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김윤진 기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헌법재판소에 이어 사법부에 대해서도 권력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났다.

2014년 9월 22일자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에는 ‘비위 법관의 직무배제 방안 강구 필요(김동진 부장)’라는 김기춘 전 실장의 지시사항이 적혀 있다.

김 부장판사는 2014년9월12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국정원 댓글 사건’ 재판에서 피고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선거법 무죄판결을 받은데 대해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은 ‘지록위마(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함)의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국정원이 2012년 당시 대통령 선거에 대해 불법 개입 행위를 했던 점은 객관적으로 낱낱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이런 명백한 범죄사실에 대해 담당 재판부만 선거 개입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 것은 지록위마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주장했다. 법조계 일각에선 당시 “국정원의 선거 개입이 인정될 경우 대선의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법원이 정치현실과 타협한 판결을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기춘 실장의 지시가 있은 나흘 뒤인 9월26일 수원지법은 “김 부장판사는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렸다”며 대법원에 징계를 청구했다.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그해 12월3일 “김 부장판사가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했다”며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렸다. 법관에 대한 징계 처분은 정직, 감봉, 견책 등 세 종류다. 김 부장판사에 대한 대법원의 정직 2개월 처분은 이례적으로 처벌 강도가 높다는 평가다.

김기춘 실장의 사법부 길들이기는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됐다. 김영한 전 수석 메모에 따르면, 김 실장은 "판사의 성향에 트집잡히지 않도록 치밀하게 준비하라", "국가적 행사 때 법원도 국가안보에 책임 있다는 멘트가 필요하다"고 지시를 내리는 등 사법부도 통제 대상으로 삼았다.

이밖에도 김 실장은 구속된 김종 전 문체부 장관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린 혐의로 특검 수사가 예정돼 있다. 앞서 제기된 김 실장의 지시는 그가 국가의 ‘빅 브라더’로 삼권 위에 군림하려 한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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