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아바즈(AVAAZ)>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지난 14일 정부가 ‘에너지ㆍ환경ㆍ교육 분야 공공기관 기능조정안’을 발표했다. 이번 기능조정안에는 ‘8개 에너지 공기업의 주식시장 상장’ 및 ‘전력ㆍ가스 분야의 민간시장 개방 확대’ 계획도 포함됐다. 공기업의 독과점 분야를 민간에 개방해 경쟁체제를 도입하면 효율성이 높아지고 소비자의 선택권도 확대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정부의 기능조정안 발표 이후 학계 전문가,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이번 기능조정안을 통해 민영화의 첫 단추를 끼우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시민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게 될 에너지 공기업의 민영화 문제가 공론화 과정을 통한 사회적 합의 없이 정부의 일방적 결정에 의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공공기관의 비효율을 개혁하자는 취지일 뿐 절대 민영화가 아니다. 상장을 한다고 해서 바로 민영화로 이어진다는 것은 기우다. 민영화에 대한 우려 등을 참작해 정부 지분을 51% 이상 유지하고 상장 비율을 20~30%로 제한하도록 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공공서비스 요금 폭등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 정부는 “경쟁체제가 도입되면 에너지산업의 효율성이 높아져 요금이 인하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수익성을 앞세우는 민간기업의 성격상 결국은 요금이 인상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반박도 만만찮다. 이와 관련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원가 이하로 공급되고 있는 국내 전기요금의 경우 시장을 민간에 개방하더라도 요금을 더 낮추기는 어려운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기업들이 경영악화 등을 이유로 에너지 가격의 현실화를 요구한다면 공공서비스 가격의 폭등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송유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도 “에너지산업을 시장에 개방한다는 말은 사실상 전기나 가스 판매의 민영화로 봐야 한다”며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속성상 요금 인상은 어쩔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93년 철도 민영화를 시행한 영국은 민영화 이후 공공서비스 요금이 폭등한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영국 보수당 정부는 “민영화가 되면 철도 가격은 더 저렴해지고 서비스 질은 향상될 것”이라며 영국 국영 철도를 100여개의 기업으로 분할매각했다. 하지만 민영화 이후 영국의 철도 운임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2012년 1월 BBC가 철도 민영화 20주기를 맞아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13년까지 영국의 물가가 65% 오르는 동안 런던에서 맨체스터까지의 일반 운임은 208%, 에딘버러까지는 134%, 엑스터까지는 205%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대부분 지역으로의 운임상승률도 물가상승률을 크게 웃돌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해당 구간은 극단적 사례에 불과하다. 영국 시민들이 사용하는 통근 정기권의 경우 평균 65%의 운임 상승에 그쳤다”고 반박했지만 BBC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영국 정부가 정기권의 가격을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올리지 못하도록 통제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과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전력시장 민영화 직후 가격상한제와 요금할인제를 시행하면서 전기 가격이 일시적으로 하락했지만 민간 기업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기 요금 인상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2001년 ‘캘리포니아 전력 사태’를 경험한 이후 미국은 전체 51개 주 가운데 35개 주가 소매 경쟁을 중단하거나 관련 법안을 폐기했다. 1998년 전력 판매 자유화를 실시한 독일과 2007년 소매 경쟁을 도입한 프랑스 역시 제도 도입 직후에는 요금이 하락했지만 몇 년 후에는 주택용과 산업용 전기 가격이 모두 상승했다. 1990년대 중반 가스 산업을 민영화한 일본의 경우 가정용 가스 요금이 급격하게 상승해 2011년 기준 가정용 가스 요금(165.3달러/㎿h)은 산업용 가스 요금(70.3달러/㎿h)의 2배를 넘어섰다.

<자료출처=영국 교통부 보고서 ‘Realising the Potential of GB Rail(2011)’>

정부가 새로운 성장분야를 찾지 못한 대기업들에게 영리 추구를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사업 기회를 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실제로 지난 2011년 영국 철도 민영화의 문제점을 분석한 영국 교통부의 한 보고서는 “1993년 영국 국영철도를 민영화한 이후 민간 철도 기업들의 수익률은 상승한 반면 민간 철도 회사들에 지급된 정부 보조금은 오히려 늘어났다”며 “‘민영화를 통해 보조금 없는 철도를 만들겠다’던 영국 정부가 사실상 기업들의 배만 불려왔다”고 비판했다.

공공서비스 부문의 민영화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3년에도 의료, 철도 등 공공서비스 부문의 민영화를 추진해 사회적 갈등을 초래했었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서명운동’을 벌인 글로벌 시민단체 ‘아바즈’는 공공서비스의 공공성을 법적ㆍ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사회기반시설 공공서비스 기본법(안)’의 제정을 촉구하면서 민영화에 반대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민영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민영화가 서민들의 삶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철도, 전기, 가스, 물, 의료서비스 등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다. 시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돼야 할 것들을 효율성과 돈으로만 따진다면 공동체 의식은 사라지고 불평등과 갈등은 심화될 것이다. 특별한 사정에 의해 관리 권한을 민간에 이양해야만 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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