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에 대해 국민 10명 중 7명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공수처 신설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공수처 신설에 찬성한다(매우 찬성 38.8%, 찬성하는 편 30.3%)’는 의견이 69.1%로, ‘공수처 신설에 반대한다(매우 반대 6.6%, 반대하는 편 9.8%)’는 의견(16.4%)보다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된 것.

공수처 설치 찬성 의견이 압도적으로 앞서는 이유에는 공직사회 부패가 만연하기 때문. 2015년 권익위원회 부패인식도 조사에서 국민의 57.8%가 “공직사회는 부패하다”라고 답할 정도다.

해외의 시각도 다르지 않다. 2015년 국제투명성기구(CPI)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56점을 얻어 OECD 34개국 중에서 공동 27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CPI는 50점대 국가들을 ‘절대부패로부터 벗어난 정도’로 평가했다.

가장 청렴한 국가는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뉴질랜드, 네덜란드 순이었다. 이 국가들은 국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수처와 같은 독립수사기관이 존재하는 나라도 있고 법으로 공직 부패를 감시하는 곳도 있다. 청렴국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부패를 방지하고 투명한 공직 사회를 만들고 있는지 살펴봤다. 두 번째 순서로 <아시아·태평양편>을 소개한다.

싱가포르

1940~50년대 부패가 만연했던 싱가포르가 부패청정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계기는 리콴 유 총리의 공이 크다. 당시 리콴 유 총리는 “부패방지는 선택이 아니라 국가생존의 문제다. 반부패 정책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굴복시켜야 한다”며 1960년 부패방지법을 개정했다. 리콴 유 총리가 이 법을 개정한 이유는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싱가포르를 신뢰받고 자유롭게 무역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였던 것.

부패방지법으로 설립된 부패사정기관 탐오조사국(CPIB)은 싱가포르 역사상 가장 강력하게 부정부패를 적발·처벌했다. 이 기관은 공무원이 뇌물을 받지 않았더라도 의도가 있었거나 비슷한 처신을 했을 경우 범죄로 보고 적발한다. 뇌물수수자에 대해서는 형벌과 별도로 뇌물 전액을 반환하고 반환능력이 없을 경우 액수에 따른 징역을 추가로 부과한다. 5년 징역에 부과되는 벌금은 1만 싱가포르달러(87억 원)에 달한다.

싱가포르 탐오조사국(CPIB) 건물 전경. <사진출처= 싱가포르 CPIB 홈페이지>

싱가포르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에도 힘쓴다. 공익신고자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신고가 가능하고 재판의 증인으로 나서지 않도록 하고 있다.

탐오조사국이 부패를 척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리콴유 총리가 독립성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1987년 리관유 총리의 친구 치엥완 국가개발부 장관이 뇌물수수혐의로 탐오조사국에 적발됐을 때, 총리는 수사에 개입하지 않았다. 치엥완이 자살하자 미망인은 총리에게 부검을 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총리는 자연사 이외에는 부검을 하는 것이 법적 의무라며 부탁을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

뉴질랜드

뉴질랜드는 ‘국가청렴도’ 부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나라다.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한 조사에서도 1위를 기록한 덴마크와 3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뉴질랜드가 청렴한 국가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대비리조사청(SFO, Serious Fraud Office)의 활약이 크다.

1988년에 설립된 이 기관은 정부와 의회로부터 독립돼 불법 정치자금이나 부패, 사기사건 등을 전담하는 반부패기관이다. 중대한 사안을 다루는 기관답게 권한도 막강하다. 조사청은 법원의 영장 없이 비리혐의자, 제3자, 비리 민간기관에 대한 조사 요청이 가능하다. 이 밖에 위법행위 혐의자 및 수사 관련성이 있는 대상에게 문서제출, 정보제공, 답변 요구권을 갖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수사방해, 기록 파기·은폐나 수색에 저항하면 범죄 행위로 간주해 기소한다.

뉴질랜드 중대비리조사청. <사진출처=www.livenews.co.nz>


뉴질랜드는 부패 무관용 정책으로 유명하다. 공직사회 및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위법에 대해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책임을 묻는다. 차기 유엔 사무총장에 출마한 헬렌 클라크 전 총리는 2004년 지방 시찰 중 과속을 한 적 있었다. 당시 이를 목격한 주민이 신고했고 클라크 총리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국회의원도 법의 심판을 피해가지 못한다. 2008년, 태국인 불법 체류자에게 불법비자를 발급해 주고 돈 대신 집수리 등을 시킨 국회의원 타이토 필립 필드는 뇌물 수수 혐의로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갔다. 놀라운 사실은 이 같은 혐의로 뉴질랜드 정계에서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한 사람은 필드 의원이 처음이라는 것.

홍콩

1970년대까지 홍콩의 부패 정도는 매우 심각했다. 이에 분노한 홍콩시민들의 시위로 여론이 악화되자 홍콩당국은 강력한 부패조사기관을 발족했다. 1974년 염정공서법, 뇌물방지법, 선거부정 및 불법행위방지법 등 이른바 부패방지 삼륜법의 뒷받침으로 염정공서(ICAC)가 탄생한 것.

염정공서(廉政公署)는 공공, 민간을 막론해 부정부패 민원접수, 심사, 조사 및 수사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 기관은 부패혐의자를 영장 없이 체포하여 48시간동안 구금할 수 있고, 계좌 추적권도 가지고 있다. 수사기간 중 용의자의 출국 금지는 물론 수사와 관련된 정보요구권을 가지고 있어 염정공서가 요청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공무원은 구속시킬 수 있다.

홍콩의 염정공서. <사진출처=www.hongkongfp.com>


또한 공무원이 자신의 재산형성 과정을 입증하지 못하면 증식된 재산은 뇌물로 간주하여 재산을 몰수하고 처벌한다. 재산증식 과정을 설명하지 못한 한 경찰공무원은 17억 원을 반납하고 2년형을 선고받았고 같은 이유로 7년형을 선고받은 검사는 형 집행 후 국외로 추방당했다.

홍콩은 내부고발자 혹은 부패행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이 요청하거나 그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을 경우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 준다.

미국

앨 고어 전 부통령은 “어떠한 부패도 공무원들의 부패만큼 파괴적인 것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공직사회 부패를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미국 공직사회의 부패를 방지하고 윤리의식을 강화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은 정부윤리청(OGE)이다. 1989년 독립된 기관으로 승격된 정부윤리청은 공직윤리, 공무원행동강령 운영, 공직자재산등록 등이 주된 업무다.

정부윤리청은 특히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 현직에 있으면서 퇴직 후 일자리를 알아보면 특정한 정부 업무에서 손을 떼야 한다. 퇴직한 후라도 과거 자신의 공직과 연관돼 이익을 취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 단순히 재취업뿐만 아니라 업무상 접촉도 제한받는다. 고위직일 경우 더 엄격하게 제한을 받는다. 정무직 공무원을 지낸 경우 로비스트로 정식등록을 했을지라도 현직 공무원과 접촉이 제한된다. 천만 달러 이상의 계약을 담당했던 공무원은 퇴직 후 1년간 관련 기업에서 일할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고위공직자 취임 시 청렴서약에 서명하도록 요구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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