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다. 미스터리 살인사건은 치밀하고 계획적인 공작이다. 지금까지 상상했던 배후는 잊어버려라.” 영화 포스터에나 나올법한 문구지만 현실이다. 이는 지난 2일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 씨의 남편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말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일가 주변에서 발생한 잇따른 의문의 죽음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지난 2011년 9월 6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인근에서 변사체 두 구가 발견됐다. 시신 한 구는 북한산 둘레길 탐방안내센터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 뒷좌석에서 발견됐다. 머리에는 망치로 가격당한 상처가 3군데 발견됐고, 옆구리 등에는 칼에 찔린 상처가 8군데 나왔다. 또 다른 시신 한 구는 주차장에서 3km 떨어진 북한산 용암문 등산로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변사체의 신원 확인 결과 두 구의 시신은 당시 한나라당 유력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표의 5촌 조카인 박용철 씨와 박용수 씨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금전 문제로 인한 ‘계획된 살인사건’으로 결론 냈다. 사건 발생 후 한 달여 만인 10월12일 서울 강북경찰서는 “사촌 형 박용수씨가 사촌 동생 박용철 씨를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며 “피의자가 목숨을 끊어 기소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고 밝혔다.

사건이 발생한 지 5년이 흐른 지금 재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건 배경에 박 대통령 일가의 재산 다툼 정황이 있었다는 사실이 여러 진술을 통해 확인되면서다.

지난달 17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은 “박 대통령 일가가 살인사건에 밀접하게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박용철 씨와 박용수 씨 두 사람 모두 제3자에게 살인됐으며 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측이 제기한 의혹은 신빙성이 있고 구체적이었다.

사건 당시 경찰은 “최근 돈 문제로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나빠졌다”고 했지만 두 사람을 아는 육영재단 관계자 및 가족들은 “두 사람 사이에는 돈 거래가 없었으며 사이도 좋았다”고 반박했다. 유도선수 출신으로 100kg가 넘는 거구의 박용철 씨를 70여kg의 박용수 씨가 제압했다는 것도 의심할 만한 점이다. 박용수 씨를 범인으로 가정한다 해도 △자살을 염두에 둔 사람이 좀 더 싼 임플란트를 하기 위해 알아보고 다닌 점 △살인 후 자살을 생각한 사람이 2시간 이상을 걸어 깊은 산 속에서 자살을 했다는 점 △죽기 직전 설사약을 먹은 점 등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사건 당시 경찰이 발표하지 않았던 사실도 드러났다. 박용철 씨와 박용수 씨의 혈액 및 위 내용물에서 향정신성의약품이 발견된 것이다. 박용철 씨의 몸에서는 독성 농도 이상의 졸피뎀(0.52mg/L)과 소량의 디아제팜(0.25mg/L)이 검출됐다. 박용수 씨의 몸에서도 소량의 졸피뎀(0.01㎎g/L)이 검출됐다. 박용수 씨의 위에서는 설사약도 발견됐다. 졸피뎀은 불면증 등에 사용되는 신경안정제이며, 디아제팜은 불안·긴장, 골격근 경련의 완화, 간질 발작의 치료 보조제 등으로 사용되는 신경안정제다. 이와 관련 범죄 분석 전문가들은 범행 전에 수면유도제나 약을 먹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놨다. 또한 졸피뎀과 디아제팜은 의사 처방전 없이 구할 수 없는 약품인데 박용철 씨와 박용수 씨는 해당 약품에 대한 처방전을 받은 적이 없다.

논란이 확산되자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 국민조사위원회 박주민 의원 등 6인은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 5촌 조카 살인사건’에 대해 특검이 재수사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5촌 조카인 박용수, 박용철 두 사람의 죽음이 누군가에 의해 기획된 것이고,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해 살인과 자살로 연출된 것일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제기됐다”면서 “이 사건의 배경에는 박근혜 일가의 재산 다툼이 있다. 박용철은 당시 육영재단의 소유권을 두고 다투던 박지만 회장과 신동욱 총재 사이에 제기된 재판의 결정적 증거를 가진 증인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바로 이날(지난달 30일) 오후 또 다른 의문의 사망 사건이 발생한다. 박지만 EG 회장의 비서실 직원 주씨가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된 것이다. 서울 수서경찰서에 따르면 주씨 부인은 같은 달 28일 아들과 함께 친정집을 방문하고 이날 집에 돌아왔다가 거실에 쓰러진 주씨를 발견했다. 경찰이 주변 CCTV 등을 확인한 결과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목을 매는 등의 자살 정황도 없었고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유족을 설득해 주씨를 부검한 경찰은 2일 “부검결과 주씨의 사인은 관상동맥 경화로 인한 허혈성심근경색”이라며 “타살 혐의점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혹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신동욱 총재는 ‘심근경색에 의한 급사’라는 경찰 발표에 대해 “저와 관련된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4년 동안 무려 6명이나 세상을 떠났다. 이같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확률적으로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라며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신 총재는 “2011년도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5촌 조카인 박용철 씨와 박용수 씨가 사망했고, 2012년도에는 이춘상 보좌관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박용철 씨의 오른팔이었던 ‘짱구파’ 보스 황선웅도 그해 컵라면을 먹다가 천식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정윤회 씨와 아주 가깝게 지냈던 또 한 분이 있다”고 말했다.

사망한 주씨가 지난 2010년 6월 신동욱 공화당 총재의 재판에 출석해 증언에 참여한 사실도 드러났다. 과거 신 총재는 “육영재단은 박지만 회장에 의해 강탈됐고 그 배후는 박근혜 대통령의 주변사람”이라며 “2007년 7월에는 중국 칭다오에서 나를 납치하려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과 박지만 회장은 명예훼손 및 무고 혐의로 신 총재를 고소했다. 당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주씨는 “박지만 회장이 신 총재를 납치해 감금하도록 사주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고, 신 총재는 2012년 1심 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 실형을 확정받았다.

이와 관련 신 총재는 2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주씨의 발언이 ‘말맞추기’였으며 최근 진실을 밝히려다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신 총재는 “지난해 10월 우연히 주씨를 만난 적이 있다”면서 “대선 전까지는 ‘청와대 문고리 3인방’과 협력관계였지만 대선 뒤 완전 연락이 차단돼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주씨가 뒤늦게 진실을 밝히려 하자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경찰은 부검 뿐 아니라 주씨의 3개월간 통화기록 등도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 5촌 조카 박용철 씨가 살해된 것도 “신동욱의 무죄를 증명할 녹음 파일을 2심 재판에서 제출하겠다”고 진술한 후였다. 증인 출석을 불과 20여일 앞둔 시점이었다. 박용철 씨가 살해당하기 전 언급한 녹음파일이 든 휴대폰은 사건 당시 검찰이 가져갔으나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육영재단 관련 인사는 ‘그것이 알고싶다’ 팀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박지만은 신동욱이 싫어서 혼을 내주고 싶어 한 건 사실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박용철이나 박용수를 제거할 이유는 없었다. 생각해봐라, 그들이 죽어서 가장 이익을 볼 사람이 누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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