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었다. 헌법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종국결정이 선고될 때까지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게 되었다(헌법 제71조). 그렇다면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게 된 국무총리는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모든 권한을 그대로 대신 행사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권한을 대통령과 동일한 정도로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그 의미는 명확하지 않지만 단지 '현상유지적인 권한행사'만 가능하다는 것이 일치된 견해였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왜 현상유지적인 권한행사만 가능한가? 헌법에 따라 대통령은 국민이 선거로 직접 선출하지만(헌법 제67조 제1항) 대통령 권한대행이 될 수 있는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은 국민에 의해 선거로 직접 선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기 때문에(헌법 제86조 제1항)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어 구성된 국회로부터 간접적으로나마 선출되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의원내각제에서도 행정부 수반인 수상(총리)은 의회가 선출하지만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않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지명한 국무총리 내정자를 국회가 부적합하다고 소극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동의권과 의원내각제에서 의회가 수상이나 총리로 적합하다고 판단된 인물을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선출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대통령제를 선택한 현행 헌법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될 수 있는 국무총리나 국무위원(부총리 혹은 장관)을 대통령의 "보과기관"에 지나지 않는 기관으로 규정하고 있다(헌법 제86조 제2항 및 제87조 제2항).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이 그동안 수행해오던 직무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현상유지적인 권한행사만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 전에 대통령이 2선으로 후퇴한 뒤 책임총리를 선출하거나 중립내각을 구성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그러한 주장이 헌법적이지 않은 것도 동일한 이유 때문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수행할 수 있는 현상유지적인 권한행사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대통령제를 채택한 현행 헌법은 대통령에게 실로 엄청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국민투표부의권(헌법 제72조), 조약체결ㆍ비준권, 외교사절 신임ㆍ접수ㆍ파견권 및 선전포고ㆍ강화권(헌법 제73조), 국군통수권(헌법 제74조), 대통령령 발령권(헌법 제75조), 국가긴급권(헌법 제76조), 계엄선포권(헌법 제77조), 공무원임명권(헌법 제78조), 사면권(헌법 제79조), 영전수여권(헌법 제80조), 대법원장 및 대법관 임명권(헌법 제104조 제1항 및 제2항), 헌법재판소장 및 헌법재판관 3인 임명권(헌법 제2항 및 제4항),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3인 임명권(헌법 제114조 제2항) 등이 그것이다. 현상유지적인 권한행사는 말 그대로 국가기능이 정지되지 않고 현재상태로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범위의 권한행사를 의미한다. 현상유지적인 정도의 권한행사는 원칙적으로 새로운 정책의 결정 또는 기존 정책의 내용변경이나 폐지, 공석인 공직의 임명 또는 기존 공직자의 면직이나 보직변경처럼 새로운 상태를 만들어내는 권한행사를 포함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들의 행사는 대부분 새로운 상태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이 권한들 가운데 대통령 권한대행이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많지 않다. 공공기관의 장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처럼 법률에서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한국마사회법에 따라 설립된 한국마사회의 공석인 회장을 얼마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하였는데 이것은 새로운 상태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의 직무범위를 넘은 것으로 판단될 여지가 있다.

헌법은 대통령이 '궐위'된 때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헌법 제68조 제2항) 명시적인 규정은 없지만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받아 권한이 정지되는 등의 '사고'를 당한 때에도 동일하게 국가의 중대한 비상사태인 점을 고려하여 60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기간 내에 사고의 상태가 극복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대통령이 탄핵소추되어 권한행사가 정지된 상태와 유사하게 대통령이 심각한 질병이나 부상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대통령의 권한이 대행될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을 무작정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결정과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어느 순간에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후임자를 선출해야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현행법에는 이에 관한 규정이 없다. 만약 이러한 상황에 관한 입법을 한다면 대통령에 대한 탄핵결정을 하는 헌법재판소가 결정권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 경우에도 헌법재판소가 최종결정을 내리기 위해 대통령의 건강회복을 기다려야 하는 합리적 기간은 대통령 궐위 시 후임자 선거를 실시해야 하는 기한인 60일 이내가 합리적인 것이다. 이처럼 궐위든 사고든 60일 정도의 권한대행이 가능한 대통령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범위는 최대한 축소되어야 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될 수 있는 국무총리나 국무위원도 탄핵의 대상이다(헌법 제65조 제1항).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이 허용한 권한범위를 넘어서 권한을 행사하면 법위반으로 탄핵소추가 가능하다. 그동안 헌법에 규정된 탄핵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국회의 탄핵소추권이 남용되는 것도 문제겠지만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공직자의 명백한 법위반에 대해서 눈감아왔던 국회의 책임도 크다. 국회는 헌법이 부여한 탄핵소추권을 충분히 활용하여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고위공직자의 책임을 엄격하게 물을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사고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출범한 현시점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행할 수 있는 권한범위를 넘어 권한을 행사하면 탄핵을 통해 법적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동대학교와 광운대학교를 거쳐 2003년부터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헌법과 인권법을 연구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위원, 국회 입법지원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전문위원 겸 조정위원 등을 지냈다. 최근 저서로는 <헌법학강의>, <13가지 죽음>, <감시와 법> 등이 있고, 발표 논문으로는 〈한국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법적 쟁점〉 〈차별, 소수자, 국가인권위원회〉 〈헌법상 혼인의 개념-동성간 혼인의 헌법적 허용가능성〉 〈대법원의 존엄사 인정과 인간의 존엄 및 생명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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