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미연방수사국>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지난달 28일 미 연방수사국(FBI) 제임스 코미 국장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이메일 스캔들을 재수사하겠다고 나서면서 국가정보기관의 정치 사찰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의 행동은 과거 정치 사찰로 악명 높았던 존 에드거 후버 FBI 전 국장을 연상케 한다”며 “과거 FBI의 정치 사찰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FBI가 정치 사찰 문제로 악명이 높았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FBI는 미국 법무부 산하의 연방수사기관으로 1908년 7월 26일 법무부 검찰국으로 발족했다. 1935년 미국연방수사국으로 개칭했으며, 1930년대 대공황 시절 은행 강도 존 딜린저 등 갱들을 일망타진함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스파이 색출을 명분으로 조직을 대대적으로 확장한 FBI는 도청 등 불법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저명인사들에 대한 사생활 조사 등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비밀 정보활동에 나섰다.

특히 ‘후버 파일’이라고 불린 사찰 정보로 ‘밤의 대통령’이라는 별칭을 얻었던 존 에드거 후버(John Edgar Hoover) 국장 시절에는 미국 역대 대통령들도 그를 경질하지 못할 정도로 세력이 막강했다. 후버 국장은 1924년부터 1972년 사망할 때까지 무려 48년간 FBI 국장으로 재직한 인물로 ‘정치 사찰 기관’이라는 FBI의 이미지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나치 및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지킨다는 명분하에 코인텔프로(Cointelpro)라는 감시시스템을 도입해 주요 인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가 하면 사찰한 파일을 이용해 정치권에 개입했다. 조사 대상 조직 내부에 침투하는가 하면 특정 개인이나 조직에게 불리한 정보를 유포해 여론을 조작하기도 했다. 때로는 이같은 목적을 위해 거짓 정보를 만들어 뿌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후버 국장은 마틴 루터 킹, 찰리 채플린, 헬렌 켈러, 존 스타인벡, 알버트 아인슈타인 등 유명 인사들을 공산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로 의심해 이들을 감시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틴 루터 킹 목사에 대한 사찰 의혹이다. 지난 2014년 뉴욕타임스는 FBI로 추정되는 단체가 1964년 11월에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난하고 자살을 유도하기 위해 보낸 익명의 편지 원본을 공개했다. 이 편지에는 킹 목사를 비방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편지는 “누구도 진실에서 벗어날 순 없다. 당신 같은 사기꾼이라도 마찬가지다. 너는 이제 끝났다”라면서 “성(性)적으로 미쳐있는 당신의 귀로 편지 동봉물을 잘 들어봐라”고 적었다. 이와 함께 “당신의 더럽고 비정상적이며 사기로 가득 찬 자아를 국민 앞에 벌거벗기는 순간 모든 미국인이 당신의 실체를 알게 될 것”이라며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다. 당신도 그게 무엇인지 알 것이다. 34일의 기한을 주겠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에 이 편지를 공개한 비벌리 게이지 예일대 미국역사학 교수는 “킹 목사가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FBI라고 확신했으며 주변 친구들에게 자신이 살해당할 수 있다고 조용히 알렸다”면서 “당시 국장이었던 존 에드거 후버를 이 편지의 배후로 지목했다”고 말했다. 당시 FBI는 킹 목사의 사생활을 캐기 위해 킹 목사가 머무는 호텔방과 전화기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FBI 민간인 사찰활동의 치부가 드러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71년 3월 8일. 미국 필라델피아시 교외에 위치한 미연방수사국(FBI) 사무실 앞에 반전 운동가 8명이 은밀히 모였다. 이들은 이날 열린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의 권투경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틈을 타 FBI 사무실에 침입했다. 이들이 현장에서 입수한 서류더미에는 FBI가 반전평화ㆍ민권운동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실시한 감시활동 및 허위정보 전술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들은 훔쳐낸 서류의 일부를 워싱턴 포스트(WP)에 전달했고, 워싱턴 포스트는 후버 국장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보도했다.

FBI의 국내 정치 사찰은 후버 국장 사후인 1976년에야 금지됐다. 이는 후버 국장이 백인 우월주의단체인 쿠 클룩스 클랜(KKK),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 반전운동단체, 흑인 과격단체인 블랙 팬더 그룹 등을 감시하기 위해 광범위한 불법 감시망을 가동해온 사실이 전격적으로 폭로되면서다.

하지만 9ㆍ11 테러 발생 이듬해인 2002년 5월 미국 정부는 테러에 효율적으로 대처한다는 명목으로 FBI의 사찰 행위를 다시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존 애슈크로프트 미국 법무장관은 “법무부의 수사 지침에 대한 포괄적인 개정이 이뤄졌다”며 “FBI는 테러 행위를 추적하고 예방하기 위해 합법적인 모든 방법을 사용할 권한이 있다”고 강조했다. 수사 지침 개정으로 FBI 요원들은 종전과 달리 범죄 행위의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도 인터넷 사이트, 도서관, 종교 단체 등 ‘공개된 장소’에 대한 감시와 수사 활동이 가능하게 됐다.

인권운동 단체들은 미국 정부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정치조직과 종교단체 등에 대한 FBI의 불법 사찰 행위가 재개돼 미국은 과거의 코인텔프로시대로 되돌아갈 것”이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미국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번 조치는 헌법으로 보장하겠다”고 말해 FBI 수사 재량권확대에 대한 지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로버트 뮬러 FBI 국장도 새 수사 지침에 대해 “테러 사건의 효과적인 수사에 걸림돌이 되는 관료적 장애물의 제거를 도울 중요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한편 지난 7월 FBI가 불기소 처분을 내리면서 종결됐던 이메일 스캔들이 다시 불거진 것은 클린턴의 최측근 수행비서 후마 애버딘의 이혼과 관련이 있다. 애버딘은 남편인 앤서니 위너 전 하원 의원이 온라인에서 교복을 입은 15세 소녀와 섹스팅(음란한 내용의 문자메시지 주고받기)을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지난 8월 그와 이혼했다. FBI는 이 사건 수사를 위해 위너 전 의원의 노트북 컴퓨터를 압수해 분석하는 과정에서 뜻밖에도 애버딘이 클린턴과 주고받은 업무용 이메일 1000여 건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코미 국장의 이메일 재수사 착수 결정에 대해 뉴욕타임스 등 상당수 미국 언론들은 “대선을 코앞에 두고 후보 이미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FBI의 오랜 관행을 무너뜨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도 FBI 내부 인사의 말을 인용해 “정치 사찰로 악명 높았던 에드거 후버 전 FBI 국장조차 선거 직전에 특정 후보에게 영향을 줄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며 코미 국장의 행동을 비판했다.

FBI 역사에 대해 저술한 작가이자 학자인 샌퍼드 웅가르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부당한 비교일지도 모르지만 이번 일은 에드거 후버 국장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며 “코미 국장이 외압에 굴복하지 않는 강직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그가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선거를 끌고 가기 위해 이번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셈이 됐다는 점에서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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