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문화 서비스 부진으로 소비 증가세 '정체'

한국의 서비스소비 비중은 선진국 수준으로 높지만, 구성 면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교육비 및 통신비의 지출이 높고 여가 관련 지출은 매우 낮다. 오락문화 서비스의 다양성 부족으로 수요가 해외로 유출되거나 소비지출로 이어지지 못한다. 인구구조변화, 근로시간 감소 등으로 향후 서비스소비가 증가할 여지가 큰 상황에서 경제성장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오락문화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흡수하는 방안이 요구된다.
소비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다. 2000년대 우리나라 가계소비 증가율은 평균 3.6%로 경제성장률 4.6%보다 1%p 낮았다. 그 결과 소득 대비 소비 비중이 90년대 57%에서 2000년대에는 52%로 낮아졌다. 소비부진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소비 형태별로 살펴보면 서비스 소비의 활력 저하가 중요 요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서비스 소비는 80-90년대 연평균 8.5%의 증가율로 전체 소비보다 2%p 가량 빠르게 늘면서 전체 소비를 견인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 평균 서비스 소비 증가율은 3.9%로 전체 소비증가율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가계의 소득이 증가하면 우선 의식주와 관련된 생필품 소비비중이 줄어들고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등 내구소비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내구재의 보급률이 충분히 높아지면 이제껏 선택적 소비에 속하던 서비스에 대한 지출이 증가하게 된다. 이처럼 일정 시점에서 재화보다 서비스의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는 현상은 경제 성장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소비 비중, 미국·일본과 비슷
미국의 경우, 30년대 후반부터 소득 향상에 따라 내구재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전체 소비 확대를 주도했다. 서비스 소비는 60년대부터 꾸준히 증가하여 70년대 초반부터는 내구재 소비 증가율을 크게 상회하면서 본격적으로 전체 소비 성장을 견인했다. 80년대부터는 서비스 소비 증가 속도가 둔화됐고 90년대 후반부터는 재화와 서비스 소비가 유사한 속도로 증가하면서 서비스 항목이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9%대에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역시 70년대부터 서비스 소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해 90년대 말까지 전체 소비를 견인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서비스 소비의 비중이 56%대로 일정하게 유지되는 모양새다.

우리나라는 70년대부터 내구재 소비가 늘기 시작하여 70~80년대 평균 15%의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내구재 소비의 증가율이 한자리수로 둔화된 90년대부터는 서비스 소비 확대가 가속화되면서 전체 소비의 증가를 주도했다. 그 결과 서비스 소비의 비중이 80년대 평균 50%대에서 90년대 말에는 50% 후반까지 빠르게 늘어났고, 서비스 소비의 증가 속도가 둔화된 2000년대 초반 이후부터는 전체 소비에서 서비스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8%대에서 정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소비의 서비스화는 선진국에 비해 빠르게 이루어졌고, 그 결과 소득 수준 대비 서비스 소비의 비중도 매우 높은 편이다. 가계소비에서 서비스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만 본다면 이제 우리나라의 소비구조가 선진국 수준에 수렴한 것처럼 보이지만 항목별 구성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구성에서 선진국과 큰 차이
미국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달성한 70년대 초반부터 오락문화 관련 지출이 크게 늘면서 서비스 소비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자동차 보급률이 높아지고 복합 상업 시설을 갖춘 쇼핑몰이 전성기를 맞으면서 외식, 여행, 오락시설 이용 등이 일반화됐고, 이에 따라 레저, 음식숙박 등 여가관련 지출이 빠르게 증가했다. 90년대부터는 법률 및 금융서비스의 증가율이 상승하면서 소비를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 70년대부터 의료보건 및 주거서비스 소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80년대까지 서비스 소비를 주도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선 70년대 후반부터는 교양오락 분야의 지출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90년대 전반까지 연평균 8%의 속도로 증가하면서 전체 서비스 소비를 견인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각 항목별 증가율이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서비스 소비 증가를 주도한 부문은 교육비와 통신비였다. 그 배경에는 '높은 교육열'과 'IT강국'이라는 요인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1990년 33%에서 1995년 51%, 2009년에는 81%까지 급속도로 높아졌다. 불과 이십 년 사이에 대학 진학이 일반화되어 등록금과 사교육비 지출이 일종의 필수적인 지출 항목으로 자리잡았다. 이에 따라 교육서비스에 대한 지출액은 연평균 5%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그 결과 교육비 지출이 가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6.7%로 미국과 일본이 각각 2.4%, 2.1%인데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한편, 통신비는 IT강국이라는 국가 성장 전략 하에 인터넷 및 무선통신서비스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던 90년대 후반 연평균 30%의 폭발적인 속도로 증가했고, 그 결과 통신비 지출이 2010년 GDP 대비 5%로 미국, 일본의 두 배에 달하며, OECD 회원국 중 1위로 나타났다.

2000년대 들어 서비스 소비의 증가세가 눈에 띄게 떨어진 이유는 과거에 비필수재 혹은 사치품의 성격을 가졌던 교육 및 통신관련 서비스가 국민소득 증가로 보급률이 충분히 높아지면서, 이 부문에서의 신규수요 창출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교육서비스의 보급률이 충분히 높아진 2000년대에 들어서는 자연스럽게 증가 속도가 둔화되면서 전체 가계소비에서 교육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정체돼 가는 상태이다.

통신비 항목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관찰된다. 인터넷 보급률이 2000년대 초반 80%대를 초과하는 등 통신서비스가 보편화되자 통신비 지출의 증가율도 3%대로 현저히 낮아졌고 그 결과 가계소비에서 통신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정체되고 있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소비 수요
이처럼 교육 및 통신비 부문이 포화상태에 이른 가운데 새로운 부문에서 소비가 창출되어야 하는데, 특히 오락문화서비스 부문이 아직 여러 면에서 취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서비스 소비를 이끌어 가는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락문화 관련 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로 OECD 국가들의 평균인 5.5%에 비해 매우 낮다.

일반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을수록 여가관련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에 비해 여가관련 지출 비중이 상당히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삶의 질과 밀접하게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이 선진국에 비해 길다는 사실이 오락문화에 대한 소비 여력을 제약하는 한 요인이지만, 국내의 오락문화서비스 인프라가 부족해서 주어진 여가시간마저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여가 소비지출이 부진한 이유로 보인다.

문화산업의 최근 추이를 보면, 출판, 영상, 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 등 다소 비활동적 여가생활과 관련된 부문은 2000년대 후반 연간 5.9%의 성장세를 보인 반면, 예술 및 스포츠 관련 문화산업부문의 성장률은 절반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활동적인 여가생활을 뒷받침하는 공연예술 관람장소, 스포츠시설 등 다양한 채널의 부재는 문화생활이 다원화되지 못하고 편중되는 현상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여가활동 현황을 보더라도 TV시청, 휴식, 인터넷 이용 및 컴퓨터 게임과 같은 비활동적인 여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반면 문화공연예술 관람이나 스포츠활동 분야는 매우 낮다. 이렇게 실내에서 보내는 비활동적인 여가가 많은 탓에 오락문화 서비스에 대한 잠재 수요가 실제 소비지출로 나타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오락문화 서비스 산업의 발전에도 걸림돌이 되는 악순환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

국내 오락문화의 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탓에 소비자들이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찾아서 해외로 나가고 있다. 국내 거주자의 해외지출은 2000년대 평균 15%로 증가했고, 2010년에는 20조를 넘어서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가계의 해외소비 비중은 점점 높아져 2000년대 평균 2.5%로 90년대에 비해 약 두 배에 달한다. 해외로 나가는 내국인출국자수도 외환위기를 계기로 급격히 감소했다가 2000년대 들어서는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2010년 1,200만 명을 웃돌고 있다.

오락문화 지출 여력 더 커질 듯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소비자가 더 좋은 서비스를 찾아서 그만큼 더 높은 효용을 누린다면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늘어나는 해외소비로 인해 관광수지는 2000년대 연평균 45억 달러 가량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해외소비의 경우 고용창출 등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미미하고, 환율에 따라 소비 지출의 불안정성이 매우 높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오락문화 보급률이 선진국보다 낮은 수준으로 아직 포화상태에 이르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서비스 소비의 수요창출 여지는 크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지속되는 해외소비의 증가세는 오락문화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지금도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서비스산업의 발전을 통해 이러한 잠재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면 단기적으로도 서비스 소비의 증가 여지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우선 여가시간의 증가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면, 소득 수준 향상에 따라 근로시간이 빠르게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현재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은 OECD평균인 연간 1,900시간보다 훨씬 높은 2,300시간이지만, 우리나라도 주5일제의 시행을 계기로 근로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일본의 경우 80년대에는 현재 우리나라와 비슷한 2,200시간에서 현재는 1,800시간 미만으로 감소했다.

인구구조 측면에서 보더라도 오락문화의 서비스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중반부터 이미 전체가구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저출산 추세 속에서 교육비 비중은 앞으로 점차 낮아질 것이다. 지금까지는 교육비가 고정지출이 되면서 소비 여력을 크게 제약하는 요인이었지만, 앞으로는 교육비 부담이 다소 줄어들면서 선택적인 서비스 지출 여력이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고령화로 인해 의료보건비가 증가하는 동시에 고령층의 여가활용 가능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면서 이들 계층의 여가관련 소비도 함께 증가할 것으로 추측된다.

삶의 질 향상 위한 서비스업
일본에서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던 2007년부터 구매력을 갖춘 60세 이상 인구가 주요 소비계층으로 주목 받고 있다. 거액의 퇴직금과 연금으로 무장한 이들은 여행, 취미활동 등 문화생활, 편의를 위한 주택개량, 건강 실버 산업의 소비자로 대두하고 있다. 실제로 2010년 가계 소비가 전 연령대에서 크게 위축된 가운데, 60대 이상의 소비만 유일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사회조사 설문 결과에 따르면 현재는 정적인 여가활동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향후에는 여행, 관람 등 활동적 여가생활을 희망하는 응답자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과거 미국 및 일본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달성하던 시기를 기점으로 가계소비에서 여가관련 지출이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오락문화 서비스의 본격적인 증가를 곧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여가수요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여가관련 인프라를 부족한 채로 방치해둔다면, 여가생활을 마음껏 즐기지 못해 효용이 줄어들 수 있다. 또한 현재까지처럼 오락문화 서비스 수요의 많은 부분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면 국내경제의 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까지는 오락문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오락문화 서비스의 공급이 다원화된다면 새로운 서비스 소비를 통해 늘어날 효용은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경제의 관점에서도 국내의 여가산업 활성화를 통해 기존에 해외로 유출되던 부가가치 및 고용창출 효과가 국내화되면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낮아지고 내수가 확대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아울러 앞서 언급한 활동형 여가의 증대는 건설업, 관광업 등 관련 산업의 장비 및 기반시설 투자를 확대시켜 경제적 파급효과가 특히 높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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