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월스트리 증권거래소의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금융 규제 완화 행보에 나섰다. 세계 금융의 중심인 미국에서 규제가 허물어지면 긴밀하게 엮여 있는 다른 주요국 금융규제의 틀도 흔들릴 수 있는 만큼 향후 규제개혁의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6일 뉴욕타임스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시간) ‘도드-프랭크 법’(Dodd-Frank Act)의 타당성을 검토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명령에 따라 미 재무부와 금융 당국은 120일 안에 도드-프랭크 법을 개정할 방안을 제출해야 한다.

도드-프랭크 법은 오바마 행정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된 월가의 개혁을 위해 2010년 7월 도입했다. 이 법은 대형 은행의 자본 확충 및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비은행 금융기관’(SIFI)에 대한 연방준비제도(Fed)의 정기적 스트레스 테스트를 의무화했다. 또 법의 사각 지대에 있던 장외 파생상품 거래와 사모펀드, 헤지펀드, 신용평가사에 대한 규제·감독 조항을 두는 등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강력한 금융 개혁 법안으로 평가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금융 규제 완화 조치에 대해서는 예견된 일이라는 평가가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도드-프랭크 법은 재앙”이라며 “이 법이 금융사들의 사업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트럼프의 대통령직 인수위 역시 트럼프와 오바마 대통령 회동 직후 홈페이지를 통해 “도드-프랭크 법안을 폐기하고 새 법률로 대체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도드-프랭크법을 어떤 방식으로 개정할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은행들의 투자와 대출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금융규제를 완화하게 될 것”이라는 게 현지 언론들의 일관된 분석이다.

이같은 소식에 시장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 3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86.55포인트(0.94%) 오른 2만71.46에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16.57포인트(0.73%) 상승한 2297.42에 거래를 마쳤다. 나스닥 지수도 30.57포인트(0.54%) 뛴 5666.77에 장을 마쳤다. 금융업종은 장중 2%까지 급등했다. 특히 모건 스탠리는 장중 5%, 골드만삭스는 4%를 넘는 급등세를 보였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금융규제 완화로 미국 주요 대형은행에서 시장에 풀릴 수 있는 자금이 1000억달러(약 113조7200억원)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 골드만삭스, JP모간, 씨티그룹 등 6대 은행이 규제 당국의 요구로 마련해둔 완충자본만 1015억 달러를 넘는다. 18대 은행으로 범위를 넓힐 경우 1200억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금융기관에 대한 과감한 규제완화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도드-프랭크 법 무효화를 위해서는 상원과 하원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다 민주당과 시민단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탐욕과 무분별한 생각으로 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 월가 은행가와 로비스트들은 샴페인 잔을 부딪치고 있을지 모르지만 미 국민은 2008년 금융위기를 잊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시민단체 ‘금융개혁을 위한 미국인들’(AFR) 대표 리사 도너는 “트럼프 행정부는 월가 거물인 골드만삭스에 유리하게 금융규제를 뒤집을 게 확실하다”면서 “웰스파고 같은 대형 은행은 고객 돈을 쉽게 훔칠 것이고 경제는 불안정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도드-프랭크 법이 만들어지고 이행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것처럼 개정안도 이행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특히 장외파생상품 등에 대해서는 G20 공동합의안에 의해 글로벌 규제가 시행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규제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