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스타트업랭킹>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혁신에 기반을 둔 경제 활성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창업과 기업가 정신의 부활을 강조하고 있다. 저성장·저고용·저소비로 대표되는 ‘뉴노멀’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혁신밖에 답이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창업활성화를 통해 경제 회복과 일자리 창출의 돌파구를 열어 나가겠다고 선언한 한국 역시 이같은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창업은 ‘꽃길’ 성장은 ‘가시밭길’

실제로 지난 10년간 국내 창업 환경은 크게 변해왔다. 지난달 15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통계로 본 창업생태계 제2라운드’ 보고서에 따르면 진입규제 완화 등에 힘입어 국내 창업 등록은 12단계에서 2단계로 축소됐고, 창업에 걸리는 시간도 22일에서 4일로 줄어들어 ‘스타트업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5.6일) 보다 빨라졌다. 이러한 창업지원 정책에 힘입어 2016년 11월 말 기준 국내 벤처기업 수는 3만3137개를 기록했다. 이른바 ‘벤처기업 3만개 시대’다.

문제는 회사를 만들기는 쉬워졌지만 버티기는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지난달 2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기업생멸 행정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창업한 기업 중 2014년에도 살아남은 기업 비율은 62.4%다. 하지만 창업 2년 후 생존율은 47.5%로, 창업 3년 후 생존율은 38.8%까지 떨어졌다. 창업 기업 10곳 중 6곳이 3년을 못 버티고 문을 닫은 셈이다.

한국 신생 기업의 생존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서도 최하위다. OECD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창업 기업의 3년 후 생존율은 39%로 스웨덴(75%), 영국(59%), 미국(58%), 프랑스(54%), 독일(52%) 등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26개국 가운데 25위를 차지한 한국 창업 기업의 3년 내 생존율은 1위를 차지한 스웨덴의 절반에 그친다.

한국 창업 기업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경우도 극소수다. 15일 전 세계 스타트업 기업들의 홈페이지와 SNS 등 트래픽을 분석해 영향력 순위를 정하는 ‘스타트업랭킹’ 자료에 따르면 500위 내에 진입한 한국 기업은 다음카카오(209위)와 마이뮤직테이스트(480위) 두 곳이 유일했다.

한국 창업 기업의 생존율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민간중심 벤처투자 생태계 미비

전문가들은 한국 창업 기업들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원인으로 민간중심 벤처투자 생태계의 미비를 지적한다. 올해 1월 22일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2016년도 신규 벤처펀드 조성 및 신규 벤처투자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신규 벤처투자액은 2조1503억원으로 미국(66조 원, 2015년 기준), 중국(36조 원)과 비교하면 매우 저조한 수준이다. 민간 벤처투자를 나타내는 ‘엔젤투자’의 경우 2014년 기준 834억원으로 미국(25조원)의 0.3% 수준에 그쳤다.

이처럼 국내 벤처 투자가 활발히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외국에 비해 투자환경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해외의 벤처 투자자들은 투자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를 주로 활용한다. 특히 미국의 경우 바이오산업 등 미래 가치가 있는 경우 초창기에 매출을 올리기 힘들더라도 나스닥 등을 통해 상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반면 한국은 매출을 올려야만 상장이 가능해 초창기 벤처는 투자를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국내 창업 기업이 코스닥에 상장하는데 걸리는 평균 시간은 13년으로 미국(6.7년)의 두 배에 달한다. 기업의 80% 이상이 10년 안에 문을 닫는 상황에서 13년 후를 기대하며 자금을 대는 투자자를 찾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이런 상황 때문에 많은 스타트업들이 기술 개발에 성공하고도 자금 부족을 버티지 못해 상업화에 실패한다.

인색한 정부지원

저조한 민간 벤처투자 규모와 더불어 정부의 인색한 세제 혜택도 신생 벤처의 안정적 육성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일반적으로 창업 기업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창업 3~7년 기간인 이른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 구간을 무난히 넘겨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이들에 대한 세제지원은 미흡하다. 대표적인 것이 법인세 감면 규정이다. 조세특례제한법 제6조(창업 중소기업 등에 대한 세액감면)에 따르면 창업 기업이 벤처기업 인증을 받을 경우 법인세 또는 소득세를 50% 감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간이 5년에 불과해 이제 막 흑자를 내려 하면 세금폭탄이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국가에서 보조금을 받은 스타트업의 경우 보조금을 수익으로 회계 처리해야하기 때문에 적자기업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법인세를 내야 하는 터무니없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영민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창업 초기기업은 항상 자금난에 시달리기 때문에 준조세 성격을 갖는 부담금에 따른 애로사항을 상대적으로 크게 느끼게 된다”면서 “정부는 창업 중소기업에 부과되는 일부 부담금을 면제하고 있지만 아직 그 폭이 크지 않은 만큼 부담금을 과감히 줄이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준비 없는 묻지마 창업

이처럼 한국 신생 기업의 생존율이 낮은 데는 철저한 준비 없이 창업에 뛰어든 창업자들의 탓도 있다. 이른바 ‘묻지마 창업’이다.

일례로 서울의 명문 공과대학 출신의 A씨는 최근 ‘청년 창업’에 뛰어들었다 실패의 쓴맛을 봤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것보다 창업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A씨는 자신의 프로그래밍 실력을 앞세워 소셜네트워크 기반의 홍보대행사를 차렸다. 하지만 현장과 동떨어진 기술력만 가지고 무리하게 사업을 밀어붙인 결과 A씨는 1년 만에 1억원의 빚만 남긴 채 문을 닫았다. 박씨가 창업 전에 준비한 것은 대학에서 진행한 창업 강좌를 들은 게 전부였다.

지난해 10월 중소기업청과 창업진흥원이 공동으로 펴낸 ‘2015년 창업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창업 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창업을 하는 비율이 83.1%에 달했다. 창업자들의 평균 준비기간도 10.4개월에 불과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창업은 잦은 폐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장창권 한국경영기술지도사회 사무처장은 “보통 지인의 추천에 의해 창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반드시 현재의 시장 환경, 개업하고자 하는 업종을 분석해 자신이 경쟁사들과 비교해 만족할 만하고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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