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지&컴퍼니의 계간지 ‘맥킨지 쿼털리’ 5월호는 ‘성과관리의 미래’라는 글에서 “해마다 치러지는 성과평가가 부조리의 전형이라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공공연하게 제기되어온 최악의 비밀(worst-kept secret)"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출처=맥킨지&컴퍼니 홈페이지 캡쳐>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해마다 치러지는 성과평가가 부조리의 전형이라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공공연하게 제기되어온 최악의 비밀(worst-kept secret)이다. 성과평가제도는 시간 소모적이고 지나치게 주관적이며 동기부여 효과도 없어 궁극적으로 성과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컨설팅회사 ‘맥킨지&컴퍼니’의 계간지 ‘맥킨지 쿼털리’ 5월호가 ‘성과관리의 미래’라는 글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성과급제도는 ‘성과평가 결과에 따라 임금을 차등적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성과가 높은 직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는 취지여서 얼핏 합리적으로 들린다. 성과급제도 도입을 찬성하는 측은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해 직원들이 경쟁하다보면 자연히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고 이는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리는 “인간은 경제적 유인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는 가정에 기초한다.

최근 정부가 “성과연봉제 미도입 공공기관은 인건비와 경상경비를 동결 또는 삭감하겠다”는 방안까지 제시하며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확대를 압박하는 이유도 표면적으로는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맥킨지가 이러한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맥킨지는 “그동안 성과급제도를 시행해온 기업에서 △객관적 성과지표의 개발 및 평가의 한계 △지나친 연봉 격차로 인한 직원들 간 위화감 조성과 사기저하 △상대평가로 인한 경쟁 심화와 협업 저해 등의 역효과가 광범위하게 나타났다”며 “최근 성과연봉제를 폐기하거나 수정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GM이다. 한국GM은 1999년 과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이후 2003년에는 전체 사무직종으로 확대 적용했다. 사무직을 5등급으로 나눠 최하 등급은 임금을 동결하고 최상위 등급은 20% 인상했다.

그 결과 노사관계와 조직문화에 심각한 문제가 나타났다. 친분관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 일이 많아 평가제도의 객관성과 신뢰성이 떨어졌고 상·하급자와 팀원들 간 불신이 팽배해졌다. 입사 동기간에도 연봉 차이가 1,000~2,000만원 씩 벌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해 조직 내 위화감도 커졌다. GM이 2013년 6월 노사합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조합원의 83.1%가 성과연봉제에 ‘부정적’이라고 답변했다. 승진제도와 평가제도에 대한 불신도 80%를 넘어섰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 한국GM지부 사무지회는 성과중심 연봉제가 “개인 간 임금격차를 심화시키고 동료들 간의 지나친 경쟁을 조장해 협력적 조직문화를 파괴했다”고 평가했다.

성과연봉제의 폐해가 심각하게 드러나자 한국GM은 2014년 4월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고 연공급 체계의 임금제를 재도입했다. 직원들의 안정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연공급제를 기초로 하되 일정부분 성과를 반영하기로 합의했다. 또 직원 사이에 과도하게 벌어진 임금 격차가 조직문화를 해친다는 판단아래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캐치업(catch up) 제도도 도입했다. 이러한 변화는 성과연봉제의 문제점에 대해 노사가 공감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한국GM지부 사무지회는 “기존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고 연공급제에 기초한 새로운 임금체계를 만든 것은 매우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제너럴일렉트릭(GE)과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상대평가에 기초한 성과연봉제는 “파괴적이고 야만적인 제도”라며 폐지했다.

GE는 1980년대 초반부터 하위 성과자 10%를 해고하는 이른바 ‘10% 룰(rule)’을 시행해왔다. 1981년 잭 웰치가 GE의 회장이 되면서 도입한 제도다. 이 제도에 따라 GE는 1년에 한 번 상대평가를 통해 직원들을 두뇌집단(상위 20%), 중간집단(중간 70%), 꼬리집단(하위 10%)로 나눠 임금과 대우를 차별적으로 적용했다. 이러한 GE의 인사제도는 잔혹하기로 유명했다. 직원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일정 규모의 저성과자가 매번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매년 직원의 10%가 정리해고로 잘려나가자 직원들의 사기와 능률이 저하되고 상호 불신과 불화가 급증하는 등 극심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결국 GE 경영진은 ‘10% 룰’을 버리고 ‘GE PD(GE Performance Development)’라는 새로운 인사시스템을 도입했다. 연 1회 실시하던 기존의 인사평가를 연중 상시평가로 전환했다. 해고자를 찾기 위해 시행했던 상대평가는 개인별 절대평가로 전환했다. 여전히 직원들은 평가 대상이지만 달라진 점은 과거에 비해 더 자주, 더 다양한 사람들이 평가한다는 점이다. 또한 모든 직원이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게 하고, 이 피드백 데이터를 통해 직원을 평가한다.

GE의 인적자원(HR) 관리를 담당하는 제니스 셈퍼 조직문화혁신팀 총괄부사장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웰치 경영지침서를 버려라’라는 말이 유행이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10% 룰’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옛날 얘기”라고 말했다. 셈퍼 부사장은 이어 “과거 ‘10% 룰’이 직원들의 성과를 평가해 차별적 보상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GE PD로 대표되는 현행 인사 시스템은 직원들의 역량을 개발하고 성과를 높이는 것이 목표다. 직원들이 서로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조직 내 상명하복 문화가 사라지고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GE에 ‘10% 룰’이 있었다면 마이크로소프트에는 일명 ‘스택랭킹(stack ranking)’이 있었다. 스택랭킹이란 상대평가 성과관리체계로 직원들을 평가해 1~5등급까지 나눈 다음 최하등급 직원을 내쫒는 제도다. 상대평가에 따라 일정비율은 4~5등급의 저성과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에 조직 내에 유능한 직원과 함께 일하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또한 최하위 등급을 정리한 상황에서도 1년 뒤에 또 다시 최하위 등급을 매겨야 하는 문제가 지속됐다.

지난 2012년 7월 미국 월간지 ‘베니티 페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기사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전현직 임직원들을 인터뷰하고 내부 자료를 검토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택랭킹이 회사를 망치고 직원들을 떠나가게 했다. 직원들의 경쟁의식을 높이려고 도입한 제도가 협업 분위기를 망쳐 놨다. 직원들은 구글 등 떠오르는 IT 강자들과 경쟁하는 대신 동료들과 경쟁했다. 한 부서에서 큰 성과를 내더라도 기계적 비율에 따라 평가를 해야 하다 보니 언제나 하위등급 직원이 나왔다. 스택랭킹이 관리자들의 내부 권력투쟁 도구로 활용되는 사례도 발생했다. 평가가 관리자에게 얼마나 잘 보이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폐단이 드러난 것이다.”

뒤늦게 병폐를 깨달은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2013년 11월 스택랭킹 폐지했다. 당시 인사 담당 부사장이었던 리사 브루멜은 모든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과평가 체제가 바뀐다. 더 이상 등급은 없다”며 “하나의 마이크로소프트(One Microsoft) 운동을 통해 직원 간의 협업을 강화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스택랭킹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관리자들이 직원들과 1년에 적어도 두 번 이상 만나는 ‘커넥트 미팅(Connect Meeting)’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업무 우선순위 결정과 성과 달성에 필요한 교육과 지원이 적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팀워크와 협력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개별적으로 부여된 업무뿐만 아니라 다른 사원의 제안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다른 직원의 성공을 위해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등도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또한 관리자들이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줄 때 유연성을 보장해 팀과 개인의 성과를 고려해 적당하게 배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전문가들은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거나 수정하는 사례를 돌아볼 때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확대’는 원점에서 다시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공기관은 민간 기업에 비해 성과를 평가할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기가 힘들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의 성격상 성과보다 공공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는 이유에서다. 공공기관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성과연봉제도의 도입할 경우 역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국내에서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도입한 성과관리제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GE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미 폐기한 ‘구식’인 경우가 많다. 이는 잭 웰치가 산업화시대의 경영 환경에 맞게 고안한 개념을 디지털시대에 도입하는 셈이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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