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디그니타스>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인간은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이 존재한다. 자기 결정권의 범위에는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포함된다. 하지만 많은 국가들은 이러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하고 있다. 이것은 엄연히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기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안락사를 주선하는 스위스 비영리기관 ‘디그니타스(Dignitas)’ 관계자의 말이다.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13일 의학정보채널 ‘비온뒤’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금까지 전세계 96개국에서 7,764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디그니타스에 안락사를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별로는 독일이 3,223명으로 가장 많았고 영국 1,139명, 프랑스 730명, 스위스 684명, 미국 453명, 이탈리아 392명 등의 순서를 보였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18명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고 일본(17명), 태국(10명), 중국(7명) 등이 뒤를 이었다.

디그니타스는 안락사를 주선하는 스위스 비영리기관이다. 디그니타스는 의사 등 타인이 독극물을 주입하는 ‘적극적 안락사’ 방식이 아닌, 의료진으로부터 약물을 처방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조력자살 방식’으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의 안락사를 돕고 있다. 말기 암 등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자발적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스위스에선 이러한 디그니타스의 활동이 합법적이며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돕기 위한 인도적 차원의 봉사로 이해되며 외국인에게도 허용된다.

이와 관련해 디그니타스 관계자는 ‘비온뒤’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인간의 기본권을 보호하는데 힘쓰고 있다. 우리가 제공하는 것은 정확한 용어로 말하면 ‘조력자살’이다. 조력자살은 완전한 판단력을 가지고 자신의 생을 끝내기를 원하는 개인이 치명적인 약(또는 다른 방법)을 스스로 투여 하는 것이다. 하지만 디그니타스에서 안락사를 할 수 있드는 것은 오해다. 스위스에서는 적극적 안락사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안락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또한 디그니타스는 클리닉이나 병원이 아닌 ‘자기 결정과 존엄성을 옹호하는 비영리 단체’이기 때문에 의사와 간호사가 없고, 치료나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시설도 없다. 대부분의 과정은 개인 주택 및 아파트에서 이뤄진다.”

디그니타스 관계자에 따르면 디그니타스는 회원제로 운영되며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신체적 상태와 그로 인한 영향 △현재의 가족 상황과 개인적 배경 등을 명확히 적은 서신을 보내야한다. 이후 의학적 보고서를 제출해 평가를 받으며 스위스에서 허가 받은 의사에 의해 치사약을 처방 받게 된다. 자살의 전 과정은 모두 비디오로 촬영되며 비용은 장례식 포함 1,000~1,400만원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비용이 획일적인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자신들의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도록 회원의 경제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가격을 제시한다.

한편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지난 2002년 말기 암 등의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 의사가 독극물을 주입해 사망을 유도하는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전 국민의 4%가 이같은 방식의 안락사로 생명을 마감한다.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는 나이가 많이 들어 의식과 활동이 쇠약해지고 고독 등 고통에 시달릴 경우에도 안락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는 네덜란드를 비롯해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콜롬비아, 캐나다 등 6개국이다. 미국의 경우 오레곤과 워싱턴, 몬태나, 버몬트,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6개 주가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지난 2015년 안락사 허용 법안이 의회에 상정됐으나 부결됐다. 영국에서 안락사 허용 법안이 부결된 것은 지난 1997년 이래 세 번째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적극적 안락사뿐만 아니라 조력자살, 소극적 안락사 등 모든 형태의 안락사가 불법이다. 따라서 스위스 디그니타스를 통한 안락사 신청자는 우리나라 실정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 다만 연명치료의 중단이라는 소극적 의미의 안락사(존엄사)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2018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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