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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폭격기, 한국 방공식별구역 침범 ‘무력 시위’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방공식별구역(ADIZ)을 둘러싼 한중일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9일 오전 10시. 중국 해군항공대 소속 군용기 2대가 제주 남방 이어도 인근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했다. 우리 공군은 중국 군용기에 경고통신을 하는 한편 F-15K, KF-16 등 주력 전투기 10여 대를 긴급 발진해 대응에 들어갔다. 우리 군의 경고통신에 KADIZ를 빠져나갔던 중국 군용기는 잠시 뒤 다시 들어온 후 우리 측이 경고 메시지를 보내면 재차 빠져나가는 행동을 반복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날 오후 3시까지 KADIZ에 진입한 중국 군용기는 모두 10대가 넘었다.

일본도 비상이 걸렸다. 중국 군용기 중 H-6 폭격기 6대와 Y-8J 조기경보기 1대, Y-9JB 전자정보 정찰기 1대 등 8대가 대한해협 쪽으로 이동해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을 침범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일본은 F-15J 전투기 12대, F-2 지원 전투기 12대 등 26대의 전투기들을 긴급 발진해 대응에 나섰다. 중국 군용기들은 쓰시마 인근을 지나 동해까지 비행한 뒤 U턴해서 동중국해로 되돌아갔다.

방공식별구역은 자국 영공으로 접근하는 비행물체를 조기에 식별하기 위해 설정한 가상의 선이다. 방공식별구역은 국제법상 영공은 아니지만 이곳에 진입하는 외국 항공기는 관할국의 사전 허가를 받는 것이 관례다.

방공식별구역을 둘러싼 한중일 3국의 갈등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13년 중국이 이어도를 포함한 방공식별구역(CADIZ)를 일방적으로 선포하면서다. 당초 KADIZ는 미국 공군이 6·25전쟁 중인 1951년 설정한 것으로 당시 중공군 및 북한군의 항공작전 능력을 고려해 마라도 남방까지만 포함했고 이어도는 제외됐다. 그런데 1969년 일본이 자국의 방공식별구역(JADIZ)을 설정하면서 이어도 주변 수역까지 포함했다. 여기에 2013년 11월 23일 중국마저 이어도를 포함한 CADIZ를 일방적으로 선포하자 우리도 즉각 KADIZ 재설정에 착수했고, 2013년 12월 8일 이어도 남쪽 236㎞ 상공까지 포함하는 새 KADIZ를 발표했다.

문제는 이어도를 포함한 일부 구역에서 KADIZ와 중국방공식별구역(CADIZ),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이 중첩돼 있다는 점이다. 이에 한국과 일본은 지난 2014년 중첩구역 진입 시 비행정보 교환방법과 미식별 항공기에 대한 전술조치 절차 등에 합의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한·중, 중·일 간에는 사전 통보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아 상대국 군용기의 진입이 확인될 경우 전투기를 출격시켜 경고하는 상황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2월과 8월에도 중국 군용기 2~3대가 KADIZ를 침범한 사례가 있다. 군이 중국 군용기의 KADIZ ‘진입’이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례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폭격기와 해상초계기를 포함 10여 대의 군용기가 대거 침입했고, 우리 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5시간에 가까운 장시간 동안 침범을 반복했다. ‘중국판 B-52(미국의 대표적 전략폭격기)’로 불리는 H-6 폭격기를 6대나 출동시켰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한국과 일본이 각각 10대와 26대의 전투기를 출동시키면서 한때 대한해협 상공에서 50대 안팎의 한·중·일 군용기들이 근접 대치하는 긴박한 상황이 전개됐다.

하지만 군은 사건 발생 11시간이 지난 오후 9시까지 이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이날 오후 8시 30분경 일본 방위성이 관련 사실을 발표하고, 관련 소식을 접한 한국 언론들이 확인에 들어가자 군은 그제야 사실을 공개했다.

중국 군용기의 침범을 알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 10일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KADIZ에 진입한 미식별 항공기에 대응한 출격은 군사작전의 일부”라며 “관련 사실을 공개할 경우 우리 군의 탐지·감시 능력과 작전 운용 전술을 노출할 우려가 있다. 다른 나라도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어도 부근 상공은 한·중·일의 방공식별구역이 겹치는 지역”이라며 “중국 군용기들이 이 지역에 진입하는 일은 매년 수십 차례에 이르지만 한 번도 군에서 먼저 공개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대규모의 군용기를 동원해 한국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에 침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은 10일 한·일 방공식별구역 침범 관련 핫라인을 통한 우리 국방부의 문의에 대해 “자체 훈련일 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규모로 봤을 때 남중국해 문제와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 등으로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미국과 일본에 대한 무력시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와 관련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일본에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면서 “특히 사드 주한 미군 배치가 예정대로 진행되는 데 대한 불만 표출일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은 방공식별구역 문제도 ‘한·미·일 대(對) 중국’ 구도로 본다”면서 “중국이 한국과 미국, 일본에 동시다발적인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군사 전문가들 역시 “중국이 힘으로 현상을 변경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진단했다.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행사를 위해 전략폭격기를 동원한 무력시위 전략을 자주 구사한 대표적인 나라는 냉전시대의 소련이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무력시위 전략은 2000년대 중후반 푸틴 대통령의 지시로 재개했다. 지난 2008년 2월 9일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러시아는 Tu-95 전략폭격기 2대를 일본 홋카이도 동북쪽 JADIZ에 진입시켰다. 핵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이 폭격기들은 도쿄에서 남쪽으로 650㎞쯤 떨어진 이즈 제도 인근까지 접근했다. 이에 일본은 F-15J 전투기 22대와 공중경보통제기 2대를 긴급 투입해 대응에 나선 바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노골적으로 KADIZ와 JADIZ 무력화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지만 이는 역으로 CADIZ 또한 부정당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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