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바이닐앤플라스틱’ 매장 앞에 30여명의 LP레코드판 상인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시위 장소는 현대카드가 최근 문을 연 LP레코드판 매장인 ‘바이닐앤플라스틱’이다.

카드사가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벌어진 것은 현대카드가 처음이다. 어떻게 될 사연일까.
현대카드는 지난달 10일 문화콘텐츠 사업의 일환으로 ‘바이닐앤플라스틱’을 열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LP’판을 통한 아날로그적 문화를 체험하자는 뜻에서 설립한 것. 문제는 규모였다. 현대카드는 처음부터 기세좋게 대형음반 매장을 열었다. LP(레코드판) 약 4000종과 음악 CD 8000여 종을 갖추고 고객을 맞았다. 매장에는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음악을 재생해 듣는 코너도 있고 무료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갖췄다. LP의 경우 음질이 중요해 고객들이 직접 들어보고 구매할 수 있게 시스템을 운영했다.

현대카드가 의욕적으로 시작한 이 사업은 한 달이 채 안 돼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휩싸였다.  LP레코드판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영세사업자들이 “'문화’콘텐츠를 앞세운 중소상인 죽이기”라며 성토하고 나선 것.

이날 집회에 참석한 상인 김모씨는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복고 열풍이 불어 LP레코드가 잘 팔리는 편이다. 장사가 좀 된가고 소문이 나니까  대기업이 문화사업 명목으로 대형 매장을 열어 고객을 싹쓸이하고 있다. 대기업하고 구멍가게가 어떻게 경쟁이 되겠나. 영세상인들은 다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강력 비난했다.

이날 집회를 주도한 김지윤 전국음반소매상연합회 회장은 “LP 문화는 소수의 마니아 상인들이 명맥을 이어온 일종의 ‘서브 컬처(하위문화)’인데 대기업이 진출하는 것은 명분도 없고, 문화의 다양성도 해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LP매장은 수익을 위한 공간이 아닌 새로운 문화 알고리즘 창출을 위한 공간이다. 골목상권 침해는 전혀 아니다”고 말했다.

논란이 가열되자 현대카드는 지난 1일부터 중고 LP 판매를 중단하고 상생방안을 발표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중고 LP 판매 중단 △현대 M카드 할인율 20%에서 10%로 축소 △전국판 음반 판매점 소개 지도 제작 및 배포 △인디/유명 뮤지션 바이닐 제작 지원 등이다.

현대카드는 LP레코드 판매를 중단하겠다는 방침은 밝혔지만 음반소매업은 유지한다. 이에 대해 전국음반소매상연합회는 1일 오전 성명을 발표해 "프로운동 선수가 유치원생과 경기를 억지로 밀어붙이다가, 유치원생이 불공정하다고 비명을 지른다. 그러자 프로운동선수가 아주 자상한 ‘상생적’ 표정을 지으며 ‘한 손은 접어줄게’ 한다. 이 둘이 ‘상생’할 수 있는가. 재벌기업이 음반소매점을 운영하지 말고 즉각 폐점하라"고 주장했다.

연합회는 상생이 원천 불가한 이유도 설명했다. 연합회 관계자는 “카드회원의 신상정보를 바탕으로 매매 행위에 나서면 그 어떤 음반소매점도 버티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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