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자연 성우 트위터 캡쳐>

[월요신문 김혜선 기자] 커뮤니티 사이트 ‘메갈리아’에서 제작한 티셔츠를 입고 SNS에 사진을 올린 여성 성우가 자신이 녹음한 게임에서 잇따라 교체돼 논란이 일고 있다.

 

넥슨 게임 ‘클로저스’에서 신규 캐릭터 티나의 목소리를 녹음한 김자연 성우는 18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Girls do not need a prince(여성들은 왕자가 필요없다)'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게재했다. 이에 일부 누리꾼들이 해당 성우를 문제 삼으며 넥슨 측에 항의를 제기해 성우에서 하차하게 된 것.

 

게임사 넥슨은 19일 공지사항을 통해 “21일 업데이트 예정인 신규 캐릭터 ‘티나’의 성우가 오늘부로 교체된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클로저 여러분의 우려 섞인 의견들을 확인하였고 업데이트를 며칠 앞둔 상황에서 급히 성우 교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타 게임회사 A.Storm의 ‘최강의 군단’ 역시 공지사항을 통해 “현재 외부 논란에 대해 선수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의견을 모두 확인했다. 해당 성우가 참여한 이자나미의 음성 교체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티셔츠는 커뮤니티 사이트 ‘메갈리아’에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통해 제작한 것이다. 메갈리아는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다. 메갈리아는 지난해 페이스북 측으로부터 페이지가 두 차례 삭제되어 운영진이 페이스북 본사 소송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해당 티셔츠를 개당 2만원에 판매했다.

 

성우 김자연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제가 무엇을 해명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거니와, 앞서 적었듯 이게 잘못된 선택이라면 제 행동에 책임을 질 의사가 당연히 있다. 저는 저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 실수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메갈리아의 성향에 대해 일부 누리꾼이 “과격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김씨는 “걱정해주셔서 감사하다. 텀블벅 페이지(크라우드 펀딩)에 적혀 있는 취지가 좋다고 생각해서 후원했는데 이런 반응이 돌아올 줄 몰랐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도 페미니즘과 미소지니에 관련된 트윗을 종종 올릴 것이고, 이게 불편하시다면 저를 차단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글을 게시했다.

 

논란이 뜨거워지자 김씨는 20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한 장의 사진이 이런 일로 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명백히 제 잘못이고 게임 제작사와 퍼블리셔에 큰 상처를 드렸다. 회사측에서 많이 배려해주셨고 정당한 대가를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오해와 비난이 없었으면 한다”며 사과했다.

 

이어 김씨는 “페미니즘에 대해 자각한 것은 3~4년 밖에 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여자애가 왜 그러냐’라는 말씀을 하신 적도 없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여자이기 때문에 영정사진을 들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머릿속에서 ‘왜?’가 떠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성평등의 한 갈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누리꾼들은 넥슨의 결정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트위터 이용자 ‘@woochick’은 “<한 장의 페미니즘으로 세상과 맞서다> 이건 구호가 아니라 진짜였다. 왕자가 필요없다는 말 한마디 붙은 티셔츠를 입는 것만으로 세상과 전쟁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라고 비판했다. 다른 트위터 이용자들 역시 ‘#김자연_성우를_지지합니다’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게임사 넥슨을 보이콧하는 운동까지 번지고 있다.

 

이에 대해 넥슨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해당 이슈에 대한 ‘부당 계약해지’라는 표현은 상당히 격앙된 표현이다. 게시판이나 댓글에 이용자들의 논란이 심화되며 사측은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성우분에게는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녹음된 음성 사용을 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 계약된 녹음 비용은 전부 지불한 상태다”라고 해명했다.

 

게임에서 하차한 김씨가 향후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는 “해당 게임은 스테이지별로 녹음이 진행됐고 계약금도 지불했기 때문에 앞으로의 계약에 불이익은 없다. 김씨도 동의한 하차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른 게임사 A.Storm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편 사단법인 ‘게임개발자연대’에서는 19일 “김씨의 표현은 개인의 의사 표현이다”라며 넥슨의 결정을 비판했다. 다음은 게임개발자연대 사무국장과의 일문일답.

 

-넥슨의 이번 결정으로 누리꾼들의 반응이 뜨겁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는가

김씨의 행동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히 개인의 신념으로 볼 수 있는 일이었다.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성우를 하차시킨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다.

 

-성우 하차가 ‘부당 계약해지’ 혹은 ‘부당해고’라는 의견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 성우 하차는 계약상의 문제이지 노동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다. 게임사는 이번 일이 단순한 계약문제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업계관행 상, 대기업 클라이언트가 제시하는 계약조건을 거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에는 성우와 게임사간의 계약 같은 특수계약에 대한 법이 사실상 없다.

 

-넥슨측은 해당 성우에 대한 불이익이 없을 것이라고 하는데.

넥슨의 이번 걸정은 해당 게임 캐릭터에 성우를 더 이상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미 계약상 녹음 분량 비용을 지불했다고 하더라도 게임 추가 이벤트 등 해당 캐릭터에 발생하는 업데이트 작업에서 배제된다. 이는 성우의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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