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브렉시트 후폭풍이 지구 반대편 일본으로 몰아치고 있다. 영국의 EU 탈퇴가 확정되자 엔화 가치는 3.9% 급등하고 일본 증시는 7% 이상 하락하는 등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 온라인상에는 “4년 동안 내려놓은 엔화 값을 4시간 만에 올려놨다”는 자조 섞인 탄식도 올라와 있다.

2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브렉시트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 아베는 회의에서 “실물 경제, 특히 중소기업의 활동이 영향 받지 않도록 시장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금융 시장 안정을 위해 10조엔(약 115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검토 중이다.

일본 정부가 돈을 풀려는 가장 큰 이유는 엔화 가치 상승, 엔고를 막기 위해서다. 아베 정권의 지상 목표는 만성적인 디플레이션 탈출이다. 엔화를 약화시켜 기업 수익을 올리고 고용률 증가, 소비 증가로 연결해 일본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 아베노믹스 핵심이다.

2012년 민주당 정권 당시 엔화는 1달러 당 80엔 안팎이었다. 2012년 말 정권을 잡은 아베 총리는 대규모 양적 완화를 통해 2013년 말 1달러 당 100엔대로 엔화 가치를 하락시켜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였다. 2014년 10월 엔화 가치는 달러 당 120엔대까지 하락하며 제조업 부흥을 이끌었다.

엔화는 2015년 말부터 강세로 돌아섰다. 영국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실시된 당일날 1달러 당 99엔까지 올랐다. 아베 총리로서는 4년에 걸친 노력이 ‘도루묵’이 된 셈이다.

브렉시트 여파로 엔화는 초강세다. 이유는 엔화가 안전자산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국가부채가 GDP 대비 250%에 육박하는 등 선진국 가운데서는 재정건전성이 낮은 편이다. 그런데도 엔화가 강세인 이유는, 일본이 주요 채권국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국채 대부분을 국민들이 갖고 있고, 미국 국채나 부동산 등 다른 나라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외환보유액도 지난 4월 기준 1조 2625억 달러로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다. 이런 이유로 투자자들은 엔화를 안전자산으로 꼽는다.

엔고로 인해 일본 기업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엔화가 점차 강세를 보인 2015년 연말 이후 일본 기업의 수익성은 감소하고 있다. 2016년 일본 재무성의 1분기 법인기업통계조사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매출액은 전년대비 3.5%, 영업이익은 1.8% 감소했다. 특히, 제조업의 영업이익은 15.6%나 떨어졌다. 제조업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은 3.8%로 지난 분기 대비 1%p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엔고가 계속될수록 기업은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실적이 악화될수록 주가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자산규모 1조3000억 달러(약 1524조원)인 일본공적연금(GPIF)에 대한 불안감도 증가하고 있다. GPIF는 2013년부터 채권 비중을 낮추고 주식투자 비중을 높였다. 2014년에는 70%에 달하던 채권투자비중을 40%로, 주식투자 비중을 25%에서 45%로 늘렸다.

그런데 돌연 악재가 발생했다. 지난해 중반 이후 일본 증시는 물론 해외 증시 상승세가 한풀 꺾인 것. 전문가들은 GPIF가 2015회계연도에 5조엔(약 54조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한다. 해외 자산을 처분해 일본으로 송금할 때 엔화 강세로 인해 자산 가치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4월, GPIF의 다카하시 노리히로(高橋則廣) 이사장은 “달러와 유로로 표시된 투자 자산을 헤지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밝혔지만 브렉시트라는 악재를 만나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로 인해 일본국민들 사이에선 노후자금이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엔고로 인한 일본의 피해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거라는 시각도 있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류상윤 연구원은 “일본 기업은 그동안 엔저에 따른 수익 확대로 보유 현금이 많다. 상장기업의 여유자금은 100조 엔이 넘어 유망 신사업이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를 계속할 여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원은 이어 “수출을 늘리기 위한 투자를 크게 확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엔고에 따른 설비가동률 급락 충격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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