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출처=JTBC>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을 포함해 당선 소감문, 국무회의 자료 등 청와대 내부 문서를 공식 발표보다 먼저 받아 본 정황이 드러났다.

24일 JTBC는 “최씨의 컴퓨터를 입수해 파일을 분석한 결과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 44개를 대통령이 연설하기 전에 받아 봤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JTBC보도에 따르면 최씨 사무실에 있던 PC에 저장된 파일 중 청와대 관련 파일은 모두 400개다. 그 중 44개는 박 대통령의 연설문이나 공식발언 내용을 담은 문서였다. 최씨가 관련 파일을 받은 것은 모두 박 대통령의 공식 연설이나 발언 이전 시점이었다.

예컨대 2014년 3월 28일 박 대통령이 ‘통일대박론’의 구체적 실천 방안을 내놨던 독일 ‘드레스덴 연설문’을 최씨는 하루 전에 받아 본 것으로 확인됐다. JTBC는 “드레스덴 연설문 원고 곳곳에는 붉은 글씨로 표시된 부분이 있었다”며 “박 대통령이 실제 읽은 연설문은 초안과 달리 20여 군데가 수정됐다. 이는 최씨의 ‘첨삭’에 의해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구상을 담은 연설문이 수정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 당선 뒤 신년사(2012년 12월 31일)도 최씨 PC에서 발견됐다. 최씨는 이 역시도 공개되기 하루 전인 12월 30일에 받아 봤다. 이 신년사 파일의 문서 정보에 따르면 수정된 지 4분 만에 최씨가 확인한 것으로 나온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2013년 5월 18일) 역시 하루 전에 최씨의 PC에 저장됐던 것으로 나온다.

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 유세문도 발견됐다. 대선을 나흘 앞둔 2012년 12월 15일 박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유세 문건의 경우, 유세 1시간 전에 최씨의 PC에 저장됐다. 대통령 당선이 확정적이던 그해 12월 19일 오후 9시 21분에는 박 대통령의 당선 소감문이 최씨에게 전달됐다. 약 2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11시 50분쯤 박 대통령은 최씨의 PC에 저장된 소감문 순서대로 당선 소감을 밝혔다.

최씨가 미리 받아 본 파일에는 연설문 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 자료도 포함돼 있었다. 2014년 7월 23일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 역시 최씨가 미리 받아 2시간 전 열어 본 것으로 확인됐다. 또 박 대통령은 이튿날인 24일 강원도청을 방문해 당선 이후 첫 지방자치단체 업무보고를 받았는데, 최씨 컴퓨터에 있는 문서를 분석한 결과 최씨는 하루 전날인 23일 오전 10시17분에 ‘강원도 업무보고’라는 제목의 파일을 열어 본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 비서진 교체 관련 문건도 발견됐다. 이 자료에는 허태열 당시 비서실장 등 청와대 비서진이 대거 교체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문건이 최씨의 PC에서 마지막으로 수정된 날짜는 8월 4일 오후 6시 27분이었다. 청와대는 다음 날인 8월 5일 인사를 단행해 허 비서실장을 김기춘 비서실장으로 교체됐다.

JTBC는 “일부 원고는 작성된 지 적게는 4분에서 길어야 1시간 반 이내에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됐다”며 “일부 문건의 경우 작성자가 박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로 확인됐다. 하지만 최씨의 PC까지 전달된 경로는 현재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 문건이 왜, 누구를 통해 최씨에게 건네졌는지에 따라 파장은 더 커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JTBC는 최씨 컴퓨터에 있는 문서를 취득한 경위에 대해 “최씨가 황급히 이사간 사무실 중 한 곳에서 최씨 측이 건물 관리인에게 처분해달라고 맡긴 짐들이 있었다”면서 “관리인의 양해를 구한 뒤 그 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최씨의 PC를 발견하게 됐다”고 전했다. JTBC에 따르면 이 PC의 아이디는 ‘유연’으로, 최씨의 딸 유라씨의 개명 전 이름과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순실씨의 대통령 연설문 사전 입수는 청와대 내부 인사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청와대의 어떤 인사가 최씨에게 주기적으로 기밀 문서를 전달했는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인사는 “문고리 3인방이 조력자로 추정되지만 그 윗선일 가능성도 있다. 외부에서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하는 일이 대통령의 허락 없이 가능한 일인가. 문고리 3인방이 제 아무리 실권이 있어도 그건 어렵다. 그런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한 것은 대통령이 묵시적으로 동의를 했거나 아니면 승인 하에 이뤄졌을 가능성이 더 높다”라고 밝혔다.

JTBC 보도 후 정진석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고위 당직자들이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박대통령의 직접 해명을 요구한 것도 청와대의 시스템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곤혹스런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25일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이 최순실씨에게 사전 유출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모든 경위에 대해서 다 파악해 보고 있다”라고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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