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DefenseOne 캡쳐>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를 하루 앞두고 터진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이메일 폭로 사건의 배후가 러시아 정부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미국 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일각에선 클린턴 대선캠프에서 ‘급한 불 끄기' 차원에서 러시아 해킹설을 일부러 언론에 흘린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는 가운데 25일(현지시간) 연방수사국(FBI)이 전격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22일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홈페이지를 통해 DNC 지도부 인사 7명의 이메일 19,252건을 공개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이메일에는 DNC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대선후보로 선출하기 위해 경선라이벌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선거운동을 방해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에 경선 편파관리 논란에 휩싸인 데비 와서먼 슐츠 민주당 DNC 의장이 사퇴한 한편, 샌더스 의원 지지자들이 클린턴 전 장관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반발하는 등 이메일 폭로 여파가 거세다.

특히 DNC 이메일 폭로가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은 해커그룹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혼란은 극으로 치닫고 있다. 24일 미국 외교안보 전문 매체 ‘디펜스원’은 “DNC와 계약을 맺고 있는 보안 업체들이 이번 DNC 이메일 해킹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해킹이 러시아에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며 “해커 그룹들은 모스크바와 상트 페체르부르크가 포함된 시간대(UTC +3)에 활동한 것으로 나타났고, 해커 그룹이 공개한 문서에 러시아어 문자인 키릴 문자로 표기된 이름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자료출처=DefenseOne 'How Putin Weaponized Wikileaks to Influence the Election of an American President'>

이와 관련 보안업체 ‘스트레터직 사이버 벤처스’의 CEO 톰 켈러맨은 디펜스원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은 공작 활동의 모든 특징을 갖추고 있다. 방대한 이메일 자료를 러시아 서버를 통해 공개한 유일한 이유는 특정 대선 후보를 다른 후보보다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동안 트럼프 후보가 러시아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해왔기 때문에 러시아 측이 트럼프의 지원사격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 해킹설은 사실일까?

이메일 폭로 사건은 점차 클린턴과 트럼프 캠프의 충돌 양상으로 바뀌는 추세다. 클린턴 캠프 측에서는 “러시아 정부 해커들이 DNC 서버에 침투해 이메일을 빼낸 뒤 위키리크스에 제공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친 러시아 성향의 트럼프 후보를 돕기 위해 이같은 논란을 의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 캠프 측에서는 “러시아 해킹설은 바보 같은 주장”이라며 반발했다. 트럼프 자신도 “푸틴이 나를 좋아해서 민주당을 해킹했다는 희한한 농담이 돌고 있다”면서 “클린턴 전 장관이 민주당 이메일 스캔들에 깊숙이 관여한 장본인”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러시아 해킹설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한 국제관계 전문가는 “클린턴과 푸틴은 그간 각종 민감한 현안과 관련해 공공연하게 서로를 비난하거나 적대감을 드러냈다. 반면 트럼프와 푸틴은 상호간에 우호적 감정을 넘어 강한 호감을 표시하고 있다”며 “트럼프 후보 측이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러시아 정부가 미국 대선에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클린턴은 푸틴 대통령의 대외 정책을 공개적으로 강하게 비난해왔다. 지난 2012년 6월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은 “러시아가 시리아 정부에 공격용 헬기 등 무기를 공급해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강화했다”며 “이는 미국 내에서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고 경고했다. 2014년 3월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파병 사태를 비판하면서 “히틀러가 지난 1930년대 유럽에 했던 짓을 보는 것 같다”며 푸틴을 히틀러에 비유하는가 하면, 2014년 6월엔 회고록 ‘힘든 선택들(Hard Choices)’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비판에 분개하고 반대 의견과 토론을 탄압한다”며 “속 좁고 독재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트럼프와 푸틴은 서로에 대해 극찬하는 모습을 보였다.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는 아주 활달하고 재능 있는 사람으로 미국 대선을 이끌어갈 절대적 선두주자다”라고 치켜세웠다. 이에 트럼프가 즉각 성명을 내고 “푸틴의 강력한 리더십은 매력적이고 효율적이다. 국내외에서 존경받는 분에게 그런 칭찬을 받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라며 화답했다. 국제사회에 미국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도 유사하다. 트럼프는 특히 시리아 사태에 대한 러시아의 적극적 개입을 지지했다. 지난해 9월 대선 TV토론에서 트럼프는 “만일 푸틴이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IS)를 쓰러뜨리겠다고 한다면 나는 절대적으로 찬성”이라며 “그건 우리가 걱정해야할 문제가 아니라 자산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현재 미국의 대러시아 정책과 관련해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유일한 미국의 대선 후보가 트럼프다. 실제로 트럼프를 제외한 공화당 대선 후보 대다수는 푸틴을 ‘깡패(gangster)’나 ‘폭력배(thug)’로 묘사하면서 비난하기에 바쁘다”라며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역할을 확대해보려는 푸틴으로서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클린턴 후보보다 트럼프 후보의 승리가 러시아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FBI는 25일 성명을 통해 “DNC 이메일 유출 사건과 관련해 사건의 성격과 범위를 파악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아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책임을 추궁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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