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스트랫포>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미국의 세계적인 민간 싱크탱크인 스트랫포(STRATFOR)가 북한의 핵무기 시설 정밀타격 시나리오를 작성해 회원단체 및 정부기관에 발송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워싱턴 정가를 중심으로 북핵 문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을 지지하는 대북 강경론이 득세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스트랫포는 지난달 25일 ‘무력을 통한 핵 프로그램 대응(Dealing a Nuclear Program by Force)’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이 북한 핵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을 때의 주요 공격 대상과 정밀타격에 필요한 각종 무기의 종류와 성능 등이 보고서의 주요 내용이다. 보고서는 “북한은 미국과 한국이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적 이슈로 인해 북핵 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핵 개발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미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실전배치하고 나면 군사적 옵션은 검토조차 불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북한의 핵 개발 능력을 백지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공습해야 할 주요 대상으로 5메가와트(MWe) 원자로가 있는 영변 단지와 태천의 200메가와트(MWe) 원자로 건설현장 등 주요 플루토늄 생산시설을 꼽았다. 또한 “북한의 추가 핵물질 확보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평산 광산 등 우라늄 관련 설비도 파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이어 “노동, 무수단, KN-08, KN-14 등 핵 장착을 시도해온 주요 미사일 전력, 핵 투하가 가능한 H-5(IL-28의 중국산) 폭격기, 탄도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잠수함을 건조 중인 신포항 등 주요 시설을 한꺼번에 파괴하는 것이 정밀타격 작전의 핵심 목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B-2 폭격기와 F-22 전투기 동원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북한 핵시설 파괴를 위해 미국이 동원할 수 있는 자산을 열거한 부분이다. 보고서가 가장 유력한 수단으로 B-2 폭격기와 F-22 전투기를 꼽았다. 보고서는 “북한의 레이더망을 뚫고 직접 타격이 가능한 이들 전력이야말로 북핵 파괴 전력의 주축”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B-2의 경우 미 본토에서 언제든 10대 이상 한반도로 출격시킬 수 있다. 반면 F-22는 작전 반경이 짧아 사전에 주한ㆍ주일미군기지에 배치해둬야 하는 한계가 있다.

F-22에 GPS유도폭탄 JDAM이 장착된 모습 <사진출처=스트랫포>

보고서는 북한의 주요 시설 폭격에 사용될 폭탄의 종류와 수량도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B-2는 900kg급 GBU-31을 16기까지 탑재할 수 있고, 지하시설 파괴용인 13,600kg급 GBU-57도 2기까지 장착할 수 있다. F-22의 경우 한 대당 450kg급 GBU-32 2기를 장착할 수 있다. 보고서는 “B-2 폭격기만 작전에 투입해도 총 10기의 지하관통탄과 80기의 GBU-31을 쏟아부을 수 있다. 여기에 F-22가 주축이 돼 2차 공격까지 감행하면 북한의 핵 개발 인프라는 백지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폭격기 'B-2 스피릿' <사진출처=스트랫포>

보고서는 이어 “공군전력이 핵시설을 타격하는 동안 2~4척의 오하이오급 잠수함을 동해안에 배치해 BGM-109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300여 기를 발사하면 북한의 미사일기지와 공군기지를 동시에 파괴할 수 있다. 7함대 소속 구축함이 합세할 경우 발사 가능한 순항미사일의 수량은 600기까지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북한 내 주요 목표물이 미국이 보유한 폭탄이나 미사일의 숫자나 규모에 비해 훨씬 적다. 정밀타격만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기습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이러한 작전은 필수적으로 확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행돼야 하기 때문에 북한의 모든 주요 전력을 한꺼번에 무력화할 수 있는 대규모 전쟁을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또 “북한이 장사정포와 생화학 공격, 단거리 미사일, 특수부대, 사이버전까지 동원해 보복공격에 나설 것”이라며 “이 경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인구밀집지역이 엄청난 타격을 입겠지만 북한의 노후한 무기체계와 높은 불발탄 비율 등을 감안할 경우 인명피해는 수천 명 선에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북한 핵시설에 대한 공격 여부는 북한의 핵무장이 현실로 닥쳤을 때 지불해야 할 대가와 현재 상황에서 정밀타격을 실행했을 때 입게 될 보복공격의 피해를 비교해서 결정할 사안”이라며 “북한 핵 능력을 파괴하는 작전을 수행할 완벽한 타이밍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평양이 매년 핵무장을 강화하는 사실만큼은 명확하다”며 보고서를 마무리 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스트랫포의 주장과 달리 미국의 공습으로 북한이 대규모 보복공격을 감행할 경우 한국은 경제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며 “스트랫포의 보고서 내용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 수석연구위원은 또 “만약 미국이 한반도 주요 도시에 대한 미사일방어체계를 확실히 하지 않고 정밀타격을 감행한다면 동맹을 위험에 처하도록 했다는 국제적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페리보고서와 정면 배치돼 주목

스트랫포의 이번 보고서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 지침서가 되어온 ‘페리보고서’의 기조와 정면 배치된다. 페리보고서는 클린턴 대통령이 1998년 전 국방부장관 윌리엄 페리를 북한정책조정관으로 임명해 8개월 동안 대북한 정책을 전면 재검토한 끝에 작성된 대북정책 권고안이다. 대북 포용을 기조로 한 페리보고서는 북한과 미국 등 동맹국들 간의 호혜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3단계 접근방식을 제시했다. 1단계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지와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 2단계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중단, 3단계로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을 권고하는 내용이다. 페리보고서는 북한이 미국의 제안에 응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군사 공격 등 강경대응에 대한 언급이 빠져 소극적인 정책안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번 보고서를 발표한 스트랫포는 정치, 경제, 국방, 외교 분야의 이슈를 분석하는 세계적인 민간 싱크탱크로 1996년에 창립됐다. 스트랫포는 그동안 학계 연구자뿐 아니라 전직 정보 분석 관료나 군 출신을 적극적으로 영입해왔다. 노련한 국제정세분석가이자 미래예측가인 스트랫포의 창립자 조지 프리드먼(George Friedman)은 정세분석 적중률이 매년 80%에 달해 ‘21세기의 노스트라다무스’로 불린다. 그가 쓴 각종 브리핑과 칼럼, 보고서는 전 세계 언론과 정부기관에서 최우선으로 검토해야 할 정보로 분류된다. 스트랫포는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기업들과 정부기관들을 회원으로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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