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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27일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STX조선은 지난 2013년 4월 자율협약에 들어간 이후 38개월 동안 4조5,000억원을 투입했지만 지난해에도 1,820억원의 손실을 내는 등 회생의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지금과 같은 수주절벽 상황에서는 STX조선이 법정관리에 돌입하더라도 사실상 청산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들이 모두 도산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법정관리 절차를 거친 이후 재기에 성공한 기업들도 많다. 지난해 나란히 법정관리를 성공적으로 벗어난 쌍용건설과 동양건설산업, (주)건영이 대표적 사례다.

2013년 12월 법정관리를 신청한 쌍용건설은 지난해 3월 법정관리를 성공적으로 졸업했다. 쌍용건설은 기업 정상화 이후 지난해 12월 두바이에서 3개 프로젝트, 총 16억 달러를 수주하는 성과를 올렸다. 올 초에는 싱가포르에서 도심지하철 ‘TEL 308 공구’를 2억5,200만 달러에 수주했다. 지난 20일 한국수자원공사가 발주한 1,327억원 규모의 ‘수도권(Ⅱ) 광역상수도 용수공급 신뢰성 제고사업 제2공구’ 사업을 수주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쌍용건설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60억원을 기록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 4월 4년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한 동양건설산업도 실적 개선에 나섰다. 동양건설산업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258억원으로 지난해 동기(135억원) 대비 91% 증가했다. 2011년 3월 법정관리 신청 후 지난해 4월 회생절차를 조기 졸업한 건영은 지난해 907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법정관리 후 재기에 성공한 기업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기업 관계자들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이 구조조정 이후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핵심 사업이나 인재 등과 같은 기업 가치의 유지 △협력사와의 신뢰 형성 △조직 구성원들의 애사심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쌍용건설, 동양건설산업, 건영 이들 세 건설사는 “법정관리 기간 동안 기업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무엇보다 핵심 인재의 이탈이 가장 두려웠다”며 한 목소리로 말했다. 건설업의 특성상 주요 사업을 수주하려면 특정 자격증을 가진 인력을 일정 규모 이상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핵심 기술 인력’이 이탈하면 기업의 시장 경쟁력도 추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 건설사는 핵심 인력의 이탈을 막기 위해 직원들에게 기업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강력한 인센티브 제도로 직원들을 다독였다. 특히 건영은 매월 초에 일반 직원까지 참석하는 조회를 열어 지난달에 있었던 크고 작은 사안들을 공개하고 앞으로의 사업 방향을 소개해 비전을 공유하는데 힘썼다. 동양건설산업 역시 매주 진행하는 부서장 회의를 소통 창구로 삼아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거져 나오는 근거 없는 루머를 잠재웠다.

협력사와 신뢰를 형성ㆍ유지하는 것도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지난해 1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투자청이 쌍용건설을 인수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요인 가운데 하나도 신뢰였다. 이와 관련 쌍용건설 관계자는 “쌍용건설이 해외 건축과 토목 분야에서 기술력과 경쟁력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해외 사업장을 각별하게 관리해 협력사와의 신뢰를 형성한 역량이 특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며 “김석준 회장이 법정관리 기간 동안 주말도 반납하고 해외 발주처를 찾아 공사를 꼭 완료하겠다고 끊임없이 설득했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쌍용건설은 2014년 법정관리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810만달러 규모의 말레이시아 랑카위 호텔 컨벤션 공사를 따냈다. 동양건설산업도 법정관리 당시 63개였던 국내 사업장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해 협력사들의 신뢰를 얻었다.

가족적이고 끈끈한 기업문화도 기업의 재기에 큰 역할을 한다. 쌍용건설은 법정관리 중이던 2014년 9월 아프리카 적도기에서 약 3억달러 규모의 신공항 터미널과 행정청사 빌딩, 다용도 상업시설 등 3건의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어렵게 사업을 따냈지만 당시 경영진 내부에서는 ‘회사가 어려운데 누가 오지로 파견을 가겠나’라는 회의도 컸다. 하지만 막상 파견자 모집 공고가 발표되자 직원들이 너도나도 파견을 자청했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당시 회사가 어려워 사업이 엎어질 수도 있는데 오지의 공사판으로 가겠다고 나서는 직원들을 보며 감동했다”며 “덕분에 발주처에 ‘쌍용건설이 공사를 완료할 의지가 강하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법정관리 기업이 조기에 졸업하는 사례가 늘어난 데는 제도적 영향도 크다고 지적한다. 특히 2006년 ‘통합도산법’ 제정 이후 법정관리를 신청해 재기에 성공하는 기업 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기존의 경영진이 물러나고 새로운 법정 관리인이 기업을 운영하도록 했다. 그래서 법정관리는 경영자에게 ‘무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통합도산법은 큰 과오가 없는 한 법정관리를 신청한 회사의 기존 경영자가 법정 관리인을 맡을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법정관리를 졸업하고 재기에 성공한 기업의 수는 2007년 21개에서 지난해 165개로 급격히 증가했다.

2011년에 도입한 ‘패스트트랙 제도’의 영향도 기업의 재기에 도움이 됐다. 과거에는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이 조기에 빚을 갚아도 채무 상환기간 10년을 채워야 법정관리를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재무구조 개선에 성공한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회생 절차에 묶여 사업 수주, 입찰 참가 등의 활동에 제한을 받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에 회생절차를 이행한 기업은 변제 기간 전에라도 조기 졸업시켜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했다. 패스트트랙 도입 이후 쌍용건설 1년 2개월, 대한조선 1년 3개월, 동양 2년 4개월 등 1~2년 안에 법정관리를 졸업하는 회사가 늘었다.

법정관리 이후 기업회생에 성공하는 사례가 늘다 보니 경영난에 직면한 기업들의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재희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부장판사는 “부실 초기에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기업이 예전보다 크게 늘었다. 회생절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희석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부실초기에 회생 절차를 밟는 게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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