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인하나 마케팅활동 강화 예상 돼

7월 우리나라와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발효가 다가옴에 따라, 국내 화장품 업계가 다소 긴장하고 있다. 한-EU FTA가 발표되면, 세계적으로 브랜드 파워를 갖춘 유럽 화장품 업체들의 관세가 단계적으로 철폐된다. 그렇게 되면 이들의 가격 경쟁력까지 높아져, 국내 화장품시장이 잠실 당할 위기가 오는 것이다.

현재 국내 화장품 수입분 중 EU 브랜드 제품은 42%에 달한다. 이들 화장품에 붙는 관세는 8% 정도. FTA가 발표되면 단계적으로 3~5년에 걸쳐 관세가 사라져 유럽산 화장품은 2320만 달러 가량의 관세 혜택을 볼 것으로 관측된다.

화장품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그렇지 않아도 세계적으로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있고 국내에서도 소비자들에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유럽산 화장품들이, 관세 철폐에 따라 가격인하나 마케팅 활동 강화로 경쟁력을 더욱 높이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화장품
최대의 위기 오나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한-미 FTA 발효 후 값싼 수입화장품에 따른 국내 화장품 산업 타격보다 더 큰 문제는 한-유럽연합 FTA라고 보고 있다. 유럽 화장품은 전세계적으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한-EU FTA가 발효되면 국내 화장품 시장에 가격 저항 없이 진입해 마침내 한국 내 화장품 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또 국내 소비자들이 ‘수입산’이라면 무조건 좋게 보고 돈만 있다면 구매를 잘 망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만일 유럽 화장품 브랜드가 관세 철폐 혜택에 따라 제품 가격인하라도 한다면, 거기에 따라가는 소비자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증권가나 업계 전문가들은 유럽 화장품들이 가격을 내릴 것이라고 보는 것과 내리지 않고 마케팅 활동을 더 강화할 것으로 보는 두 시각으로 나뉘고 있다.

만일 가격이 인하된다면, 고가의 명품 브랜드의 경우 가격민감도가 있기 때문에 조금만 가격이 내려가도 매출에 큰 폭으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소비자들은 그동안 터무니없는 가격정책으로 소비자들을 우롱해 온 국내 화장품 브랜드들이 이번을 계기로 정신을 차리고, 전세계와 견줄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해가며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다.

유럽 화장품의 가격이 내려가지 않더라도 국내 화장품 브랜드들은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가격 인하 대신 마케팅 활동 강화의 길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유럽 브랜드들의 마케팅 공격에 마케팅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국내 브랜드들의 마케팅 비용 부담도 예상된다.

화장품 업계 한 관계자는 “주요 명품 브랜드는 전략적으로 고가를 유지하는데다, 고가 정책을 유지해도 매출이 해마다 두 자리수 비율로 올라가고 있어 가격 인하 가능성이 낫다”고 보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유럽 화장품 가격이 인하되든, 아니든 국내 화장품 시장에는 위협이 된다. 따라서 정부 및 관련 업계가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내 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화장품 시장에 또 다른 위협은 기존에 수입되던 명품 브랜드들뿐만이 아니다. 한-EU FTA를 계기로 그동안 수입되지 않았던 유럽 내셔널 브랜드들이 새롭게 상륙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장준기 대한화장품협회 상무도 “지금까지는 고가의 백화점 브랜드 위주였지만 앞으로 대중적인 브랜드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국내 브랜드숍 제조업체들이 타격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으며, 백인수 롯데유통전략연구소 소장도 “명품의 경우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가격 인하효과가 적을 수 있지만 아직 한국에 덜 알려진 ‘매스티지’브랜드(명품보다 한 단계 낮은 가격정책을 쓰는 브랜드)들이 유입돼 국내 브랜드와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FTA로 인해 기술력을 가진 대중적 유럽 브랜드들이 들어왔을 때 가장 타격을 받는 것은 국내 영세 제조업체들이다. 화장품 판매를 주 수익으로 하고 있는 많은 직접판매업체들도 바싹 긴장하고 있다.

대책 마련 어떻게?
정부는 지난 3월 17일 내년 한-EU FTA 발효를 앞두고 피해가 예상되는 의료기기 산업과 화장품 분야에 5년 동안 각각 1,000억원과 700억원을 지원하는 ‘한-EU FTA 체결에 따른 국내산업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이는 원칙적으로 기존에 마련된 FTA 국내보완대책 등을 통해 대처하되, 한-EU FTA 추진으로 특히 피해가 예상되는 취약산업에 대해 추가대책을 마련하고 직접적인 피해보전 보다는 취약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국내 화장품 업계도 위기감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3일 노연홍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만나 한-EU FTA 체결에 따른 정부의 대응책을 주문한 바 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대포, 김춘구 LG생활건강 전무, 임충헌 한국화장품 회장, 강석창 소망화장품 회장, 유충민 나드리화장품 회장 등이 모두 입을 모아 화장품 첨가물에 제한을 두는 우수제조․품질관리기준(GMP)의 업계 자율화 등을 건의했다. EU의 경우 2013년 모든 화장품 업체에 GMP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식약청도 단계적으로 GMP를 의무화하는 방침을 밝혔다. 업계는 또 아토피용 화장품을 기능성 화장품 또는 의약외품으로 분류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날 자리는 한-EU FTA로 국내 화장품 시장에서 외산 비중이 절반 이상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위기감에 따라, 업체들이 자율적으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하는 데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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