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국가정보원 현직 직원들의 ‘비영리 상조단체’로 알려진 ‘양우회’가 선박펀드 투자에 나섰다가 선박침몰 및 자산운용사 직원의 횡령 등으로 거액의 손실을 입은 사실이 최근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다. 그동안 일부 언론을 통해 ‘골프장 운영’ 등의 영리활동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선박펀드 투자 사실이 추가로 드러남에 따라 공무원의 영리 행위를 금지한 국가공무원법 위반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양우회’는 박정희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한 김계원 씨가 중앙정보부장으로 있던 1970년 9월에 설립됐다. 국정원 직원들의 급여 중 일정 금액(본봉의 약7~8%)을 매달 적립했다가 퇴직 시 ‘연구비’ 명목으로 지원금을 주는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양우회의 법인등기부등본에는 “자본금이 30억원”이고 “국정원 직원들의 생활증진과 복지 향상을 도모한다”고 되어 있다.

양우회의 구체적인 자금 규모와 출처, 운영 상황 등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흔한 인터넷 웹사이트도 존재하지 않고 전화번호나 주소 등 기본 정보를 얻기조차 힘들다. 국회 정보위원회에서도 양우회에 대한 자료를 요청한 적이 있지만 ‘국가기밀’ 혹은 ‘공공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에 자료 제출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감사원도 같은 이유로 양우회에 대한 조사를 한 번도 진행하지 못했다. 양우회는 지난해 3월 11일 ‘양우공제회’에서 ‘양우회’로 명칭을 바꿨다.

일반적으로 공제회는 친목 목적의 ‘순수 공제회’와 영리 목적의 ‘영리 공제회’가 있으며, 공무원은 영리 공제회에 가입할 수 없게 돼 있다. 국가공무원법 제64조(영리 업무 및 겸직 금지)는 ‘공무원은 공무 이외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소속 기관장의 허가 없이는 다른 직무를 겸직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이 업무상 취득한 개발 정보 등을 수익활동에 이용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단, 개별법령에 의해 설립된 공제회에 한해서 예외가 허용된다. 교직원의 경우 ‘교원공제회법’, 군인은 ‘군인공제회법’, 소방공무원은 ‘대한소방공제회법’, 경찰공무원은 ‘경찰공제회법’에 따라 영리행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양우회의 경우 이 같은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영리 행위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그동안 국정원은 “양우회는 직원들의 상조단체인 비영리 조직”이라며 “국정원과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0년 한 국정원 직원의 부인이 제기한 이혼소송 과정에서 대법원은 양우회의 성격을 ‘국정원 외곽단체’로 명시해 양자의 관련성을 인정했다. 게다가 국정원이 “비영리 조직”이라고 주장하던 양우회가 실제로는 수천억원대의 자산을 굴리며 골프장 운영 사업은 물론, 선박·항공기 등 펀드 투자에도 뛰어든 정황도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양우회는 국내에만 최소 2곳의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다. 양우회가 처음 매입한 골프장은 S식품에서 운영하던 강원도 원주의 파크밸리골프클럽이다. 양우회는 지난 2003년 1월 50만평 규모의 이 골프장을 500억원에 사들였다. 골프장 운영을 위해 ‘강원레저개발(주)’을 설립했다. 운영자금까지 더해 인수 당시에만 540억원이 들어갔다. 2013년 말까지 골프장에 빌려준 돈도 508억원에 달한다. 이 골프장에만 10년 간 1천억원이 넘는 돈이 쓰인 셈이다. 2006년에는 충북 충주의 골프장 ‘제피로스GC’ 등을 운영하는 ‘중원레저개발’의 지분 전부를 292억 원에 인수했다. 지난해 말 중원레저개발의 회계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양우공제회가 그동안 이 업체에 투자한 금액은 700억원에 이른다.

양우회는 지난 2001년 ‘우양개발’이라는 회사를 설립한 후 경기도 성남시 구미동의 토지를 사들이고 임대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2007년에는 마이애셋자산운용의 사모펀드를 통해서 중국 현지의 골프클럽 조성사업을 위한 펀드에 60억 원을 투자하는가하면, 2008년에는 항공기를 매입해 항공사에 빌려주고 임대료를 챙기는 구조인 미래에셋증권의 항공기펀드(2호)에 67억원을 투자했다. 이듬해인 2009년에는 약 20억 원을 투자해 선박펀드에도 참여했다.

올해 3월에는 양우회가 선박 관련 펀드에 거액을 투자했다가 떼인 뒤 소송을 통해 3분의 1정도를 돌려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22부(부장판사 박형준)에 따르면, 양우회는 지난 2008년 A자산운용사가 관리하는 선박펀드에 73억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선박침몰 및 A사 직원 권씨의 횡령 등으로 양우회는 이자 3억3,000여만원만 돌려받고 원금은 돌려받지 못했다. 이에 양우회는 “투자자 보호 의무 등을 위반했으므로 손해를 배상하라”며 A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에 재판부는 “A사는 투자 원금에서 이미 지급한 이자를 제외한 69억6,000여만원과 지연이자를 양우회에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다만 양우회의 간접투자 경험이 상당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 A사의 책임을 40%로 제한한다”며 “A사는 양우회에 27억8,000여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와 관련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교직원공제회나 군인공제회는 교직원공제회법, 군인공제회법 등 법에 따라 설립된 특수법인이고 법 취지에 따라 수익활동을 하는데 양우회는 이러한 설립근거가 없다”며 “특히 현직 국정원 직원들로 구성된 양우회가 영리추구행위를 하는 것은 국가공무원법에 저촉된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관계자 역시 “공무원이 그 직위나 직무에 의해 얻은 정보를 수익활동에 사용하는 것을 막고자 법으로 공무원의 수익활동을 금지하는 것”이라며 “국정원 직원들의 경우 다른 공무원들에 비해 고급 정보를 더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