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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세금 ‘0’원...익명의 제보에서 보도까지 8일간의 추적기
<사진출처=뉴욕타임스 10월1일자 기사 캡쳐>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도널드 트럼프가 최대 18년 동안 연방 소득세를 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뉴욕타임스 보도가 미국 대선판을 흔들고 있다. 트럼프 측은 ‘합법적인 절세’라고 주장했지만 힐러리 클린턴 후보 측은 ‘세금도 내지 않은 형편없는 사업가’라며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달 말 익명의 제보자가 뉴욕타임스 편집국 우편함으로 보낸 한 통의 편지에서 비롯됐다.

2016년 9월 23일. 뉴욕타임스 기자 수잔 크레이그(Sssanne Craig)는 이날도 어김없이 사내 우편함을 확인하러 갔다. 대게는 잡동사니 광고물과 교도소 수감자들이 보낸 편지로 가득 차있는 우편함을 확인하기 일쑤였다. 인터넷 시대에 아직도 일반 우편함을 뒤적이는 그녀를 동료들은 놀려댔지만 크레이그는 개의치 않았다. 우편함에 익명의 정보원이 보낸 ‘비밀 서류’가 담겨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그녀는 버리고 싶지 않았다.

무심코 자신의 메일박스를 확인하던 크레이그는 눈에 띄는 마닐라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편지의 발신인은 ‘트럼프 재단(The Trump Organization)’이었다. 크레이그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녀는 재빨리 편지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거기엔 트럼프의 1995년 납세기록 3장이 담겨 있었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미국 대선의 판도를 바꿀 특종의 결정적인 문건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크레이그는 즉각 탐사보도팀 데스크로 달려가 데이빗 바스토우(David Barstow)를 찾았다. 바스토우는 퓰리처상을 세 차례나 받은 인물이었다. 우편물 내용을 확인한 바스토우와 크레이그는 곧바로 다른 동료 기자인 러스 뷰트너(Russ Buettner)와 메간 투헤이욧(Megan Twoheyoct)을 추가해 탐사 취재팀을 구성했다.

이들은 우선 문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크레이그가 입수한 트럼프의 소득세신고 문건에는 트럼프가 지난 1995년 9억1,572만9,293달러의 손실을 신고했다는 내용과 함께 트럼프와 당시 트럼프의 부인이었던 말라 메이플스의 서명이 기재돼 있었다. 하지만 조작 가능성을 염두에 둔 탐사보도팀은 조세 전문가를 고용해 세금신고서 금액을 일일이 맞춰보는 한편 서류의 진위 여부 확인을 위해 1995년 당시 트럼프의 납세 신고서를 준비했던 세무변호사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바스토우는 그를 만나기 위해 직접 플로리다로 날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끈질긴 설득 끝에 9월 28일 문건의 진본 확인에 성공했다.

바스토우가 만난 트럼프의 전 세무변호사는 어느덧 80세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바스토우에게 1990년대 재벌들의 ‘합법적’ 절세수법에 대한 얘기를 털어놨다. 그는 “지난 1일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1995년 세금 보고서에 9억1,600만 달러 상당의 손실을 봤다고 신고한 후 최고 18년 동안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트럼프는 어떻게 18년 동안이나 연방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그것은 부동산 기업인들을 보호하는 법 때문입니다.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 후보는 1990년대 초반에 부동산 사업과 카지노 사업이 휘청거리면서 막대한 손실을 봤습니다. 당시 연방소득세법은 이처럼 손실액이 클 경우 이전 3년과 이후 15년을 포함해 최고 18년 동안 수입에서 세금을 공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트럼프 후보의 경우 이후 한 해에 500만 달러에 달하는 수입을 올렸다 하더라도 이전의 손실액을 제하고 나면 수입이 전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방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아도 됐던 것입니다.”

탐사보도팀은 해당 문건의 보도와 관련된 법적 문제의 검토도 동시에 진행했다. 미국 연방법은 당사자 확인 없이 세금신고서를 공개하는 것을 ‘위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공익성을 명분으로 면책을 주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정보원에 대한 자료를 요구가 이어지면 사태가 악화될 수 있다.

고민 끝에 뉴욕타임스는 결단을 내렸다. 지난달 10일 뉴욕타임스 워싱턴 지국장인 딘 바케는 하버드 대학에서 열린 퓰리처 10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사내변호사가 트럼프 세금신고를 공개하는 걸 반대한다고 해도 공익을 위해 보도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딘 바체는 또 “공익을 위해서라면 감옥에라도 가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나타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탐사보도팀은 10월 1일 아침 관련 문서를 들고 트럼프 선거캠프를 찾았다. 트럼프 측에 사실관계를 재확인하고 반박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트럼프 측은 문서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채 “보도할 경우 당장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만 놨다.

마침내 10월 1일 저녁 9시 10분 뉴욕타임스는 웹사이트에 바스토우와 크레익 등 4명의 이름을 건 첫 기사를 내보냈다. 제목은 “트럼프의 세금 기록은 그가 지난 20년 가까이 세금을 회피해왔을 가능성을 보여준다”였다. 제보를 받은 지 8일만의 일이었다.

뉴욕타임스의 트럼프 납세신고서 보도 경위 <자료작성=월요신문>

뉴욕타임스의 기사가 보도되자 트럼프 캠프는 투트랙 전략으로 맞섰다. 트럼프 측은 한편으로는 “이번에 밝혀진 유일한 새로운 사실은 20년 전 세금 자료가 불법적으로 획득된 자료라는 것 뿐”이라며 “당사자 확인 없는 세금신고 공개는 불법이다. 실정법을 어기고 개인 정보를 공개한 뉴욕타임스를 고소하겠다”는 공식 논평을 발표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뉴욕타임스 보도를 ‘트럼프 띄우기’ 수단으로 활용하는데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트럼프 캠프 정권인수위원장인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트럼프는 법적으로 요구되는 것 이상의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일 뿐”이라며 “세법을 다루는 데 트럼프만큼 천재성을 보여준 사람이 없다. 완전 엉망인 연방 조세 시스템을 고칠 적임자가 누군지 뉴욕타임스 보도가 알려줬다”고 말했다.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도 거들고 나섰다. 그는 “트럼프는 천재”라며 “이번 건은 합법적 절세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트럼프가 오히려 바보가 됐을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기사 제목은 ‘트럼프, 세법의 적법 조항을 제대로 활용하다’가 됐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캠프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번 폭로는 트럼프를 끝장낼 ‘결정적 한 방’이 될 것이라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지난달 26일 대통령후보 토론회에서 트럼프는 “클린턴 후보가 3만 건 이메일을 공개하면 나도 세금신고내역을 공개하겠다”고 응수했다. 이 장면이 ‘트럼프의 반격’이라는 이름으로 방송과 인터넷으로 확산되고 있는 와중에 뉴욕타임스가 그 흐름을 완벽하게 타고 한 방을 제대로 날렸다는 평가다.

트럼프가 1990년대 초반 뉴저지 주에 있는 카지노 운영과 뉴욕 맨해튼 플라자 호텔 매입 등으로 실제로 거액의 손실을 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당수 세금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1995년에 9억1,600만 달러 상당의 손실을 봤다고 신고한 영향으로 세금공제 혜택을 받아 상당 기간 합법적으로 세금을 피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어반-브루킹스 세금정책센터’의 부동산 전문가인 스티븐 로젠탈은 “1987년의 세금제도 개편으로 부동산은 어느 분야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아왔다. 이는 각종 로비와 부동산 업자의 영향력이 만든 기념비적인 일”이라며 “트럼프의 대규모 적자는 세금 회피를 목적으로 자산에 대한 감가상각 등 여러 가지 회계기법을 동원한 결과일 수 있다. 트럼프가 대규모 손실 근거를 입증할 자료를 공개하면 합법적인 손실인지 아닌지 여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펜실베이니아대 로스쿨의 부동산전문 교수인 마이클 놀은 “손실이 너무 커서 15∼20년 동안 연방소득세를 낼 수 없었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있는 사람이 대통령에 출마했다는 사실은 더 놀랄 일이다”라고 꼬집었다.

한편 민주당은 트럼프의 연방세 회피를 대놓고 불법행위라고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와 관련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 의원은 ABC 방송 인터뷰에서 “부자들은 갈수록 더 부유해지고 있다”면서 “트럼프의 납세 회피가 합법적이라면 우리의 현행 조세 시스템이 그만큼 부패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해리 리드 민주당 연방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거액의 돈을 날린 사실이 드러날까 봐 납세 보고서조차 공개하지 않는 ‘10억달러짜리 루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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