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하는 동안 '#그런데 비선실세들은?' 해시태그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20대 국회 들어 적극적으로 개헌을 요구하던 야당이 박 대통령의 갑작스런 개헌 제안에 당황하는 모습이다. 최순실·우병우 의혹이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국의 주도권을 청와대에 넘겨줄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에 야3당은 원론적으로 개헌 제안에 환영하면서도 비선실세 논란이 묻힐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대변인은 ”최순실, 우병우 등 측근 비리를 덮으려는 정략적 개헌, 국면전환용 개헌 논의 제안이 아닌지 매우 의심스럽다. 민주당은 권력세력 중심이 아닌 국민 중심의 개헌 논의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차분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과거 박 대통령의 발언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기 원내대변인은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대해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참 나쁜 대통령이다. 국민이 불행하다.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느냐. 민생경제를 포함해 국정이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다. 대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개헌 논의를 하면 블랙홀처럼 모든 문제가 빨려 들어갈 수 있다”는 발언을 언급했다.

기 대변인은 또 당시 나경원 대변인의 “오로지 지지율 수렁에 빠진 대통령 구하기의 정치 노림수와 오기일 뿐이다. 국민이 불행하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걱정스러울 뿐”이라는 당시 논평도 거론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추 대표는 “시기가 적절치 않다. 대통령은 이 개헌 논의에서 빠지셔야 되는 분이다. 자칫 잘못하면 정권 연장 음모에 휘말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추 대표는 "예전에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가 정권 연장을 위해서 3선 개헌할 때 그 때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마치 정권 연장을 위한 개헌 음모처럼 비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대선주자들도 비슷한 입장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개헌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에 제가 즉흥적으로 답변하는 것보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제안하신 취지를 더 살펴보고 좀 더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면서 “갑자기 개헌을 말씀하시니까 이제 거꾸로 무슨 블랙홀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인가 의아스러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과 청와대는 빠져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안 지사는 “헌법 개정 논의를 국면 전환용으로 이용하지 말라. 대통령은 현 개헌 논의에서 빠져 달라. 대통령은 의회 개헌 논의에 협조자의 위치에 서 달라”고 말했다. 안 지사는 또 “새 헌법 시행 시점을 정해 개헌 논의 기구를 발족하고 헌법 개정 추진 절차를 규정한 특별법을 만들자”는 주장을 했다.

김부겸 의원도 개헌 과정에서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주장했다. 김 의원은 “임기 말의 대통령이 개헌 논의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모양새를 취하면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에서 진지한 토론을 해나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정치권이 합의한 만큼 구체적 내용을 놓고 각자 입장을 내고 토론에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강한 어조로 개헌 제안을 비판했다. 이 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개혁 적기 아닌 비리은폐 무마 적기”라며 “임기말 레임덕과 최순실 우병우 등 측근 비리 권력부패를 덮기 위한 정략 꼼수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장기적으로 4년 중임 대통령제 분권강화형 개헌이 필요하긴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김종인 전 대표는 민주당 인사들 가운데 이례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 전 대표는 “시기적으로는 적정한 시기가 되지 않았나 본다. 개헌을 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볼 것 같으면 대통령도 일반적으로 인식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옳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략적 의도에 대해서 김 전 대표는 “최순실 게이트와 개헌을 굳이 결부시킬 필요가 없다. 최순실 문제는 그대로 처리하면 되고 개헌은 개헌대로 별개의 사안으로 보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우리 당의 다수 의원도 개헌을 찬성하고 있어 논의는 해야 한다"며 "논의한다고 했지 동의라고 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박 위원장은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제안한 것에 대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대통령이 우병우·최순실 등 이슈에 대해 '블랙홀'을 만들려는 정략적인 부분도 숨어있지 않나 싶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놓고 “정치적으로 훌륭한 분이다. 이 때 개헌론을 제안하는 것을 보면 따라갈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안철수 전 대표는 개헌 제안을 국면전환용이라고 평가했다. 안 전 대표는 “2007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과 4년 중임제를 제안했을 때 박 대통령은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박 대통령의 개헌 논의 제안이 최순실·우병우 등 측근 논란을 덮으려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안 전 대표는 “아마 임기 마지막 해에 개헌 논의들이 전개될 텐데 합의가 이뤄지지 못할 경우 박 대통령이 국회에 책임을 돌리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안 전 대표는 개헌 논의에 앞서 선거구제 개편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내놓았다. 그는 “지금처럼 양당 체제에 극도로 유리한 선거 체제는 그대로 두고 개헌만 추진하는 건 양당이 나눠먹기를 하고 양당 다선의원들이 다 해먹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당제가 가능하게 만든 뒤 개헌으로 넘어가는 게 순서”라는 입장을 밝혔다.

노회찬 원내대표는 개헌이 급작스럽게 추진됐다고 주장했다. 노 원내대표는 “‘최순실 게이트’ 등 사태와 연관해서 전격적으로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며 근거로 내년도 예산에 개헌 관련 예산이 반영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노 원내대표는 개헌에 대해 정부 부처도 알지 못했다는 점도 꼬집었다. 24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예산심의 전체 회의에서 노 원내대표가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사전에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는가. 그동안 정부가 개헌논의를 준비해온 것을 알고 있었는가”라고 묻자 김 장관은 “사전에 알지 못했고, 준비해온 것도 몰랐다. 직접 지시받은 바도 없다”고 답변한 것.

이에 노 원내대표는 “최근에 민생파탄과 대형 측근비리, 최악의 지지율, 이 모든 것을 개헌이라는 블랙홀에 쓸어 넣겠다는 뜻으로 개헌을 전격 제안하신 것으로 보인다. 개헌은 국회에 맡겨 달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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