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 분식회계추방연대 대표

최순실 청문회를 여섯 번에 걸쳐서 보면서 느낀 점은 국가든 기업이든 간에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점이었다. 그 중에서 대기업 총수들이 청문회장에서 심문을 당하는 모습은 국가적으로나 기업측면에서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삼성그룹에 쏟아진 수 많은 의원들의 질문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업입장에서 많은 준비를 하였구나 하고 느꼈다. 가끔 당황스런 질문에 잠시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서 변호사들이 준비한 모범 답안을 벗어 나지 않으려고 애쓰는 태도를 엿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네티즌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붙여준 별명이 ‘이지스방패’이었다.
반면에 최고령 정몽구회장의 대응은 다른 방식이었다. 핵심 질문에 대한 대답은 ‘기억이 안 난다’로 대응하고 그리고 만약을 대비하여 변호사가 바로 뒤에서 조력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두통으로 병원으로 가는 것이었다. 이것도 기업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잘 대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만약 이재용 부회장이 받은 까다로운 질문공세를 이건희 회장이나 정몽구 회장이 받았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지스방패’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발생하였을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과연 합리성이 배제된 것인가 아니면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친 것인가 하는 점은 끝끝내 불분명한 상태로 종료되었다. 이것이 가장 핵심이 되기 때문에 이런 저런 방식으로 그에 대한 대답을 교묘하게 피했던 것이었다.
 
어찌되었든 구치소에서 마지막으로 청문회를 한 것으로 ‘최’청문회는 시끄럽게 끝이 났고, 현대자동차의 윤리경영론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필자는 현대자동차 내부고발인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곰곰이 읽어보았다. 그랬더니 의외로 ‘리콜’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내부고발인이 외부에 제보하게 된 과정과 최순실 사건의 폭로 과정에 다소 유사한 점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조선비즈는 김 부장이 내부 제보자로 나선 이유가 궁금했다. 지난 13일 김 부장을 만나 내부 제보를 결심한 계기와 현대차의 품질 문제, 포상금 등 그를 둘러싼 의혹들에 대하여 들어 봤다.

◆ “현대차 감사실 등에 수 차례 제보했지만 아무런 조치 없었다”

-현대차 내부에서 어떤 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나. 현재 다른 부서로 이동한 이유는?
“처음에는 마음에 걸려서 회사 인사팀에 품질전략팀을 나오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음에 찾아간 곳이 감사실이다. 품질 문제와 리콜 관련 문제 사례 등과 관련된 자료를 들고 가서 문제를 제기했다. 감사실에는 두 차례에 걸쳐 조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1년 동안이나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 -외부에 문제를 제기한 과정을 알려달라.

“처음 찾아간 곳은 국토부다. 품질전략팀 근무 중 계속 회사와 갈등을 겪다가 작년 8월 20일 국토부에 현대차의 품질 관련 문제와 결함 은폐 등을 제보했다. 회사가 정부를 상대로 로비할 것이라고 판단해 신분을 감췄다. 그러나 국토부 역시 제기한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사에 나서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다.

개인적으로 알아보니 국토부에서 자동차 관련 결함을 조사하는 인력이 10명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더라. 게다가 자료를 요청해도 회사는 15일 안에만 회신하면 되고 이마저도 강제권이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법적인 문제, 인력 등의 한계로 국토부가 의혹을 제대로 파헤치기 어렵다고 생각해 올해 언론사와 미국 NHTSA 등에 제보했다.” ~ 생략 ~ 조선Biz 2016.10.18」
 
인터뷰 기사에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다.

하나는 현대자동차 내부에서 문제해결을 하려는 시도가 먼저 있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내부의 아무개가 이를 묵살하라는 지시를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저 ‘리콜’ 누락문제가 고쳐지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현대자동차그룹 감사실에서 저 고발 내용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왜 그런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흐지부지 되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합리적 의심을 해 볼 수가 있다. 실무적으로는 ‘리콜’ 은폐가 현대자동차에 문제가 됨을 알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보고를 하던 중에 경영층의 누군가가 ‘리콜’에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 등등의 이런 저런 이유로 반대를 하였다. 따라서 저 건은 흐지부지 될 수 밖에 없었다. 반면에 최순실과 고영태 사이가 나빠진 것은 정유라 강아지 때문이라고 청문회에서 고영태가 말하였다. 그러나 저것은 하나의 핑계 거리에 불과할 것이다.
 
한산도 ‘운주당’과 대나무 숲을 비교해본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에 머무는 동안 운주당(運籌當)을 자주 이용했다. 밤 늦게까지 ‘운주당’ 불은 꺼지지 않았다. 출입 문턱이 낮은 까닭이다. 계급에 관계없이 여러 병사가 자주 드나들었다. 장벽을 허문 소통으로 충무공은 학익진(鶴翼陣) 같은 창조적 전략을 만들어 냈다. ~ 중략 ~
현대자동차는 2015년 3월 자사의 공식 블로그를 통해 소통을 시작했다. 소비자의 쓴 소리를 마다치 않겠다며 문을 활짝 열었다. 현대차의 ‘운주당’인 셈이다. 무선통신기기로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점을 감안하면 출입 문턱이 아예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시도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헌데 블로그는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종의 변명을 늘어놓는 창구로 전락한 모양새다. 내부 고발자는 그래서 나왔다. 회사는 외부 목소리에만 집중했는지, 정작 집안 사정에는 밝지 못했다. 참다 못한 내부고발자는 언론 등을 통해 모든 사실을 털어놨다. 이는 현대차의 보증기간 연장이란 보상안을 이끌어냈다.

신라 48대 임금인 경문대왕은 귀가 나귀의 그것처럼 길었다고 한다. 왕은 왕관 속에 귀를 숨겨 그 사실을 남들이 알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왕관을 만드는 복두장만은 예외였다. 평생 비밀을 지키던 복두장은 죽음이 임박하자 도림사(道林寺) 대나무 숲에 가서 대나무를 보고 외쳤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후 바람이 불면 대나무 숲에서 그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고 한다. 내부고발자는 얼마 전 현대차를 떠났지만 그의 목소리는 계속 울려 퍼질 것이다. 언론은 제2, 3의 내부고발자를 위해 대나무 숲이 돼야 한다. 에너지경제 2016.11.21」

한산도의 ‘운주당’과 도림사의 대나무 숲을 이렇게 비교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운주당’은 합리적인 의견제공 및 청취의 장소였다. 반면에 대나무 숲은 불합리한 의사결정의 고충 및 불만을 해소하는 일종의 해소장치였던 것이다.

무엇인가 불합리한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사실을 대나무 숲에라도 가서 말을 해야만 불만이 해소되었던 것이다. 현대자동차에는 과연 한산도의 ‘운주당’이 있었는가 묻고 싶다. 또 ‘리콜’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사람이 결국 당나귀 귀라는 말이 되는 셈인데, 과연 현대자동차에서 저 당나귀 귀는 누구였을까? 하는 궁금함이 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불합리한 의사결정이라면 반드시 누군가는 의혹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여러 가지 말들이 생겨 난다. 더군다나 그 비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마음에만 담아 둘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나무 숲을 찾게 된 것이다.

이번 청문회에서 확인된 점이 우리 사회에 더 많은 ‘운주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형식적인 ‘운주당’을 만들기보다는 진정한 한산도의 ‘운주당’을 만들어서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점도 분명해졌다. 만약에 진정한 ‘운주당’을 운영하면 국가와 기업을 가리지 않고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가능하였던 한산도의 ‘운주당’을 지금 우리사회에서 전혀 찾아 볼 수 없다면 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왜 하필 미국의 NHTSA에 신고 하였을까?

다른 하나는 내부고발자가 국토교통부에 신고를 하고 나서도 국토교통부를 신뢰할 수가 없어서 미국의 NHTSA에 신고를 하였다고 한다. 필자는 저 심정을 100% 이해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필자가 분식회계를 신고 후 금융감독원에서 보낸 ‘감리불가 통보서’를 받았을 때, 정부기관에 대하여 느꼈던 실망 및 분노와 동일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들이 저런 실망감과 분노를 느낄 때 사회정의 또는 기득권 자에 대한 저항을 입에 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분노를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 일까? 그것이 바로 우리 국민의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들이다. 이들이 소신껏 국민을 위하여 일을 한다면 저런 부조리와 비리들을 우리 사회에서 제거할 수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법이 먼저 변경되어야 한다.
 
법이 바뀌면 법원의 판결이 변한다. 그러면 기업의 경영자 사고방식도 그에 따라서 변하게 되어 있다. 만약 자동차관리법을 수정 입법하여 미국과 같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당나귀 귀를 가진 아무개가 함부로 ‘리콜’하지 말라고 지시를 할 수가 있을까?
 
만약 ‘분식회계 및 회계사기범 처벌법’이 입법 시행된 후에도 대우조선해양과 같은 대범한 분식회계 및 회계사기를 저지를 수가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가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한 또 다른 대답은 ‘부정청탁 금지법’ 시행 전과 후를 비교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저 ‘부정청탁 금지법’이 시행된 뒤에 수 많은 그리고 엄청난 변화가 우리 사회에 일어 났다. 그 변화가 모든 부정청탁을 방지할 수는 없겠지만 시행전과 비교할 때 혁신적으로 부정한 청탁이 줄어들었다. 일일이 예를 들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러면 저런 국민을 위한 입법활동이 왜 만족스러울 정도로 추진되지 못하였을까? 이미 ‘회계사기에 대한 잘못된 판단 ①②③④’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업의 이익에 반하는 입법활동에 대하여 재벌기업의 압박과 회유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특히 특정 정당이 기업에 우호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면 더더군다나 저런 입법은 불가능한 것이다.
 
이제 2016년을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려고 한다.

2017년에는 국민들의 안전과 권익향상을 위한 법들과 ‘분식회계 및 회계사기범 처벌법’이 조속하게 제정되고, 이런 법들이 엄정하고도 신속하게 집행되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그래서 한국기업의 윤리경영은 낙제점이라는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영태 분식회계추방연대 대표

2008년 현대자동차 미국 알라바마 공장 CFO, 2012년 현대자동차 재경사업부장, 2015년 현대엔지니어링 재경본부장 등을 지냈다. 2015년 11월에는 대우조선해양을 분식회계 혐의로 신고한 바 있다. 그 후 분식회계추방연대를 결성, 분식회계 근절활동을 추진 중이다. 저서로는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한 10개 기업의 분식회계 여부를 비교분석한 <과연 대우조선해양만 그럴까?>와 현대건설,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한 상세한 분석 및 분식회계와 주가하락으로 인한 피해에 관해 다룬 <분식회계 그 피해자들은 누구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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