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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개헌 카드를 꺼내면서 향후 개헌 추진 과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로선 정부측의 뚜렷한 개헌 추진 스케줄이 나오지 않은데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최순실 의혹을 덮기 위한 국면전환용’이라며 반대하고 있어 향후 개헌이 진행될 수 있을지, 추진된다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 미지수다. 다만 ‘5년 단임 대통령제’라는 기존 권력구조의 문제점이 이번 개헌 논의를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권력구조 개편이 향후 개헌 논의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헌법에 명시된 개헌 절차

헌법 제128조∼제130조에 따르면 개헌 절차는 ‘대통령 또는 국회의원 발의→국회 의결→국민투표→대통령 공포 및 발효’의 순으로 이뤄진다.

우선 헌법 개정의 제안권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이다. 대통령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의원은 재적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 헌법 개정을 제안할 수 있다.

이렇게 발의된 헌법 개정안은 대통령이 20일 이상 공고해야하고, 국회는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내에 이를 의결해야 한다. 개정안이 의결되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현재 재적 의원 300명 가운데 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헌법 개정안이 의결되는 셈이다. 투표는 반드시 기명투표로 해야 한다. 헌법개정안은 일반 법률안과는 다르게 수정해서 통과시킬 수 없고, 제출된 개정안에 대해 찬성과 반대 의사만 표명할 수 있다.

개헌안이 의결되면 대통령은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가 투표하고 투표자 가운데 과반수가 찬성하면 개헌안이 확정된다. 개헌안이 확정되면 대통령은 이를 즉시 공포해야 하며, 공포와 동시에 발효된다. 단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당해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 또한 일반 법률과 달리 헌법 개정에 대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개헌 추진 조직 및 주체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에 개헌을 완수하기 위해 정부 내에 조직을 설치하겠다”고 밝히면서 조직이 어떤 형태로 꾸려질 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역대 정부의 전례에 비춰볼 때 범정부 차원의 위원회나 기구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7년 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을 당시 정부는 협의체 형식의 ‘헌법 개정 추진지원단’을 구성한 바 있다. 지원단은 국무조정실장을 단장으로 법무부 차관, 행정자치부 2차관, 법제처 차장, 국정홍보처장, 국무조정실 기획차장 등 관계 부처 차관급 인사와 국무총리 정무수석비서관 등이 참여했다. 지원단은 법제팀, 총괄팀, 대외협력팀 등 3개 팀으로 구성됐다. 국무조정실 기획차장을 반장으로 하고 관계 부처 1급 공무원 등이 참여한 실무지원반도 가동됐다.

국회와 정부 가운데 누가 개헌 추진 주도권을 가지게 될 것인가도 관심의 대상이다. 지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은 국회 주도로 이뤄졌다. 당시 정부에는 헌법연구기구인 ‘헌정제도연구위원회’가 설치돼 있긴 했지만 정부가 개헌 작업에 개입할 여지는 크지 않았다. 국회는 1987년 6·29 민주화 선언 이후인 7월 30일 민정당·민주당 소속 의원 4명씩 총 8명이 참여한 정치회의를 가동하며 개헌 협상을 시작했다. 이후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는 같은 해 9월 18일 여야 협상 내용을 토대로 개헌안 전문을 확정해 발의했고, 사흘 뒤인 21일 헌법 개정안을 공고했다. 이어 국회 의결을 거쳐 10월 27일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반면 제5공화국 헌법 개정 과정은 일체의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언론의 자유가 봉쇄된 가운데 신군부의 일방통행식 결정으로 진행됐다. 정부는 1980년 1월 법제처 내에 헌법연구반을 설치했다. 헌법연구반은 위원장인 법제처장을 비롯해 법학자, 정치학자, 경제학자, 법조인, 공무원 등 약 30명으로 구성됐다. 정부는 이어 3월에 대통령 소속 자문기구인 헌법개정심의위원회를 발족했다. 헌법개정심의위원회는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았으며 그밖에 정계, 경제계, 법조계, 언론계 등 각계인사 70명이 참여했다. 헌법개정심의위원회는 1980년 9월 7년 단임제를 핵심으로 하는 헌법 개정안을 확정했고, 그해 10월 국민투표를 거쳐 공포했다. 당시 헌법 개정안은 국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

권력구조 개편의 방향

‘5년 단임 대통령제’라는 기존 권력구조의 문제점이 개헌 논의를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향후 개헌 논의는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그간 정치권에서 권력구조 개편의 방향으로 거론된 것은 △미국식 4년 중임제 △ 오스트리아식 분권형 대통령제 △유럽식 의원내각제 등 세 가지다.

4년 중임제의 경우 기본적으로 기존 대통령제의 근간을 그대로 유지하되 대통령제의 ‘원형’인 미국 방식을 도입하자는 의견이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쪽보다는 5년 단임제의 폐해를 시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본,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들이 안정적 권력구조를 확보해 중장기 국가 어젠다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데 반해 우리는 조기 레임덕 현상으로 대통령이 집중적으로 일할 시간이 사실상 3년 안팎에 불과하다.

반면 분권형 대통령제 또는 이원집정부제는 권력 분산에 초점을 맞춘다. 대통령은 국방과 외교 등 외치를 담당하고, 경제 복지 행정 등 내치는 총리가 나눠맡는 구조다. 이른바 오스트리아식 모델로도 불리는데 대통령은 국민 직선제로 선출하고, 총리는 국회에서 간선으로 뽑는 방식이 정치권에서 유력하게 거론된다. 사실상 대통령제에서 의원내각제로 이행하는 중간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등 상대적으로 소수파이지만 유럽식 정통 의원내각제를 희망하는 의원들도 있다. 의원내각제는 의회의 다수 의석 정당이 내각 구성권을 가지고, 내각은 의회에 책임을 지는 정치제도를 말한다. 대통령 중심제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간의 3권분립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견제와 균형의 정치를 추구한다면 의원내각제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긴밀한 연계를 강조한다. 현행 권력구조가 승자 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로서 사생결단식 정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보고 연정과 협치, 책임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선 새 권력구조로 내각제가 적합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국민들이 여전히 많은데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감안할 때 현재로선 내각제로의 직행은 요원하다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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