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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이후 법인카드로 결제한 백화점 상품권 매출액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기업이 법인카드를 접대비 결제에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게 된 만큼 액면가의 95% 이상을 현금화할 수 있고, 누가 어떻게 쓰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품권 이용이 늘어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28일 여신금융협회와 카드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0∼12월 법인카드로 백화점 상품권을 결제한 금액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0.5%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개인 신용카드로 결제한 백화점 상품권 구매액이 1.5% 늘어나는데 그친 것을 감안하면 증가 폭이 눈에 띄게 크다.

연말·연초를 맞은 선물 수요 등을 고려한다 해도 지난해 4분기 법인카드로 결제한 백화점 상품권 매출은 눈에 띈다. 청탁금지법 시행(2016년 9월 28일) 이전인 지난해 3분기에는 추석 연휴(9월 14∼18일)가 끼어 있고 청탁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있었는데도 백화점 상품권 법인카드 매출액은 7.3%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기업의 백화점 상품권 구매는 올해 들어서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올해 설 연휴에는 백화점의 선물세트 매출액이 줄어든 가운데 상품권 매출액만 증가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지난해 12월 26일부터 올해 1월 23일까지 상품권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3.3%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자세한 수치를 밝히지 않았으나, 설을 전후로 상품권 매출이 각각 두 자릿수와 한 자릿수대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백화점의 올해 설 선물 매출은 작년과 비교해 최대 10% 감소했다. 백화점들이 청탁금지법 시행에 맞춰 5만원 이하의 선물세트를 대폭 늘렸지만, 정육·과일·수산물 등 가격이 높은 전통 인기 품목 매출이 급감한 영향이다.

기업의 백화점 상품권 구매 증가가가 청탁금지법 시행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연관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일반 선물세트와 달리 상품권은 사용한 사람은 물론 사용처를 확인하기 어려워 일종의 ‘꼬리표 없는 돈’으로 불린다. 백화점 상품권은 백화점뿐 아니라 호텔, 레스토랑, 리조트 등 계열사와 제휴 업체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서 기업 입장에선 상품권으로 접대비 지불이 가능하다. 특히 고액 상품권은 리베이트, 기업 비자금 조성, 뇌물 등 불투명한 자금 거래에 쓰일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따라 청탁금지법 시행을 계기로 상품권법을 다시 제정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과거에는 정부의 인가를 받아야만 상품권 발행이 가능했지만 1999년 상품권법이 폐지되면서 현재는 인지세를 제외하면 금융당국의 감독은 사실상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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