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수난시대다. 태극기를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일부 보수단체의 시위 양상은 최순실게이트가 낳은 진풍경 중 하나다. 태극기 불태워지고 짓밟히는 작금의 현실 앞에 광복회마저 비판 성명을 낼 정도다.

태극기 집회가 난무하다보니 불상사도 벌어진다. 최근 충북 청주에서 발생한 태극기 훼손 사건은 대표적인 예다. 백주에 태극기를 불태운 이는 20대 A씨다. A씨는 지난 26일 오후 2시께 청주시 상당구 상당공원에서 열린 ‘탄핵 기각 충북 태극기 집회’에서 땅에 떨어져 있는 태극기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여 태웠다.

A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태극기는 탄핵 반대 집회에서 사용하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용도에 맞지 않게 태극기를 사용해 화가 났을 뿐 국가를 모독할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일단 A씨를 귀가시켰으나 국기모독죄 적용을 놓고 고심 중이다.

국기모독죄와 국가모독죄는 다르다. 국가모독죄는 대한민국 국민이 국가나 국가기관을 모욕·비방하거나 허위 사실을 퍼트릴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는 법률로, 유신체제 당시 만들어졌다가 1988년 삭제됐다.

국기 모독죄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정치적 의사 표현으로 간주하며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형법 제105조에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요컨대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으며 고의로 모욕할 목적이 아니면 처벌할 수 없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태극기를 오려 옷으로 만들어 입었던 사람들이나 집회를 마친 뒤 태극기를 구겨 쓰레기통에 버린 시위 참가자들이 처벌을 받지 않는 이유도 ‘목적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기 모독죄는 1953년 만들어졌으며, 1959년 3 · 1절에 찢어진 국기를 굴뚝에 게양한 시민에게 처음으로 적용되었다. 2015년 4월 세월호 참사 1주년 추모 행사에서 한 20대 젊은이가 종이 태극기를 불태운 사실이 드러나 ‘국기 모독죄’ 논란이 일었다. 경찰은 국기를 훼손한 김모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이승규 영장 전담판사는 “김 씨가 집회 현장에서 팔에 스스로 상처를 내는 등 매우 흥분된 상태에서 우발적, 충동적으로 국기 소훼(불에 태움) 행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면서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번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경찰이 국가를 모독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A씨를 처벌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단 국기모독죄 대신 경범죄로 처벌할 가능성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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