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월요신문 김혜선 기자] “○○○씨 휴대폰 맞으십니까? 서울중앙지검 수사과에서 전화드렸습니다.”

지난해 12월 20대 여성 A씨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고압적인 목소리의 남성이었다. 자신을 ‘김현우 수사관’으로 소개한 이 남자는 A씨의 명의로 대포통장이 개설돼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져 어떻게 된 경위냐고 묻자, “수사를 위해 통화 내용을 녹음해야 한다”며 “주변이 시끄러우니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라”고 요구했다. 보이스 피싱이었다.

16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보이스피싱 피해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금융 피해규모는 1919억원이었다. 여러 가지 피싱 수법이 알려지면서 피해액은 전년 대비 21.5%가 감소했지만, 정부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10건 중 4건이 2~3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사기였다. 사회경험이 적고, 급박한 상황을 연출하는 고압적인 태도에 심리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 주요 표적이 되고 있는 것. 검찰, 경찰, 우체국 등 정부기관을 사칭하는 수법은 피해건수는 8643건, 금액은 579억원으로 전년(2만890건, 1399억원)에 비해 각각 58.6%, 58.7% 줄었지만, 피해건수 중 38%(3214건)는 20·30대 여성이었다

가장 빈번한 피싱 수법으로는 ‘대출빙자형’이었다. 경기 위축으로 서민들의 대출 수요가 증가했고, 사기 수법의 정교화․지능화로 실제 대출광고와 구별하기 어려워 피해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출빙자형은 전체 피해금액의 69.8%를 차지해 전년도(42.7%)보다 27.1%포인트 증가했고, 대출 수요가 많은 40·50대가 피해자의 절반 이상(58.6%)이었다.

금감원은 “검찰·경찰·금감원 등 정부기관을 사칭하는 수법에 대한 홍보 강화로 국민들의 대처능력이 강화되자, 금융회사의 대출 광고전화로 가장해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을 대상으로 돈을 편취하는 대출빙자형으로 전환됐다”며 “대출빙자형의 경우, 경기 위축에 따른 서민들의 대출 수요 증가 및 사기 수법의 정교화·지능화로 실제 대출광고와 구별하기 어려워 피해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보이스피싱에 이용돼 지급 정지된 대포통장의 경우 1년 이상 썼던 정상계좌가 전체의 68.4%로 가장 많았다. 반면 개설 5일 이내인 신규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쓰인 경우는 4.2%로 전년 11.4%에서 감소했다. 금감원은 “신규계좌 발급이 어려워지면서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기존 사용계좌를 대포통장으로 매매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햇살론 등 정부지원자금을 사칭하는 대출빙자형 보이스피싱 예방 활동 및 성별 및 연령별 맞춤형 홍보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서민금융진흥원 및 서민금융기관과 협업을 통해 전방위적 예방홍보 활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