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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국내 철강 산업 공급과잉의 원인이 현대제철의 고로생산 때문이라는 뉘앙스를 풍긴 권오준 포스코 회장의 기자회견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권 회장은 지난달 31일 태국 자동차강판 공장 준공식을 앞두고 방콕 콘래드호텔 런던룸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포스코는 그동안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청강 산업이 공급과잉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하지만 국내에 고로업체가 한 곳 더 생기면서 변수가 발생했고 그 결과 철강 산업에 심각한 공급과잉 문제가 나타났다”며 “공급균형이 상당히 무너져 있기 때문에 설비를 줄이는 등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이어 “유럽, 일본, 미국 등은 고로업체들이 압연, 가공 등 하공정 업체들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해 살아났다”며 “우리나라도 그런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업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권 회장이 철강 산업 공급과잉의 원인으로 지목한 새로운 고로업체가 누군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권 회장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국내 고로업체는 포스코와 현대제철 두 곳 뿐이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권 회장이 현대제철을 지목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현대기아차그룹이 인수한 ‘INI스틸’의 후신으로 2006년 일관제철소 건설을 개시한 데 이어 2011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 현재 세계 11위 규모의 글로벌 철강회사로 성장했다.

이같은 권 회장의 발언에 현대제철은 보도자료를 내고 즉각 반박했다. 현대제철에 따르면 “국내 철강 시장의 공급과잉이 현대제철 고로 진출로 비롯됐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현대제철이 2004년 고로 진출 발표 당시 한국은 연간 1,063만톤의 열연, 후판, 슬래브 등의 철강소재를 수입하고 있어 생산능력 증대가 절실한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현대제철은 이어 “당사가 고로 진출을 확정한 후 포스코는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483만톤의 설비 증설을 단행해 총 4237만톤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했다”며 “국내 철강 시장의 공급과잉이 단순히 현대제철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포스코의 무분별한 설비 확장이 원인이 뙜다”고 반박했다.

권 회장의 발언은 포스코 하나로도 국내 철강 수요를 채울 수 있었는데 현대제철이 등장함으로써 과잉생산이 초래됐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철강업계가 권 회장의 발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최근 주요국에서 한국을 철강 산업 공급과잉의 주범으로 몰면서 한국기업을 견제하는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권 회장의 발언은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하는 세계 각국들에게 한국 철강기업들에 대한 수입 규제를 합리화하는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업계가 우려하는 바다. 실제로 미국 상무부는 지난 4월 한국 철강기업들의 설비공급 과잉이 저가수출로 이어지고 있다는 공식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업계 내부에서는 “국내 최대 철강업계 포스코의 회장이자 한국 철강협회 수장으로서 철강업계를 다독여야 할 권 회장이 공식적인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공급과잉의 원인을 현대제철 탓으로 돌린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권오준 회장이 포스코 회장으로서 자사의 이익을 위해 해당 발언을 했을지는 모르나 지금처럼 세계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민감한 상황에서 철강협회 회장으로서 해서는 안 될 발언을 했다”며 “권 회장의 발언은 철강 공급과잉이 국내 기업들간 불필요한 경쟁과 이에 따른 저가 수출에 따른 것이라는 세계 각국의 주장을 인정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철강업계 관계자는 “국내기업 간 공동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국내 최대 철강기업 수장이자 철강단체 회장의 지위에 있는 분이 위기를 더 초래시켰다”며 “권 회장이 아무래도 현대제철이 고로에 투자한 것만 알고 포스코가 같은 기간에 설비를 증설한 것은 몰랐던 것 같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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