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영태 분식회계추방연대 대표>

한국경제는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여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다섯 번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덕분에 1인당 국민소득이 1960년 80달러에서 1988년 4,653달러, 국민총생산이 20억달러에서 1,972억달러 시대로 눈부신 성장을 하였다. 이 과정을 산업화라고 말한다. 이 기간에 지금의 중후장대 기간산업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저임금과 계획경제의 효과로 매년 8% 이상의 고도성장을 하였다. 지금의 중국 모습을 보면 저 고도성장을 잘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변화에 의하여 1994년 경제개발 계획체재를 종료하고 경제기획원을 해체하여 재무부에 귀속시켰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한 자본주의 국가이자 자유시장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것은 목욕비를 목욕탕 주인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 국가의 계획경제 체재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운영하는 경제정책 이었다.

자유시장경제 초기 즉 1994년부터 1996년까지 한국경제는 호황이었다. 모든 것이 좋은 상태라는 경제 부총리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국가경제뿐만 아니라 기업도 높은 수준의 성장을 이어 나갔고 해외여행의 자유화로 너도 나도 해외여행을 나가던 시절이었다. 달러대비 원화환율은 1995년 774원 1996년 844원대 이었다. 해외여행하기에 더 할 수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달러대비 환율 800원대에서 수출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업은 한국에서 몇몇 기업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4년 국민소득 10,000불 시대니 1996년 OECD가입 국가니 하면서 샴페인을 정부가 먼저 터뜨렸다. 거기에 도취되어 억지로 800원대 환율유지를 위하여 외화를 남용하는 무모한 경제정책의 오류를 범하였고, 이를 지적할만한 민간연구소나 기업이나 언론조차도 전혀 없었다. 결국 1997년 12월 외환관련 하여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큰 소리치던 경제부총리가 IMF지원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200만불도 안되었고, 종합주가 지수는 279로 역사상 최저치를 기록하였다. 한국경제가 무너지던 순간이었다.

IMF지원체재에서 한국 기업과 국민들은 혹독한 시절을 맞이하였다. 환율과 금리가 급격하게 폭등하고 부동산가치는 급격하게 폭락하였다. 은행BIS 기준과 기업의 부채비율이 중요한 건전성 판단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주주에 관한 여러 가지 정책이 추가되었다.

그 후 IMF체재를 벗어나서 지금까지 주주가치 존중시대를 살아왔다. 2015년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은 27,000달러 시대가 되었고 국민총소득은 1조 3,775억달러가 되었다. 1988년 대비하면 1인당 국민소득은 5.8배 늘었고 국민총소득은 6.9배 증가 하였다. 그러면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감도 5.8배 또는 6.9배가 좋아지지는 않아도 최소한 2~3배는 좋아졌어야 한다. 그런데 소득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더 커졌고 생활에 대한 만족도도 나빠졌다고 한다.

아니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아마도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한 집에 몇 집이 함께 전세 사는 다 세대 생활이 보편적인 그 시절에도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며 행복했던 사람들 비율이 지금보다 더 높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과거를 아름답게만 보는 현상이다. 아니면 지나치게 그 때를 미화해서 그렇다고 매도할 일은 아닌 것 같다. 1988년 올림픽 이후 모든 면에서 국민들이 나름대로 자부심과 행복한 감정을 가진 이유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1988년 대비하면 지금은 국민소득뿐만 아니라 경제규모도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회 양극화니 소득 불평등이 더 나빠졌다는 이야기를 할까? 이에 대한 재벌 옹호론자 신장섭교수의 논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IMF체재 이전에 재벌이 한국경제를 융성 시켰고 분배도 꽤 적정하였다. 그런데 IMF에서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잘못된 정책을 시행함으로 인하여 경제성장의 동력이 상실되었고 소득분배의 왜곡도 시작된 것이다. 이 실패한 정책이 미국식 경제민주화다. 실패한 정책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다. 한국은 계속해서 재벌위주 정책으로 가야만 한다.’ 이 말이 맞는가 아닌가를 하나 하나 짚어보기로 하자.

 

① 재벌독재 시대도 아닌데 무슨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가?

- 이것은 거의 ‘아재개그’ 수준의 논리다. 왜냐하면 자유 시장경제에서 가장 나쁘게 생각되는 것이 시장에 대한 독점과 과점에 의한 지배권 남용과 계열사간 부당지원 행위이다. 이것을 경제에서는 독재라고 보는 것이다. 자유 시장경제의 원리는 공정한 경쟁이다. 이것을 깨뜨리는 것이 독점이고 담합이고 부당지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선진국에서는 이에 대하여 굉장히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한국에서 재벌들의 독과점에 의한 지배권 남용과 부당지원과 담합에 의한 소비자권리 침해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이다.

더구나 재벌기업에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법안을 철저하게 차단하여 소비자나 국민을 위한 입법이나 사법처리 조차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재벌이다. 손쉬운 사례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하여 죽거나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겨우 올해 들어서 검찰이 조사를 시작하였다. 1심판결은 7년이라고 한다. 항소하면 또 형량이 낮아질 것이다. 보상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것이 정당하다고 신교수는 생각하는가를 묻고 싶다.

② 재벌의 방만한 경영이 IMF외환위기의 원인이 아니었다.

- 물론 정부의 외환관리 정책에 중대한 오류가 있었기 때문에 재벌의 방만한 경영만으로 IMF외환위기를 초래한 것은 아니다. 허지만 재벌기업이 무리한 차입에 의존하여 부동산 투자와 부실경영으로 대외여건 변화에 취약하고 허약한 기업을 만든 책임은 막대한 것이었다. 수많은 은행이 파산하고 타 은행에 합병 당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IMF 때 부실기업에 대한 무리한 대출로 인해서 은행까지 문을 닫게 된 것이었다. 물론 은행은 신용대출보다는 담보대출 위주로 자금을 빌려주었다. 그래서 안전하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었다. 그러나 IMF가 발생하자 담보 자산가치가 30% ~ 50% 수준까지 추락하였고, 이것은 은행들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은행이 저렇게 문 닫은 것을 가지고 은행 탓이라고만 할 것인가?

경제정책에 무지한 정부와 방만한 재벌경영과 금융기관의 부실한 대출제도의 무리한 확대로 빚어진 경제적인 대참사였다. 그런데 신교수는 이렇게 주장한다.

「그때 한국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제일 크게 이야기했던 것이 ‘지나치게 차입 위주의 경영이라서 과잉 투자를 했다’, ‘그래서 금융 시스템이 위험해지고 위기가 왔다’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지나고 나서 보면 제 생각에는 한국은 과잉투자가 아니었거든요. 신흥시장이 21세기에 클 것을 바라보고 한 투자였어요. 한보철강도 중국 시장에 수출하려고 공장을 세웠던 건데, 실제로 2000년대에 중국이 전 세계 철강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버렸잖아요. 그러면 과잉투자가 아니라는 이야기죠. 선 투자를 한 것이었는데 그때 유동성의 문제가 생겼을 뿐이죠. 그러니까 구조조정을 할 필요가 별로 없었던 거예요. 유동성 문제만 해결해 주면 되는 거였죠. - 신장섭교수 인터뷰 내용 중 일부」

참으로 안이한 발상이다. 1997년 1월 한보철강 부도사태로 한국경제 전체가 흔들렸다. 그리고 3월 삼미그룹 부도, 4월 진도그룹 부도, 5월 삼립식품부도와 미도파 모기업 대농그룹 부도와 한신공영 부도, 7월 기아자동차 사실상 부도, 11월 해태제과 부도와 뉴코아 부도, 12월 한라그룹 부도와 청구그룹 부도 등이 이어졌다.

얼마 뒤에 외환위기 사태가 벌어졌는데 한가하게 선 투자를 함부로 말하는가? 더구나 1997년부터 2007년까지는 11년이다. 기업은 1~2년안에도 파산할 수도 있다. 그런데 11년을 선 투자 한다는 말인가? 물론 한보철강이 자기자본으로 신교수의 주장대로 선 투자를 하였다면 그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한보철강의 1995년말 자기자본 비율이 12% 그리고 1997년에는 1%이었다. 결국 99%의 은행 돈으로 한보철강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무엇을 어떻게 은행이 더 퍼 줄 수가 있단 말인가? 정말 너무나도 무책임한 말이다. 다음 신문기사를 한 번이라도 읽어보면 과연 저런 말을 함부로 할 수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죽을 때까지 젖 먹는 기업 - 재무구조 개선, 자생력 길러야

“우리나라 기업은 갓 태어나서 청장년을 지나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젖을 먹습니다. 성장단계에 알맞은 자본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끊임없이 차입을 늘려나간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기업들은 경기 상승 시에는 괜찮은데 경기 하강기에는 재무구조가 나빠 아우성을 치게 됩니다” 고려대학교 池淸교수는 차입위주의 자본구조와 성장전략을 갖고 있는 우리기업들의 현실을 이같이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기업들의 금융행태와 재무구조를 보면 얼마나 경쟁력이 취약한지 여실히 드러난다. 국내기업의 자기자본비율은 지난 95년말현재 평균 25.9%로 지난 90년말과 거의 변함이 없다. 특히 30대 재벌그룹의 자기자본비율은 지난 90년의 22.0%에서 95년말에는 20.5%로 떨어졌다. 1억원을 투자하면서 자기자금은 2천만원 정도만 대고 나머지는 은행차입이나 私債에 의존한 셈이다. 이들 재벌기업은 낮은 자기자본비율에도 불구하고 계열기업간 상호채무보증 등을 통해 차입을 늘려나가면서 재무구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올 들어 경제적 타격은 물론 金泳三정권을 흔들어 놓은 한보철강의 재무구조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부도가 나기 직전인 지난 1월10일 현재 금융기관의 총여신은 4조9천5백49억원이었으나 자기자본은 2천2백43억원에 불과했다. 이 회사는 투자소요자금의 88%를 타인자본에 의존하면서 지난 95년말현재 자기자본비율은 12%에 그쳤으며 지난 1월 부도직전에는 1% 수준까지 낮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직후 부도가 난 삼미그룹의 재무구조는 더욱 취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삼미그룹은 지난 95년말현재 자기자본비율이 2.9%에 그쳤으며 부도직전 삼미그룹의 자기자본비율은 1∼2%에 불과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기업들은 차입능력이 한계에 달했음에도 정치권의 유력인사들을 통한 로비로 수 조원의 투자자금을 조달했으며 은행들은 기업의 신용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만한 대출을 지속해온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취약한 재무구조와 이에 따른 높은 금융비용부담은 불황기에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 95년말현재 우리기업의 자기자본비율 25.9%는 일본의 32.6%, 미국의 37.5%, 대만의 53.4%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처럼 부족한 자본을 은행차입금 등으로 충당함에 따라 기업의 금융비용부담이 커져 경쟁력은 그만큼 뒤떨어지고 있다. 지난 95년중 우리나라 제조업의 금융비용은 매출액의 5.6%로 일본의 1.6%, 대만의 1.7%, 독일의 1.1%(91년)보다 최고 5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금융비용부담률이 높은 것은 차입금의존도와 차입금리가 높기 때문이다. 금융비용부담이 크다 보니 영업이익은 경쟁국에 비해 많은 편이나 금융비용부담을 제외한 경상이익은 경쟁국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금융비용이라는 족쇄에 묶여 열심히 벌어봤자 영업실적은 속 빈 강정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 같은 차입위주의 경영행태는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경제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기업이 파산하면 금융기관의 부실화를 초래하는 등 값비싼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만들고 있으며 편중여신과 경제력집중이라는 폐해를 낳고 있다.

우리기업들이 차입위주의 기업경영을 하게 된 것은 경제성장율이 실질금리(대출금리 – 물가상승률)보다 높다는 점과 계열중심의 기업확장정책과 계열기업간 상호채무보증의 활용, 차입경영에 대한 금융기관의 감시기능 취약 등도 차입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계열기업에 소속된 기업들은 금융기관에서 차입을 할 때 상호채무보증이라는 편리한 보증수단을 활용해왔으며 이는 한계기업의 퇴출을 제한하고 불공정한 경쟁구조를 형성하는 등의 부작용을 초래해왔다. 금융기관들도 재무구조가 불건전한 기업에 대해서는 자금제공을 거부하거나 높은 차입금리를 부과해야 하지만 은행들은 신용평가능력 부족과 관치금융의 타성에 젖어 부실기업에도 우량기업과 비슷한 조건으로 돈을 빌려줬다.

이 같은 차입위주의 경영행태를 개선하기 위한 처방은 매우 다양하지만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미온적인 반응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생략~

연합뉴스 1997.3.27」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재벌기업이 잘해서 1인당 국민소득이 1960년 80달러에서1988년에 4,653달러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도 1994년에 10,000달러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1997년에 재벌기업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는데 정부만 잘못해서 수 많은 기업들이 부도가 났고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가 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1962년부터 1993년까지는 국가가 주도하는 계획경제 체재였으며 1994년부터는 자유시장경제 체재였다. 따라서 국가주도형 계획경제의 공과는 국가로 귀속되어야 하고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의 기업 부도는 기업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민정부가 원화강세라는 무리한 환율정책을 펼쳤고 그로 인하여 기업부도가 심화된 것은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자유시장경제 전환 후에도 무리한 차입경영으로 인하여 수 많은 재벌기업들이 1997년에 부도를 낸 것은 우리 사회에 크나큰 잘못을 한 것이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옹호론자인 신교수는 ‘한보철강 선투자’라는 허황된 논리로 이 점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번에는 ‘③노동시장 유연화, 그거 재벌이 한 거 아니거든요?’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노동시장 유연화 = 비정규직 제도). 그리고 소득불평등과 취업 곤란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양극화의 진짜 원인도 함께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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