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현대중공업>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극심한 수주절벽에 내몰린 한국 조선업이 17년 동안 지켜왔던 조선업 2위 자리를 일본에 넘겨줬다.

4일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기준 한국의 수주잔량(잠정)은 1991만6852CGT로 일본의 수주잔량 2006만4685CGT에 비해 14만CGT 뒤진 것으로 집계됐다. LNG선 1척이 8만CGT 정도이므로 한국과 일본은 수주잔량에 있어서 선박 2척 정도의 격차가 나는 셈이다.

한국의 수주잔량이 2천만CGT선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03년 7월 이후 13년여 만에 처음이다. 조선업이 호황이던 2008년 8월말에는 7000만CGT가 넘는 일감을 보유하며 일본과의 수주잔량 격차가 3160만CGT까지 벌어진 적도 있었다. 2015년 말까지만 해도 한국은 3천만CGT 수준의 일감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2016년 들어 수주잔량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본 역시 2015년 12월말 수주잔량이 2천555만CGT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들어 수주잔량이 계속 줄었지만 한국의 감소폭이 일본보다 훨씬 컸다.

수주잔량의 감소는 비축해둔 일감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지난해와 같은 극심한 수주가뭄이 올해도 이어진다면 국내 조선소들의 독(dock·선박건조대)이 비는 시기가 더 앞당겨질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조선업 구조조정 여파로 퇴직 위기에 몰린 조선업 핵심인력의 유출 문제도 심각하다.

4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구조조정이 시작된 2015년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 핵심 인력(연구개발, 설계, 생산관리) 1만943명 중 10%인 1091명이 퇴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도 조선 3사에서 약 2만여명이 퇴직했으며 이 가운데 정규직원은 45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이미 해외로 떠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기술 유출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재취업 기회를 찾지 못한 퇴직자들의 경우 해외 업체의 구애를 뿌리치기 힘들다”면서 “이미 수백명의 조선업 퇴직자가 일본과 중동 등지의 해외 조선소에 재취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핵심 인재 유출을 방치할 경우 국가 먹거리 밑천을 해외에 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재훈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는 “영국 등 과거 유럽의 조선 강국들이 일본과 한국에 산업 주도권을 내준 뒤에도 설계나 엔지니어링 등 원천기술 인력은 지켜냈다”면서 “조선 경기가 살아났을 때를 대비한다면 핵심 인력들이 국내 연구개발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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