가 될 수 있다. 11년간 인권변호사로 하면서 만났던 분들도 법원에 갈 일이 없던 분들이었다.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 지금 바로잡아야 한다. 법조개혁이 이뤄져야 ‘유전무죄 무전유죄’ 불만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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