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전가의 보도’를 꺼냈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상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것. 김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에 더민주 의원 107명,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 국민의당 의원 10명, 정의당 의원 2명 등 총 120명의 의원이 서명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다중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 의무화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감사위원 선임절차 분리 ▲전자투표제 단계적 의무화다. <월요신문>은 개정안이 담고 있는 내용을 항목별로 심층 보도한다. 두 번째 순서는 집중투표제 의무화다.

집중투표제는 1998년 상법에 처음 도입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IMF로부터 긴급금융자금을 수혈 받고 경제구조를 개편했다. 그 중 하나가 집중투표제 도입이었다. 집중투표제를 통해 경영감시를 강화하고 독단적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정관에 규정이 없으면 실시하고, 정관에 규정을 두면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있어 실효성이 없었다. 오늘날 국내 상장기업 대부분은 정관에 규정을 두고 집중투표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공약했다. 당선 후 2013년 7월 법무부는 단계적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재계의 반대로 집중투표제 의무화 법안은 힘을 잃은 상황이다.

주주총회에서 이사선임 방식은 ‘단순투표제’와 ‘집중투표제’가 있다. 단순투표제는 주식 1주당 1개의 의결권을 갖는 반면, 집중투표제는 주식 1주에 대해 선임하고자 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갖는다. 3명의 이사를 선출한다면 1주를 가진 주주의 의결권은 3개가 되는 것.

예를 들어 한 기업 주식 총 100주 중 70주를 대주주가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30주를 소액주주가 나눠 갖고 있다. 3명의 이사를 선임하는 주주총회에서 대주주 추천 후보 3명과 소액주주 추천 후보가 1명이 나왔다.

집중투표제를 이용하면 대주주는 자신의 의결권 70주의 3배인 210의 의결권을 갖게 되고 소액주주는 90의 의결권을 갖게 된다. 대주주는 자신이 추천한 3명을 선임하기 위해 210의 의결권을 70씩 고르게 분산 투표할 수밖에 없다. 반면 소액주주는 90의 의결권을 모두 소액주주 추천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다. 소액주주 추천 후보는 선임될 3명 중 하나가 될 확률이 높아지고 소액주주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주장하는 측은 단순투표제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다. 단순투표제는 주당 1개의 의결권만 갖고 있기 때문 주식을 많이 보유한 대주주의 의사에 따라 이사가 선임될 확률이 높아진다. 이렇게 선임된 이사는 자연스레 대주주의 영향권 아래 활동할 가능성이 크며 소액주주의 피해를 초래할 의사결정을 할 경우가 생길 소지가 높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공정위에 따르면 대기업 이사회에서 안건 승인률은 99.7%에 달했다.

집중투표제 반대 측은 ‘SK 소버린 사태’를 예로 든다. 2003년 사모펀드 소버린은 SK네트웍스의 분식 회계와 SK 증권과 관련한 부당 내부 거래 등으로 위기를 맞은 SK그룹의 주식을 14.99%를 사들이며 2대 주주가 된다. 이후 소버린은 5개 자회사에 14.99%을 나누었다. 구 증권거래법상 이사 선임 시 최대 주주와 그 특수관계인 지분 합계가 3%로 제한되고 일반주주는 각각 지분율 3%를 적용받자 보유 주식 의결권을 전부 행사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소버린의 의도대로 SK그룹 계열사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은 3%로 제한됐고, 소버린은 의결권 제한을 피해 보유 주식의 의결권을 모두 행사했다. 이후 소버린은 경영투명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SK에 경영진 교체와 집중투표제 도입을 요구했다. 결국 SK는 1조 원 가량의 비용을 투입한 뒤에야 경영권 방어에 성공할 수 있다. 반면 소버린은 2005년 이후 보유 주식 전부를 매각해 9,459억 원의 차익을 얻었다.

이처럼 반대 측은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될 경우 외국자본에 의해 경영권이 위협당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 소액주주의 경영참여가 기업가치 증진에 기여했다는 이론적 근거나 실증적 증거가 없으며 기회주의적인 소액주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사회 운영의 효율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다수결원칙의 배제는 기업경영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집중투표제 찬성 측은 다수결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따르는 것이 기업 전체 이익에 반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으며, 소액주주 추천 이사가 기업 전체 이익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김종인 대표가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 시 집중투표제를 반드시 실시하도록 하는 강제적 집중투표제를 말한다. 강제적, 의무적으로 시행하려는 이유는 그간 집중투표제를 무력화시키는 제도들이 있었기 때문. 바로 시차임기제다. 이사들의 임기를 분산시켜 이사 전체가 교체되는 시점을 지연시키는 일종의 경영권 방어 장치다. 이 경우 한 번에 선임할 이사의 수가 줄어들어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의 수는 줄어들고 소액주주가 원하는 이사를 선임할 확률이 낮아져 집중투표제의 효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 같은 꼼수를 차단하기 위해서 김종인 대표는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학계와 시민단체는 집중투표제의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사외이사들의 독립성을 위해 그리고 주주들의 영향력 행사를 위해 필요하다. 황제경영을 견제하고 주주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장치다”고 의견을 밝혔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우리나라 기업들은 경영진이 이사 선임까지 독점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겨우 4~5%의 지분으로 전 계열사의 이사를 뽑는 상황이다. 이는 사외이사를 거수기로 만든다. 이 때문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해 소액주주를 대변하는 사외이사 선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정부와 정치권의 의지에 달려있다. 하지만 정부는 사실상 이 제도를 폐기했다. 박근혜정부의 정책 기조가 경제활성화인데 재계에서 극구 반대하는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4.13총선 결과 야소야대가 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무엇보다 20대 국회 들어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도입하려는 의원들이 많아졌다. 대표적인 예가 ‘대기업 저격수’로 통하는 채이배 의원이다. 채 의원은 “정부가 경제민주화 정책의 일환으로 입법 예고한 것인데 이후 기업 편의를 봐주다 보니 중단된 상태다.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위한 개정안 통과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주장한다.

이밖에 더불어민주당 경제민주화 TF팀장 최운열 의원과 박용진 의원, 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이 개정 의지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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