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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초등학교 교사인 김씨는 과자 크림 속에 졸피뎀 1알을 넣은 뒤 농구연습을 하는 A(11)양에게 건네 먹게 했다. 잠시 후 A양은 구토와 두통 증상을 호소했다. 김씨는 기다렸다는 듯 A양을 남자 탈의실로 데려갔고, 졸피뎀 약효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 A양을 강제 추행했다.

까페를 운영하는 손씨는 여종업원 A(21) 등 15명에게 졸피뎀 성분이 든 수면제를 탄 음료를 마시게 했다. 손씨는 이들이 정신을 잃으면 성폭행을 했고, 여성의 신체 일부를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하기도 했다.

의사 선후배인 김씨와 임씨는 후배 여자친구 A씨를 집으로 초대한 뒤 A씨가 화장실에 간 사이 술에 졸피뎀을 넣었다. 김씨 등은 A양이 화장실에서 돌아오자 건배를 제의했다. 잠시 후 A양이 혼절하자 이들은 늑대로 변신, 번갈아가며 성폭행했다.

이들의 공통적인 범행 수단은 수면유도제인 졸피뎀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따르면 2006∼2012년 사이 진정제 성분 약물 관련 성범죄 148건을 분석한 결과, 졸피뎀을 사용한 경우가 31건으로 가장 많았다.

여성들이 졸피뎀의 희생양이 되는 이유는 졸피뎀 성분이 남성보다 더 느리게 분해, 제거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2013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여성의 경우 회복시간이 더 걸린다며 사용량을 절반(5㎎)으로 낮추라고 권장한 바 있다. 실제로 FDA 실험연구에 따르면 6.25mg 졸피뎀 투여 후 8시간 후 졸피뎀 혈중 농도가 50ng/mL를 초과한 여성은 남성보다 3배 정도 많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언 이상기 과장은 “피해자를 ‘항거불능’ 상태에 빠뜨려 성폭행할 목적으로 이 의약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범죄자들이 졸피뎀을 범행에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 한 사람당 한 달에 최대 28정까지 처방이 가능한 졸피뎀은 비급여로 환자가 금액을 전액 부담한다고 하면 추가로 처방해주는 병원도 있다. 또한 이전에 처방받은 사실을 숨기고 추가로 다량의 약을 수령하는 중독자가 적지 않다는 것이 의료계 분석이다. 이러한 약물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의약품 처방·조제 시 의사 및 약사에게 의약품 안전 정보를 제공하는 ‘DUR(Drug Utilization Review,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을 현재 시행하고 있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따라서 DUR을 사용하지 않는 의료기관은 환자의 이전 처방 이력을 확인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

신분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는 병원만 노려 졸피뎀 쇼핑을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렇게 모은 졸피뎀을 온라인으로 거래하는 일당들이 요즘 심심치 않게 검거되고 있다. 아르바이트생 등을 고용해 허위 진료를 받게 한 뒤 졸피뎀을 대량으로 처방받은 뒤, 이를 불법 판매한 심부름 대행업체,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빼돌린 졸피뎀을 내다판 간호사 등 각양각색이다.

문제는 졸피뎀 중독이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졸피뎀 복용 후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에서 운전하는 것을 비롯해 환각 작용에 의한 살인 등 중대범죄가 속속 보고되고 있기 때문. 아직까지 의료계는 졸피뎀이 직접적으로 범죄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대한의사협회장을 지낸 노환규 하니웰의원 원장의 의견은 다르다. 노 원장은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사례가 적지 않다. 외국에는 졸피뎀과 자살 충동 간 연관성을 다룬 자료가 많다”고 주장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그는 “향정신성의약품, 특히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약품에 대해선 처방 때 본인 확인을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통계에 따르면 불면증을 포함한 수면장애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2009년 약 26만 명에서 2013년 약 38만 명으로 45% 정도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2013년 기준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1.5배 더 높게 발병했다. 이처럼 수면장애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만큼 단순히 약 처방이 아닌 정부차원의 체계적인 수면장애 관리 정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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