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유럽연합(EU) 단일시장 접근권과 관세동맹을 포기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선언했다.

17일(현지시간) 테리사 메이 총리는 런던 랭커스터 하우스에서 행한 ‘브렉시트(Brexit) 계획과 비전’이라는 연설에서 “영국은 EU 단일시장 회원국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EU 회원국이 아니면서 단일시장 회원국이 된다는 것은 투표권 없이 EU 법규들에 구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부분적인 EU 회원 자격, 준회원국 등 반쪽은 머물고 반쪽은 떠나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노동·상품·서비스 이동의 자유를 허용해 EU 단일시장 접근권을 유지하는 유럽경제지역(EEA) 모델(소프트 브렉시트) 가능성을 일축하고, 대신 EU를 완전히 탈퇴하겠다는 ‘하드 브렉시트’를 선언한 것이다.

EU 단일시장 접근권을 포기함에 따라 영국은 앞으로 EU 회원국과 별도의 무역협정을 새로 체결해야 한다. 이와 관련 메이 총리는 “영국에 불리한 협정을 체결하기보다 EU를 떠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며 “탈퇴 후 EU 회원국과 포괄적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등 새로운 파트너십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영국이 EU로부터 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율을 낮추는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메이 총리는 “△확실성과 명료함 △더욱 강한 영국 △더욱 공정한 영국 △진정한 글로벌 영국 등 4가지 원칙에 기반해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을 이끌겠다”면서 12가지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메이 총리가 제시한 브렉시트 협상 목표는 △유럽공동체법의 폐지 △브렉시트 합의안 영국 의회 표결 △유럽사법재판소로부터의 독립 △영연방 내 4개국 연합 강화 △국경 및 이민자 통제 △영국에 거주하는 EU회원국민과 EU에 거주하는 영국인의 권리 보장 △각 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 권리 유지 △EU 단일시장과 관세 동맹 탈퇴 △EU 외 글로벌 국가들과 FTA 체결 △EU 및 전세계에서 발생하는 테러에 강경 대응 △2년 내 브렉시트 협상 마무리 등이다.

메이 총리의 발표로 유럽 증시는 폭락했다. 17일 영국 런던 증시 FTSE 100 지수는 전일 대비 1.46% 내려간 7220.38로 거래를 종료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 30 지수 역시 전장 대비 0.13% 하락한 1만1540로 거래를 종료했고,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 40 지수도 0.46% 내려간 4859.69를 기록했다. 범 유럽 지수인 유로 STOXX 600 지수는 362.42로 전날 대비 0.15% 하락했다.

영국의 하드 브렉시트가 가져올 파장에 대해서는 경제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권희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브렉시트 영향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FTA 체결, 법인세 감면 등을 통한 투자 유치, 견고한 소비시장 등을 고려할 때 영국 경제가 심각하게 침체되는 일을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2%로 브렉시트 투표 전인 1분기(2%), 2분기(2.2%)에 이어 호조세를 이어왔다. 이는 같은 기간 유로존(1.6%)에 비해 더 높은 수치다. 특히 3분기 성장률 2.2% 중 1.6%가 가계소비에서 나왔을 만큼 영국의 소비시장은 탄탄해 영국 경제를 받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나타나는 브렉시트의 부정적 영향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우선 영국이 수출하는 물량의 44%가 대 EU인만큼 EU 탈퇴에 따른 무역 감소는 불가피하다.

영국의 EU시장 접근성이 떨어짐에 따라 EU 금융거래 주도권 위축, 글로벌 기업의 사무소 이전과 이에 따른 부동산 가격 하락 등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같은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18일 영국 최대 은행인 HSBC는 “매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투자은행(IB)업무 일부를 런던에서 프랑스 파리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계 금융사인 모건스탠리와 씨티그룹도 유럽 대륙 쪽으로 유럽 본사를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가격도 아직까지 큰 변동성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불확실성 증가에 따라 거래량이 감소하는 등 장기적으로는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부동산업체 라이트무브가 16일 발표한 1월 영국부동산 평균 호가는 전년 동기 대비 3.2% 상승했지만 매물은 14% 감소했다.

NH투자증권 신환종 연구원은 “하드 브렉시트 선언 연설 이후 탈퇴 방법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파운드 가치가 급등했다”면서도 “하지만 브렉시트를 둘러싼 향후 진행과정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로 남아 있어 영국 경제의 불확실성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하나금융투자 손은정 연구원은 “무디스는 종전에 영국이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에서 EU 단일시장 접근권을 상실할 경우 영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면서 “영국이 유럽지역에 대한 수출비중이 높은 만큼 관세부담이 증가하게 될 경우 영국 기업들의 수익성 저하는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