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파이낸셜타임스>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마이너스 금리정책에 따른 부과금을 아끼기 위해 유럽의 시중은행과 보험사들이 유럽중앙은행(ECB)에 예치한 자금을 현금으로 인출해 자체금고에 보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은행들이 기업에 적극적으로 대출해 실물경제에 돈을 풀도록 유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도입됐지만 기업이나 고객이 대출을 원하지 않을 경우 그 부담을 은행이나 보험사가 져야하기 때문이다.

16일 파이낸셜타임스는 “ECB가 지난 3월 금리를 인하하면서 시중은행들은 중앙은행에 예치한 여유 자금에 연간 0.4%포인트의 수수료를 물어왔다”며 “ECB가 2014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이후 지금까지 거둔 부과금은 약 26억4,000만 유로에 달한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어 “마이너스 금리정책 때문에 독일 은행들이 입은 손실은 지난해에만 2억4800만유로(약 2,900억원)에 달한다”며 “ECB는 향후 경기가 악화하면 추가로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시중은행들이 내야 할 부과금은 더욱 늘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럽 시중은행과 보험사들이 이미 부과금을 피하기 위한 대안 마련에 나섰다. 그 대안 가운데 하나는 중앙은행에 예치된 전자화폐를 현금으로 바꿔 자체금고에 보관하는 방안이다”라며 “세계적인 재보험사인 뮌헨 리(Munich Re)가 최근 중앙은행에 예치한 자금 중 수천만 유로를 현금화한데 이어 독일 2위 은행인 코메르츠방크(Commerzbank)를 비롯한 몇몇 독일 은행들도 이같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같은 은행과 보험사들의 현금 보관 움직임이 확산된다면 상당한 경제적 파장이 예상된다”며 “ECB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것은 경기부양을 위해 시중은행들의 대출을 늘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은행들이 현금 보관이라는 수단을 통해 마이너스 금리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될 경우 대출을 늘려야 할 필요성도 사라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사진출처=파이낸셜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는 “중앙은행에 다행스러운 것은 현금을 보관하고 수송하는 데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이라고 하면서도 “은행들이 대량의 현금을 일시에 인출하거나 고액권으로 인출할 경우 수송비용과 보관공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어 “ECB가 오는 2018년 500유로 지폐 발행을 중단할 계획이지만 은행들은 200유로 자리 지폐를 금고에 보관하더라도 여유가 있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은행들과 보험사들이 직접 현금을 보관할 경우 은행 강도나 지진, 기타 예상치 못한 재난 등의 위험은 남아있다. 합리적인 보험료로 현금을 보호해줄 보험사를 찾는 것도 문제다. 시중은행의 대규모 현금 보관을 중앙은행들이 묵인해줄 지도 불확실하다. 유로존의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맡긴 지급준비금을 화폐로 보관하려고 하면 가장 먼저 중앙은행에 연락을 취해야 한다.

한편 한 독일 은행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은행과 보험사들이 현금을 직접 보관하기로 결정한 것은 마이너스 금리정책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는 훌륭한 수단이지만 이러한 흐름이 확산될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그는 “현금을 쌓아두는 것은 은행에게 큰 비용을 초래하게 되는 반면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은행들의 현금 보관 움직임이 지속되는 한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며 “중앙은행이나 시중은행 모두 이러한 상황을 피하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