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중대표소송제를 포함한 상법 개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전가의 보도’를 꺼냈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상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것. 김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에 더민주 의원 107명,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 국민의당 의원 10명, 정의당 의원 2명 등 총 120명의 의원이 서명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다중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 의무화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감사위원 선임절차 분리 ▲전자투표제 단계적 의무화다. <월요신문>은 개정안이 담고 있는 내용을 항목별로 심층 보도한다. 첫 번째 순서는 다중대표소송제다.

김종인 대표는 “현행법상 자회사에 대한 감독과 견제 및 소수 주주의 보호관련 규정이 미흡하고, 모회사의 주주가 직접 권리를 구제받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이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모회사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1 이상을 보유한 주주가 손해를 입힌 자회사의 경영진을 대상으로 소송을 청구할 수 있다. 회사가 제소 청구를 받고도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경우 그 이유를 주주에게 통지해야 한다. 주주가 대표소송 제기 후 합병 등으로 주주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도 대표소송의 효력은 인정된다.

다중대표소송제의 필요성은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배주주 일가가 경영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인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해 부를 증식하거나 지배권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이다. 1999년 삼성SDS의 시장가격은 5만3000원~6만원이었다. 하지만 삼성SDS는 1주당 7150원의 가격으로 BW 321만여 주를 발행했다. 15년 후, 2014년 삼성SDS가 상장되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은 투자액의 280배에 달하는 차익을 거두게 됐다. 당시 경제개혁연대는 삼성SDS BW 발행 사건은 삼성에버랜드 CB 발행 사건과 함께 삼성그룹의 불법적 경영권 승계의 핵심이라고 비판했다.

롯데그룹도 계열사 간의 자산거래를 통해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권을 강화시켰다. 총수 일가의 지분율은 2.4%에 불과하다. 이외에 86개 한국 계열사 중 롯데쇼핑, 롯데제과 등 8곳만 상장을 하는 등 외부의 견제와 감시를 거의 받지 않으며 지배구조를 완성시켰다.

현행법상 자회사인 비상장사가 모기업에 손해를 끼쳐도 모기업 주주는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대표소송 할 수 없다. 실제로 대법원은 2003년 모회사 주주는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다중대표소송을 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공약사항이기도 하다. 2013년 법무부는 공약이행 차원에서 다중대표소송제를 포함한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까지 했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10대 그룹 총수들과 만난 뒤 “독소조항이 없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뒤 공약은 흐지부지됐다.

국회에서도 다중대표소송을 법제화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으나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지난해 5월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의원이 다중대표소송 도입이 포함된 상법개정안을 재차 발의했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재계는 다중대표소송제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인수합병을 노리는 외국계 투기자본이 경영권에 개입할 빌미를 준다는 이유에서다. 투기자본이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한 뒤 증거조사나 장부열람을 통해 자회사의 기술이나 영업비밀 등을 빼내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1999년 SK텔레콤과 타이거펀드, 2003년 SK와 소버린, 2006년 삼성물산과 헤르메스, KT&G와 칼 아이칸 등이다. 최근에는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던 헤지펀드 엘리엇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저지하기 위해 가처분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일부 언론에선 ‘투기자본과 삼성의 대결’의 관점에서 보도했으나 주주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삼성물산이 외국계 투자자나 소액 주주 등에 합병 과정을 설명하지 않고 그들의 이익을 방치한 측면이 있었다. 삼성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합병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뿐 아니라 국내 기관 투자자도 오래전부터 불만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재계의 이런 주장에 반박하는 의견도 상당하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정재규 선임연구위원은 “주주대표소송의 손해배상금이 모회사에 귀속되고 원고에게는 소송에 따른 별도의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에 소를 남발할 유인은 실질적으로 없다”고 주장했다. 정 위원은 또 “국내에서 그동안 제기된 주주대표소송은 연평균 4건 내외에 불과하고, 외국투기자본이 국내기업을 상대로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반대논리는 현실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시민단체도 이번 개정안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경제개혁연구소는 “다중대표소송제와 같은 주주대표소송은 손해배상금이 원고가 아니라 회사에 귀속되는 공익소송이다. 주주대표소송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최후의 보루로서 그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주주 원고의 경제적 유인 결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적 보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구소는 또 “비상장회사에서 배임․횡령이나 계열사 부당지원, 회사기회의 유용 등이 끊이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현실에서, 다중대표소송은 비상장회사를 이용한 지배주주의 사익추구 행위를 견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는 입장이다.

외국은 어떻게 이 제도를 다루고 있을까. 미국은 1879년 판례에서 다중대표소송을 최초로 인정했다. 다만 소 남발을 방지하기 위해 다중대표소송의 타당성을 결정하는 제소청구요건 등 장치를 마련했다.

일본은 2014년 회사법 개정을 통해 모회사 지분율이 100%이고 자회사의 주식 장부가액이 모회사 총자산의 20%를 초과하는 규모인 자회사에 한해 다중대표소송을 도입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다중대표소송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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