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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한국인 사업가 납치·살해 사건으로 사퇴 압박을 받아 온 로널드 델라로사 필리핀 경찰청장을 유임시키기로 했다.

23일 ABS-CBN 방송 등 현지 언론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지난 주말 델라로사 경찰청장의 사의를 반려했다”고 보도했다.

델라로사 경찰청장은 지난해 10월 필리핀 전·현직 경찰관들이 한국인 사업가 지 모씨를 납치해 살해한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21일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혔다. 하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은 “안 된다. 계속 일을 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같은 날 필리핀 경찰청 본부에서 열린 델라로사 경찰청장의 55세 생일잔치에도 참석해 “델라로사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면서 “그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현재 직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필리핀 검찰은 마약 관련 혐의를 핑계로 한국인 사업가를 경찰청 본부로 끌고 가 살해한 뒤 가족들에게서 500만 페소(1억2천여만 원)의 몸값을 뜯어낸 혐의로 현직 경찰관 2명 등 7명을 납치와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주모자로 지목된 경찰관은 상관인 마약단속팀장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며 경찰청 고위 간부들이 이 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필리핀 법무부 소속 국가수사국(NBI)은 경찰청 간부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에르네스토 아벨라 필리핀 대통령궁 대변인은 22일 “필리핀 경찰에 의한 한국인 사업가 납치·살해 사건과 관련해 축소나 은폐는 없을 것”이라면서 “사건을 끝까지 파헤치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6월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이후 필리핀 정부가 마약 단속 시 경찰관에게 즉결처분을 허용하면서 현지 언론을 비롯한 곳곳에서 인권침해 논란이 일었다. 특히 부패 경찰관들이 용의자 즉결처분권을 무고한 시민의 목숨과 재산을 빼앗는데 악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실제로 즉결처분 허용 이후 현재까지 약 7천 명의 마약 용의자가 경찰이나 자경단에 의해 사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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