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옥스팜 아메리카>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최근 국내 취업에 실패한 한국 청장년층의 미국 비숙련 취업이민이 늘고 있다. 소위 ‘닭공장 이민’으로 불리는 비숙련 취업이민은 식품가공업체, 청소업체, 닭가공 공장 등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취업 기피 업종에서 1년 동안 의무적으로 일하는 조건으로 영주권을 부여하는 미국의 이민제도다. 원래는 불법체류자가 영주권을 받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하다 마지막으로 찾던 방법이었지만 최근 한국에서 취업이 점점 어려워진데다 이민 문턱까지 높아지면서 비숙련 취업이민을 선택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연방노동부 산하 고용훈련국(ETA) 자료에 따르면 올해 1, 2분기 연방노동부의 노동허가서 (Labor Certification)를 승인받은 한국인은 4,484명으로 2015년의 4,895명 수준에 육박한데 이어 지난 8월에는 6,501명으로 늘어났다. 한국인 노동허가서 승인자 수가 한 분기 동안 2,000명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감안하면 연말에는 전년도 대비 2배 수준인 8,500여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의 노동허가서 승인자 수는 인도, 중국에 이어 3위다.

주목할 점은 미국 노동허가서 승인자들 중 닭공장에 취업하는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고용훈련국이 발표한 ‘2012~2013 회계연도 외국인 노동허가통계’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취업한 기업은 ‘인텔’로 총 52명이었다. 이어 2위는 한인 51명이 취업한 닭공장 콕푸즈(Koch Foods)였다. 1위인 인텔과 불과 1명차이다. 직종별 통계에서도 닭공장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업기업(agribusiness)’이 회계ㆍ감사업종(1위)과 전기전자업종(2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특히 앨라배마주의 경우 농업기업 업종은 한인들이 가장 많이 취업한 업종인 것으로 조사됐다. 몽고메리에 위치한 ‘콕푸즈 앨라배마’의 경우 2012년에는 한국인 취업자 수가 18명에 불과했지만 2013년에는 51명, 2014년에는 59명으로 늘어났다.

이와 관련 앨라배마 한인사회 관계자는 “앨라배마주는 조지아주와 함께 미국에서 닭고기 등 농축산물 가공업이 가장 잘 발달한 지역이라 그만큼 인력 수요도 많다”면서 “최근 취업영주권 3순위(비숙련직 취업이민)의 영주권 취득이 빨라짐에 따라 영주권 스폰서를 찾는 한인들이 닭공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섣부른 닭공장 취업은 삼가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닭공장에 취업해 받을 수 있는 임금은 미국 최저임금에도 못 미쳐 생활비를 마련하기조차 힘든 수준이기 때문이다. 연방노동부에 따르면 2013년 닭공장에 취업한 한국인의 연소득은 최저임금 수준인 1만7,950달러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 현지 한인 관계자는 “닭공장은 고기를 가공하는 거친 작업이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심하고 부상 위험도 크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저소득 직종에 해당하기 때문에 준비 없이 가볍게 도전할 만한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근로자들의 인권침해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 5월 국제구호단체 옥스팜 아메리카(Oxfam America)는 미국 전역의 육계 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ㆍ분석한 보고서를 통해 “닭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비인간적이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며 “노동자들은 잦은 부상과 낮은 임금, 열악한 근로환경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심지어 많은 이들이 생산성 극대화를 이유로 화장실에 가는 것을 금지당해 기저귀를 차고 일을 했다”고 밝혀 충격을 줬다. 이와 관련 아칸소주의 한 노동자는 “공장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기저귀를 차고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다”며 “감독관들은 빠른 생산 속도를 맞추기 위해 무슨 짓이든 했고 기업은 이를 눈감아줬다. 100년 전에나 일어났을 만행이 일어나고 있었다”고 토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5월 11일자 기사를 통해 닭공장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어깨를 다닥다닥 붙이고 컨베이어 벨트에 쭉 늘어선 노동자들은 칼이나 가위를 사용해 1분에 40마리 정도의 닭 껍질을 벗기고 뼈를 발라내 포장하는 작업을 한다. 이들은 춥고 축축하고 시끄러운 공정 환경에서 매일 수천 번 이상 이같은 일을 반복한다.”

한편 한 네티즌(J**)은 닭공장 이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주변에 닭공장에서 미국 영주권을 받으신 분들이 몇 분 있습니다. 50이 넘은 분들도 있는 걸을 보면 그렇게 까지 혹독한 근무조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1년 정도 고생하고 나면 일단 영주권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닭공장은 워낙 급여가 작은데다 대부분 외지에 위치하고 있어서 영주권을 받으면 다들 대도시로 떠납니다. 하지만 비숙련취업 이민자들 대부분이 영주권만 갖고 있을 뿐 영어가 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사업체를 인수할 만한 목돈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막상 할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몇 년씩 허송세월 하면서 한국에서 가져온 돈을 탕진하는 걸 많이 봤습니다. 제가 드리고싶은 말은 미국 이민은 영주권 획득이 문제가 아니라 영주권 획득 이후에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닭공장 업체가 한국인을 고용하는 이유는 저임금 때문입니다. 부부가 둘이서 열심히 일을 해야 간신히 생활비 정도를 벌 수 있는 수준입니다. 따라서 1세대 부부들은 인생의 꿈이나 비전 같은 것들은 철저히 포기하고 오로지 2세대가 잘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닭공장 이민을 알선하는 업체 중에는 엉터리도 있다는 점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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