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기자수첩 기자수첩
[기자수첩] 뭇매 맞는 전경련, 환골탈태해야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창립 55년 만에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2000년대 이후 과거의 위상과 역할이 급격하게 축소된 전경련은 최근 국정교과서 논란, 어버이연합에 대한 우회지원, 미르·K스포츠 재단의 출연금 모집 의혹 등 설립취지를 벗어난 정치적 행보가 잇따라 논란이 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경유착의 표상이 된 전경련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전경련은 1961년 8월에 창립된 국내 최대의 순수 민간종합경제단체다. 창립 당시에는 ‘한국경제인협회’로 발족했으나 1968년 전국경제인엽합회로 개칭했다. 초대회장은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 맡았다. 전경련 ‘정관 1조’는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올바른 경제정책을 구현하고 우리 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하는 것을 설립 목적으로 삼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와 함께 전국 5대 경제단체의 하나다. 주요 대기업과 업종별 경제단체 등으로 구성된 전경련의 회원사 수는 2015년 기준 598개사다.

전경련은 산업화 시대와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산업화 시기 전경련은 정권의 정치자금 모집창구가 되고 그 대가로 국가 기간산업을 정부로부터 받아 회원사들에 할당하는 역할을 했다. 정경유착의 폐해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집단이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전경련의 위상은 빠르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특히 외환위기는 전경련의 위상 하락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김우중 전경련 회장이 이끌던 재계 3위의 대우그룹이 해체된 것을 비롯해 수많은 대기업집단이 사라졌다. 빅딜 과정에서 반도체 사업을 포기해야 했던 구본무 LG 회장은 전경련에 발길을 끊었다. 삼성과 현대자동차·SK 등 주요 대기업 총수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발길을 끊으면서 회장단 회의가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이후 전경련은 10대그룹 총수가 아닌 중견그룹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회장직을 수행하다가 2011년 허창수 회장이 취임했지만 후임자를 구하지 못해 3년 동안 연임을 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1990년대까지는 대기업들이 정부로부터 각종 특혜성 사업을 따내 기업 규모를 키울 수 있었기 때문에 전경련이 창구로서 위상이 탄탄했다”며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국내보다 글로벌 경쟁에 뛰어든 대기업들이 각개약진하면서 전경련의 역할도 그만큼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전경련 내ㆍ외부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지원하고 기업들의 국제화를 뒷받침하는 싱크탱크로 변신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전경련은 스스로 변신을 이뤄내기보다는 과거로 역행하는 행보를 보였다. 전경련은 지난해 박근혜 정부가 비판 여론을 무시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유경제원을 통해 홍보에 앞장섰다. 최근에는 청와대와 대통령 비선 실세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정에서 모금 창구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 무용론에 이어 해체론이 대두하는 결정적 요인을 제공했다.

급기야 일부 기업회원들은 전경련 탈퇴를 검토하고 나섰다. 4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과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전경련 탈퇴를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재계의 한 관계자는 “행장들의 발언이 의례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실제 전경련의 최근 행보를 우려하는 회원사들이 적지 않다”며 “전경련이 환골탈태 수준의 조직혁신과 기능 재정립을 이뤄내지 못할 경우 탈퇴 회원사들이 속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이 자체적인 쇄신 노력에 실패하는 사이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 역할은 대한상공회의소로 넘어갔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들어 대통령 초청 경제계 신년 인사회와 국회의원 환영 리셉션 등 재계 행사는 대한상공회의소가 도맡아 주관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초청강연 등 정치권과의 교류도 대한상공회의소의 몫으로 넘어갔다.

재계는 전경련이 이번 기회에 기존 기능과 역할을 재정립하고 인적 쇄신 등을 통해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각종 의혹을 부인하며 문제를 덮기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당초 설립취지에 맞게 순수 민간 경제단체로서 새 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전경련의 모델이 된 일본의 경단련도 한때 정경유착의 핵심으로 지목되며 존폐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1993년 회장으로 취임한 히라이와 가이시 전 도쿄전력 회장이 정치헌금 알선 관행 폐지, 사회공헌활동 강화, 24개 상설위원회 설치를 통한 정책기능 강화 등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면서 정부 정책의 파트너로서 위상을 되찾았던 전례가 있다”며 “전경련이 이 같은 혁신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더 이상 존재이유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창수 기자  invitation1010@daum.net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 받습니다] 월요신문 MDN이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뉴스 가치나 화제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기사 제보 및 사진·영상 등을
월요신문 편집국(wolyo2253@daum.net / 02-2253-4500)으로 보내주시면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허창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