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임스 코미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 <사진출처=www.time.com>

[월요신문 허인회 기자] 미 연방수사국(FBI)의 힐러리 클린턴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는 미 대선을 뒤흔들고 있다. FBI의 재수사 공개 이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며 상황이 초박빙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일 “수사는 암시나 불완전한 정보, 누설 등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에 근거한 결정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라고 FBI의 재수사 결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재수사 결정은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이 지난달 28일 미 의회에 보낸 서신을 통해 알려졌다. 코미 국장은 서신에서 “당초 이메일 수사와 무관한 것으로 분류한 이메일 중에서 수사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메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재수사 방침을 밝힌 것. 코미 국장은 지난 7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이메일 사건에 대해 법무부에 불기소를 권고할 것”이라고 발표했었다.

선거 개입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안을 재수사하기로 결정한 배경에 대해 현지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CNN에 따르면, 불기소 권고가 발표된 지난 7월 당시 FBI 요원들 사이에서 법무부와 FBI 고위층 간에 클린턴 사건을 덮자는 밀약이 있었다는 음모가 퍼졌다. 요원들은 근거로 2015년 여름, 수사 소관이 클린턴 이메일 서버가 있는 뉴욕 지부에서 본부로 옮겨졌다는 점을 들었다. 이를 두고 당시 뉴욕지부 요원들은 “본부가 이 사건에 개입하려 한다”며 크게 분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본부에서 수사를 맡은 클린턴 사건은 코미 국장의 지시로 첩보를 담당하는 부서로 이관됐다. 첩보 부서는 거의 매일 코미 국장에게 보고를 하며 수사 내용이 언론에 거의 누설되지 않는 이점이 있다. 클린턴 이메일 서버를 조사하는 동안, 조사관과 검사들 사이에 클린턴 소환장 발부를 두고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한 FBI관계자는 “코미 국장과 법무부가 조사를 마무리해 대선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원했다”고 밝혔다.

FBI는 트럼프 캠프에 대한 조사도 극비리에 진행해 오고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의 핵심인물은 부패혐의로 물러난 폴 매너포트 전 트럼프 선대본부장이다. 그는 지난 2007~2012년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집권당으로부터 총 1270만 달러(약 140억2700만원) 상당의 현금을 수수하는 등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을 위해 워싱턴 정가에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받고 선대본부장직에서 물러났다. FBI는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매너포트 수사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코미 국장이 선거거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클린턴에게 치명상을 안길 수 있는 재수사 카드를 꺼내들었는지 의문이 많은 상황이다. 다만 코미 국장은 지난 7월 불기소 권고 결정이후 FBI 안팎에서 큰 비난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코미 국장은 미국 전역의 FBI 지부 순회 활동에서 전직 요원들로부터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며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FBI 내부에서는 소환장 발부를 포함한 클린턴 재단의 공개수사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법무부 고위층에서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공개적인 활동은 자제해야 한다”며 현장의 움직임을 차단시켰다. 선거 개입으로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 상 연방 공무원의 정치적 활동은 금지돼 있다.

현재 FBI 내부에서는 지난 7월 불기소 권고 이후 반 클린턴 정서가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가디언은 전직 FBI 관리의 말을 빌려 “많은 FBI 수사관들이 코미 국장에게 분노했다. 기소하지그가 기소를 권고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법무부에 갈 비난을 받음으로써 FBI를 희생시켰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FBI 직원들은 “광범위한 FBI 직원들에게 클린턴 힐러리는 적그리스도의 화신이다. FBI는 트럼프랜드다. 트럼프에게 투표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디언은 이 같은 복합적인 상황이 코미 국장에게 압박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FBI는 지난달 국토안보부 등 정보기관들이 민주당 이메일 해킹사건의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하는 성명을 발표했을 때 공화당 소속인 제임스 코미 국장의 반대로 성명에서 빠졌다. 당시 코미 국장은 “대선이 가까워 국내 정치 개입 의혹을 살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FBI는 또 트럼프의 전 선대본부장 폴 매너포트가 우크라이나 정부와 결탁한 의혹이 드러났을 때도 같은 이유로 수사를 반대했다.

일각에서는 코미 국장이 클린턴 후보로 전세가 기울자 그간의 입장을 뒤집었다고 주장한다. 부시 정부 시절 그는 2003~2005년 법무부 부장관을 지낸 골수 공화당원인 점도 주목을 끄는 부분이다.

코미 국장이 FBI를 독립적인 수사기관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개혁적인 행동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재 FBI는 법무부 장관 산하 기관으로 과거 존 에드가 후버 국장 재직 당시의 독립성과 통일성을 잃어버렸다는 평가도 있다.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코미 국장이 법무부와 대립각을 세웠다는 시각이다. 법무부 장관은 정권이 끝나면 바뀌는 반면 2013년 오바마 대통령에게 임명된 코미 국장의 임기는 10년으로 2022년까지다. 대선에서 존재감을 드러내 FBI의 위상을 재정립하겠다는 복안이라는 분석이다.

반론도 있다. 최근 들어 FBI는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을 장려하고 분석요원 육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장요원들과 대우도 비슷하게 하는 등 다양하게 요원들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코미 국장은 여전히 백인 남성 위주의 조직 구성을 원하고 있어 내부에서 갈등이 있는 등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 재수사 결정이 다른 속셈이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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