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키히토(明仁·82) 일왕이 8일 NHK 등이 방송한 사전녹화 영상에서 생전퇴위와 관련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아키히토 일왕이 8일 전격 생전퇴위 의사를 밝혔다. 그는 본 궁내청 홈페이지 영상메시지로 “고령으로 인해 신체가 쇠약해지고 이에 일왕으로서의 책무 수행이 어려워 퇴위하고 싶다”는 뜻을 알렸다.

아키히토 일왕은 “이미 80을 넘어 다행히 건강하다고는 하나 점차 신체가 쇠약해지는 것을 고려할 때 지금까지와 같이 전심전력으로 상징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어렵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고 있다”며 “앞으로 기존처럼 무거운 의무를 수행하기 어려워진 경우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국민과 국가와 뒤를 이을 왕족에게 좋은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일왕의 고령에 따라 국사를 줄이거나 섭정을 두는 방법도 있지만, 일왕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생을 다하는 것은 변함없다. 또한 일왕이 타계하면 애도 의식과 새로운 일왕을 위한 행사가 겹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그는 "일본 헌법 아래 일왕은 국정에 관한 권능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오랜 일왕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앞으로도 왕실이 국민과 함께 하며 국가의 미래를 쌓아갈 수 있도록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아키히토 일왕의 강력한 퇴위 의사에 따라 일본 사회는 당황하는 모습이다. 일왕의 생전 퇴위는 1817년 에도시대 고카쿠 일왕이 생전 퇴위한 후 200년만이다.

다음 왕위 계승 1순위는 일왕의 장남 나루히토 왕세자다. 2순위는 차남 아키시노 노미야다.

일각에서는 여왕의 시대가 열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본 왕실 내 남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1965년 일왕의 차남 아키시노 노미야 출생 이후 2006년 그의 아들 히사히토가 태어날 때까지 40년간 왕위를 계승할 남자가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 나루히토 왕세자와 부인 마사코 사이에는 딸만 하나 있다.

일본 왕실의 제도·규칙 등을 정해놓은 법률인 현행 왕실전범(典範)'은 왕위 계승 자격을 '남계남자(男系男子)', 즉 아버지로부터 혈통을 이어받은 남자로만 한정하고 있고, 일왕가의 여성이 일반인과 결혼했을 땐 왕족 신분을 상실토록 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히사히토 출생 전 일본 내에선 안정적인 왕위 계승을 위해 왕실전범을 개정, 여성 일왕이나 여성 미야케(宮家·여성 중심의 왕실 일가를 만들어 왕족 여성이 분가한 후에도 왕족 신분을 유지하게 하는 것)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생기기도 했다.

이 여론은 아직 유효하다. 지난 22~24일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일본 전국 성인 남녀 2222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 59%가 ‘여성 일왕과 미야케 도입을 모두 검토해야 한다’고 답했다. ’여성 일왕을 인정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은 21%, ’여성 미야케 인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은 5%였다.

현재 유력한 왕위 계승자는 나루히토 왕세자다. 하지만 높은 여론을 감안하 법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여성 일왕 혹은 여성 미야케 도입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일본 왕실 문제를 둘러싸고 시회적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 총리였던 고이즈미는 여왕제를 인정해 왕위 계승순위는 남녀를 불문하고 첫째 자녀를 우선으로 한다는 보고서를 2005년에 의회에 제출했다. 그는 이를 기반으로 왕실 규정을 개정하려 했지만 아키히토의 차남인 아키시노 왕자가 아들을 얻었다는 소식에 법안은 보류됐다. 2011년에는 민주당 노다(野田) 정권이 여성 왕족이 결혼하더라도 왕족 신분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아베 신조 일본 내각은 “‘남계남자’ 원칙에 따른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태다. 아베 총리는 일왕의 생전 퇴위 메시지 발표 직후 “국민을 향한 발언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연령이나 공무의 부담 정도 등에 비춰 볼 때 정신적 피로감을 생각하게 된다. 어떤 것이 가능할지에 확실하게 대처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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